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빅 브러더>를 읽으며, 나는 친구 L을 떠올렸다. 그녀의 오빠는 평생 백수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 평생 백수하고 해봐야 대학 졸업 후 십여 년이지만, 어쨌든 그의 일생에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L은 그것이 늘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라 했고, 여전히 오빠에게 용돈을 대주는 부모님을 답답히 여기면서도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늘 싸운다. 내일 모레 마흔의 이 남매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댄다. 오빠는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라 하고, L은 오빠가 내 부모의 돈을 털어가는 한 영원히 그럴 수 없다고 소리친다. 덕분에 집안의 화목은 자주 깨진다.

L이 욕만 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여러 번 취직자리를 알아와 오빠에게 권했으나 모두 거절당했고, 한 번은 두바이에 가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모호한 말에도 비자 비용, 왕복 비행기값에 한 달 여간의 체류비용까지, 그녀가 전부 부담했다. 그러나 아무 소득도 없었다. 오빠는 여전히 놀고, 여전히, 이 남매는 불화한다.

나는 그녀의 열성을 진심으로 칭찬했다. 나는 아무래도 너처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너의 선의를 모르지 않으나, 이제 그만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을까,도 조심스레 덧붙였다. 오빠가 너로 인해 변할 것 같진 않은데, 남매의 불화로 온 가족이 슬퍼지니까.

그때마다 L은 아니라고,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너 역시 똑같을 거라고. 이런 오빠가 없어서 모르는 거라고. 나의 오빠이자, 내 부모의 아들을, 내 가족을,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고.

<빅 브러더> 책표지
 <빅 브러더> 책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관련사진보기

<빅 브러더>를 보며 L을 떠올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성인이 된 이상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가족의 화목과 다양성을 위해,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어디까지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까.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남편과 의붓 자식들과 가정을 이뤄 살고 있는 판도라가 오빠 에디슨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녀는 "재치와 재능, 정력이 넘치는" 데다가  잘생기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며, "활력과 열의와 탐욕을 가진" 오빠가 나타나, 엄숙한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4년여 만에 만난 오빠를 판도라는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무려 175kg의 거구.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들이 불편을 토로하는, 심지어 그의 냄새까지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고도비만의 에디슨이 나타난 것이다.

소설은 가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비만을 얼마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도 여실히 드러낸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것과 같은 또 하나의 노예계층이라며 삼촌을 지목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적대감 어린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자기 통제를 중요시 여기는 남편 플레처는 에디슨을 나태와 게으름, 권태의 상징으로 보며 독설을 퍼붓는다. 에디슨이 집에 머무는 두 달 동안, 남편과 오빠는 철저히 반목한다.

판도라의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에디슨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녀는 마치 그의 자해를 지켜보는 듯한 감정에 휩싸인다. 단지, 사람들이 적대감을 느낄 때, 판도라는 더한 연민을 갖는 것이 다를 뿐. 플레처로서는 에디슨을 도우려는 판도라의 심정 또한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판도라의 감정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할 뿐이다. 판도라에게 에디슨은 그녀가 분명하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녀의 단 하나뿐인 혈육인 것이다.

판도라는 사정이 좋지 않은 오빠를 잠시 머물게 하는 것으로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녀는 더한 책임을 자처한다. 오빠와 단 둘이 살며, 1년간의 맹렬한 다이어트에 돌입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로 인해 남편은 이혼을 암시하는 경고마저 건네고,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이렇다.

"가족의 엄청난 이점이 한편으론 끔찍한 독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가족 사이엔 한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간에는 서로에게 어디까지 '합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한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떠안은 책임은 쉽게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엄청난 손상을 입지 않고서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애초에 떠안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다."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떠안은 후, 판도라는 이제야 오빠의 실체와 직면하게 된다. 이제까지 들었던 오빠의 성공 스토리는 다 거짓과 과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TV스타이자 허영심 많던 아빠를 그대로 닮은 오빠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거저 얻은 유명세와 십대 시절 잠깐 반짝했던 과거에 연연하며 자신이 특별히 재능있다는 착각으로 인생을 소홀히 해왔다. 보통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허황된 것에 집착해, 중년의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더라도 그 후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에디슨에겐 아무 답이 없다는 것을 판도라는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 것인가. 그녀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책 소개를 감안할 때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 경험으로, 또 질문과 치유의 과정으로 만든 작가라는 존재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저자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큰 화제를 몰았던 <케빈에 대하여>의 작가이기도 하다. 전작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특유의 숨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지인들께 권하기 힘들었지만, 이 책은 권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냉소적 태도는 여전하나, 시종일관 유머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누구나 할 말이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족을 생각하며 머리 아파보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랴. 더구나 가족간의 유대가 서양보다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한국 사회에서.

형제란, 가족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내 역할인 것인지, 때로 침묵은 평화를 가장한 이기심은 아닌지, 진심으로 잘 되길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인지, 책임이란 어디까지가 적정한 선인지,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나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나로선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독서를 통한 자발적 두통을 환영하는 분들께, 유머와 통찰이 가득한 <빅 브러더>를 권한다.


빅 브러더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5)


태그:#빅브러더, #라이오넬 슈라이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