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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의 조건 ①  

이왕 글을 쓰는 것,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소설가 이외수가 <글쓰기 공중부양>에서 말했듯, "음식처럼 씹을수록 제맛 나는 글"이 있다. 씹을수록 제맛 나는 글이란 흔한 말로 '맛깔스런 문장'으로 이루어진 '좋은 글', 또는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명문을 구사하는 문장가인 사람은 없다. 글을 자꾸 쓰다 보면 문리(文理), 즉 '글의 이치'를 깨우치게 되고, 문리를 깨우치면 독자의 마음에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감동적인 글을 구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독자의 관점에 따라, 글의 종류에 따라 좋은 글의 조건은 다를 수 있다. 특히 시나 소설 같은 문학에는 더 다양하고 예외적인 조건이 적용된다. 하지만 '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글의 본질에만 집중한다면 좋은 글의 조건은 대개 비슷하다.

두 번에 나눠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첫째, 목적에 충실하게 쓴다.

모든 글에는 목적이 있다. 똑같이 오늘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독후감을 쓸 것인지, 아님 서평을 쓸 것인지에 따라 글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책을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인 감상을 쓰는 것이지만, 서평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읽은 책이 어떤 책이고, 또 나아가서 어떤 점에서 읽었으면 좋은지, 아님 나쁜지, 혹 가능하다면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비평까지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독후감은 매우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서평은 보다 객관적인 정보 전달의 목적을 갖고 있다. 독후감과 서평을 엄연히 다르게 써야 하는 이유다.

가령, 전자제품 사용설명서를 쓴다고 해보자. 전자제품 사용설명서의 목적은 무엇인가. 새 전자제품을 구매한 사람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방법을 비롯하여 제품의 기본 원리, 고장 시 응급조치 요령 등을 담는다. 그러나 이런 기본 사항은 젖혀두고 그 제품이 매우 좋은 제품이라고 자랑만 늘어놓는다면 그 사용설명서는 제대로 된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목적에 충실해야 함에 대해 더 이상 그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이쯤한다. 

둘째, 명확하게 쓴다.

가끔 읽어봐도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는 글이 있다. 문장을 읽었으나 말하려는 바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기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그 문장은 실격이다.

보통 이런 '실격 문장'은 지나치게 긴 경우가 많다. 문장이 길다는 건 그만큼 한 문장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많이 꾸겨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문장에 여러 이야기를 넣다 보면 내용 사이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수식어도 꼬이기 마련이다. 읽는 사람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지난 글 '짧게 써라' 편 참조).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문장을 단문으로 쓰기를 권한다. 단문이란 주어도 하나이고 술어도 하나인 문장을 말한다.

나는 글쓰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문장을 단문으로 쓰기를 권한다. 단문이란 주어도 하나이고 술어도 하나인 문장을 말한다.
 나는 글쓰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문장을 단문으로 쓰기를 권한다. 단문이란 주어도 하나이고 술어도 하나인 문장을 말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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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는 친구를 만났다."

이런 문장은 헷갈릴 이유가 전혀 없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단문과 달리 한 문장 속에 두 개 이상의 어구가 들어가는 문장을 '복문'이라고 한다. 복문은 주어나 술어가 두 개 이상이므로 호응이 꼬이기가 쉽고 쓰기도 읽기도 복잡하다.

"지난주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지 3개월 되었다는 친구를 만났다."

이런 문장은 두 개의 단문으로 나눠 쓸 수 있다.

"지난주에 나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지 3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쓰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무조건 단문으로 쓰라는 것은 아니다. 단문은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에 한계가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복문을 써야만 내용 전달이 정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주술관계, 어구와 어구의 관계가 분명하고 수식어들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도록 해야 한다.

단문 복문의 기계적 구분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한 문장에 한 가지 내용만 담는 것이다. 위에 예시로 든 글은 '내가 언제 친구를 만났는가' 하는 내용과 '친구가 직장을 언제 그만두었는가'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고 있어 복잡하다. 둘 중 어느 쪽에 핵심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단문은 시선을 분산시킬 염려가 적다. 그래서 글쓰기 책이나 강의에서 항상 '간결하게 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비문을 피한다.

'비문(非文)'이라 함은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말한다. '문장의 구조'에 대해 얘기할 때 강조한 바 있는 문장의 기본 요소, 즉 주어, 목적어(보어),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경우이다.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호해지거나 왜곡되기 쉽다. 메시지 전달의 목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문장은 당연히 좋은 문장이 아니다.

"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미 읽으면서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도 애매하다. 분석해보자.

이 문장에서 주어와 술어를 찾아보자. 주어 후보는 '나'와 '가능성'이다. 술어는 '존재한다'이다. '가능성'과 '존재한다'가 호응하는 짝일 가능성이 크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주어+서술어의 형태로 완전한 기본 문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맨 앞의 주어(일 수 있는) '나는'과 가장 잘 호응하는 서술어도 '존재한다'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서술어와 호응하는 주어가 두 개인 셈. 주어와 서술어는 반드시 1:1로 호응해야 한다. 간혹 열거법으로 문장을 구사할 경우엔 가능할 수 있지만 앞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일반적인 문장에서는 1:1의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럼 '나는'이 호응하는 다른 단어를 찾아보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 '가능성이'가 주어라는 전제를 갖고 이 문장을 제대로 고쳐보자. 이 문장을 고치기 위해 우선 읽어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누구에게 있느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나의 가능성이라면 문장을 이렇게 고칠 수 있다.

"내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나는'을 주어가 아닌 부사어로 바꾸면서 호응이 맞지 않는 짝이 없어졌다. 문법에도 맞고, 뜻도 잘 전달하는 문장이 되었다.

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가능성, 인류의 가능성 같은 다른 대상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도중이었다면 어떨까? 그 경우 문장에서 '나'의 역할은 가능성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일 것이다. 그에 맞는 서술어를 추가해주면 된다.

"나는 우리나라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믿는다"는 문장 안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문장이 들어간 복문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잘 맞을수록 이해하기도 쉽고 내용도 자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만이 아니라 목적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도 중요하다. 아래 문장을 보자.

"전문가가 되려면 이론과 실천을 해야 한다."

실천은 하는 것이지만, 이론은 아는 것이다. '이론'과 '해야 한다'는 말이 호응이 되지 않고 있다. 해서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쓸 수 있다.

"전문가가 되려면 이론을 알고, 실천을 해야 한다."

한 문장 안에서 시제나 존칭어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제 잠을 자겠다."
"할아버지가 밥을 잡수시래."

이런 문장은 "나는 어제 잠을 잤다"와 "할아버지께서 밥을 먹으래"라고 써야 맞다.

* 다음 주에 이어서 '좋은 문장의 조건'을 마저 알아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좋은 문장의 조건, #글쓰기, #문장론, #좋은 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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