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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인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의 전경. 돌담 사이로 뻗은 올레(길)은 차 한대가 지나가기도 빠듯해 보인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인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의 전경. 돌담 사이로 뻗은 올레(길)은 차 한대가 지나가기도 빠듯해 보인다.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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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원래부터가 양촌(良村)이라났주, 게난 사름들은 유(柔)허고 사건도 어신데우다."(여기는 원래부터 선량한 동네여서 사람들이 유하고 사건도 없는 곳입니다.)

중산간 마을인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는 제주 도내 다른 지역에 비해 딱히 눈에 띄는 관광명소도 찾기 어렵고 누구나 알법한 특산물도 없는 곳이다. 도로는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삐죽 솟은 건물은커녕 그 흔한 편의시설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길성 어르신(82)은 자신이 나고 지금껏 자란 고향 신풍리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어르신은 50년 동안 감귤과 밭농사를 일구며 4남 2녀를 키워냈다. 1987년에는 주택융자를 받아 초가집을 허물고 지금의 주택을 올렸는데, 그때의 감격이 지금도 선하다고 했다.

나이가 들며 기력이 떨어지자 몇 년 전부터는 지인에게 밭을 빌려준 대신, 부부는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를 통해 생활을 이어갔다. 이렇게 받은 한 달 70만 원의 대부분은 두 사람의 식비와 병원비에 사용됐다.

하지만 지난 6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읍사무소 직원이 부동산의 공시지가가 오른 관계로 더 이상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노인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볼까 고민하다가 어르신이 선택한 방법은 결국 태어나서 처음인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마이너스 2천만원의 빚을 얻었다. 땅을 팔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2공항을 추진하는 제주도가 성산읍 일대를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어 놓는 바람에 이 마저도 녹록지 않게 됐다.

공시지가 상승으로 올해 기초연금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김길성(82) 어르신. 생계를 위해 최근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공시지가 상승으로 올해 기초연금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김길성(82) 어르신. 생계를 위해 최근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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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몬 육지 살암꼬, 나머진 여기 있쥬. 겐디 가네들도 살아가잰 허민 힘들꺼 아니꽈?"(자녀 절반은 모두 육지에 살고 있고, 나머지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자식들도 살아가려면 힘들지 않겠나?"

간간히 들렀던 사교활동 무대인 '시니어센터'도 경제활동이 단절된 이후에는 발길을 끊어야 했다.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남은 삶의 목표가 됐다.

제주시 구좌읍의 김아무개 할아버지(78)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는 6월부터 수급자격이 변동되면서 기초연금과 노일일자리 모두 끊겼다.

1년 소작료로 받는 200만 원과 자식들이 병원비 명목으로 붙여주는 한 달 15만 원, 국민연금 15만 원이 두 노부부의 한 달 생활비다. 밭이라도 처분해 생활비에 써볼까 생각해봤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심경이다.

답답한 마음에 몇 차례 읍사무소에 하소연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 돈이 없으니 사람 만나는 일도 부담스러워 집에만 있게 됐다.

"병원만 다니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볼텐데..."

할아버지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나온 말이다.

제주시니어클럽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모습 <제공=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니어클럽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모습 <제공=제주특별자치도>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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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동안 공시지가 상승률 60% 육박 전국 최고


지난해까지 기초연금을 받던 제주 지역 만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5명이 올해 심사에서 탈락했다. 탈락자 비율이 46%로 전국 평균 34%에 비해 높은 수치다.

매년 4월 발표되는 일반재산(부동산)의 공시지가와 소득(근로+연금+이자)의 변동분을 합산해 6월 말 기초연금 수급 자격과 등급이 결정되는데, 제주는 일반재산의 상승률이 워낙 커 수급 자격이 무더기로 변동됐다.

3년 전부터 두 자리 숫자로 껑충 뛴 공시지가 상승률은 2015년 12.3%를 시작으로, 지난해 27.8%와 올해 19%로 60% 가까이 올랐다. 상승률로만 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공제액을 제외한 후 월소득 인정액을 산출하는데, 119만 원 이하인 경우 부부가구는 1인당 최대 19만원 4천원, 단독가구는 20만 6천원까지 연급을 받는다. 대도시의 공제상한선은 1억3천500만원, 중소도시 8천500만원, 도농지역은 각각 7천250만원까다.

노인일자리 사업이라도 참여하려고 해도 이 역시 기초연금 수급 자격과 연동되다 보니 아예 끼지도 못한다. 시장형 사업과 인력 파견 사업 등 틈새 제도도 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한데다 기본적으로 저소득층부터 우선 배정되다보니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기초연금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제주는 대도시에 준해 공제 규모를 좀 더 늘릴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다양한 노인일자리 확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태그:#제주, #부동산, #기초연금,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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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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