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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촛불이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인권의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인권단체들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인권현실을 알리고자 촛불1주년인 28일 오후 4시 보신각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인권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그에 앞서, 우리의 삶과 일상을 나누는 연속기고를 진행한다. - 기자 말

작년 10월 보신각에서 있었던 2차 검은시위 사진이다. 주최: 강남역10번출구(현 페미몬스터즈), 불꽃페미액션, 사회진보연대, 성과재생산포럼(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페미당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작년 10월 보신각에서 있었던 2차 검은시위 사진이다. 주최: 강남역10번출구(현 페미몬스터즈), 불꽃페미액션, 사회진보연대, 성과재생산포럼(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페미당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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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촛불은 사실 1주년을 기념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전례 없는 국정농단이 공개되기 전부터 페미니스트의 촛불은 이미 광장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 기억하실는지.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에서 의료관계법 행정처분규칙(시행규칙)을 일부 개정, 낙태 수술이 적발된 의사에게 1년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입법예고를 하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고 나섰던 일을 말이다.

낙태죄 처벌 강화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와 규제강화에 반발하는 의사단체의 힘겨루기 사이에 정작 임신과 임신중단, 출산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의 몸과 삶, 생명이 인질로 잡힌 모양새였다.

이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했고, 그 동력으로 9월부터 각 지역에서 수차례에 걸친 낙태죄 폐지 집회가 열렸다. 때마침 폴란드에서도 낙태를 처벌하는 입법에 반대하는 '검은시위'가 열리던 중이었다. 국경을 넘은 연대의 의미를 담아 낙태죄 폐지 집회는 한국판 '검은시위'로 불렸다.

매 집회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그 시기 광장과 거리에는 이번에야말로 낙태죄를 폐지시키고 인권과 사회정의의 가치를 회복하리라는 들뜬 설렘과 기대가 넘실거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정권의 전례 없는 국정농단이 공개되면서, 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외면하고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오용한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적 분노가 모아졌다.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국가 최고 권력이 민주주의를 유린한 사태에서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 21세기 한국에 산다는 것은 매일 인간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과정 속에 산다는 말과 같다. 페미니스트로서는 더욱이 그렇다. 각종 성범죄와 여성대상 폭력, 가부장제로 인한 사회문제 등등. 그 중 형법상 낙태죄의 존재는 말할 나위도 없이 청산되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9월 2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는 여성들이 티셔츠에 임신중단을 한 날, 임신과 낙태를 이유로 퇴학당한 날, 국가주도의 가족계획사업에서 불임수술을 받은 날 등의 날짜를 적은 티셔츠를 입고 '낙태죄 폐지' 퍼포먼스를 벌였다.

9월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식 사진. 주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건강과대안,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9월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식 사진. 주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건강과대안,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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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23일. 그리고 같은 해 12월 20일. 나는 두 번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 둘을 가진 결혼 5년차. 빠듯한 벌이에 전세 대출금 이자를 갚느라, 양쪽 부모님 뒷바라지를 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보통의 부부'였습니다. 셋째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저는 소위 독박육아와 직장생활로 지치고 또 지친 상태였습니다. '셋째까지 키울 수는 없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렇게 중절수술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도 우리의 결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지 불과 두 달도 되기 전에, 남편은 이번엔 괜찮다고 우기면서 피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고, 저는 또다시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도 체력적으로 약해져 있는 제 몸이 또 한 번의 임신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염려했고, 다른 선택을 고려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독박육아에, 이중노동에, 피임은 신경도 안 쓰는 남편을 둔 모든 기혼여성을 위해,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합니다."


"1979년 9월 15일. 나는 국가에서 권하는 복강경 피임 시술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 가난한 가정을 이뤘던 저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보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족계획사업을 한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제 애 안 낳는 게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애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세금을 덜 낸다는 둥 집구할 때 우선권을 준다는 둥 동네에 말이 많이 돌았습니다. 하도 찾아와서 권하는 데다 무료라고 하길래 저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하고는 배가 너무 아프고 잘 낫지도 않는 염증 때문에 한참 고생했습니다. 그때 저희 고모도 옆집 애기 엄마도 같은 수술을 받고 부작용과 수술실패로 인한 임신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건소마다 수술 건수가 많을수록 국가에서 받는 돈도 많아져서, 제대로 설명도 없이 거의 반강제로 수술한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하고, 외국에서 검증도 안 끝내고 보내온 피임약을 막 썼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여자라고 국가가 이런 식으로 제 나라 국민을 막 다뤄도 되는가. 부잣집 가서도 이렇게 했을 것인가. 우리는 애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안 낳아야 하는 도구인가. 낳으라는 지금이나, 낳지 말라던 그때나, 다 국가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3월 24일. 나는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서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수술대 의자와 수술 도구에 바로 전 사람이 수술할 때 묻은 것 같은 피가 보였습니다. 순간, '소독 한 번 해달라고 부탁할까?' '애 지우러 온 주제에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까?' '이런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왜 내가 내 돈 주고 수술을 받아야하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어렵게 찾은 병원인데 수술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 역시 저에게 수술 방법이나 후유증에 대해서, 또 어떻게 몸을 관리하고 뭘 조심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의료과정이라면 당연히 의무적으로 알려줘야 할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저는 출혈이 너무 심하고 길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불결하고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이 떠올라 다시 그 병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했지만 임신중절은 불법인데 수술을 했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낙태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에겐 임신을 중단할 권리만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기본적 권리도 없었습니다."

"2010년 9월 29일, 나는 HIV 감염인으로 확진을 받았습니다.
저는 감염 이후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감염인도 적절한 조치를 하면 수직감염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감염내과에 가서 상담도 받았습니다. 물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제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극렬히 반대하였고 헤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상대방의 가족들까지 나서서 저의 임신계획을 문제 삼으면서 친척들에게 제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함부로 알렸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제가 사랑하는 상대와 그 가족이 저를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여전히 저에게 성적인 낙인을 찍고, 어머니 될 자격이 없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09년 7월 31일 장애 여성인 나는 첫 출산을 했습니다.

첫째를 임신하고 병원을 찾았을 때 간호사가 절 보더니 너무도 당연하게 첫마디가 "아기 지우실 거죠?"였습니다. 내가 판단했을 때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마음대로 정해진 룰처럼 "낙태해야 할 몸, 낙태해선 안 될 몸"으로 규정지어 놓고선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을 권리도, 낙태 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은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성의 몸에 대해 "생명권", "모성"만을 강조하면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몸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장애인에게는 "우생학"을 강조하며 낙태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종용합니다.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낙태든, 임신이든, 출산이든, 양육이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인구증가를 원치 않았던 시기에는 낙태버스 운영과 불임 수술로, 인구증가를 원하는 시기에는 '낙태죄' 처벌 강화로 대처하며 국가는 여전히 여성의 몸을 인구 제어의 수단으로서, 도구로서 취급하며 폭력적으로 다루어온 역사의 과정 중에 있다.

그뿐인가. 50여 년 전 국가적 차원에서 강행되었던 한센인 강제 불임수술에서부터 현재 모자보건법의 낙태허용사유가 여실히 드러내보이는 것처럼 낙태죄의 존치 근거로 삼는 '생명의 절대성' 역시 허상에 불과하다. 국가가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생명'은 '누구의' 생명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여 규범적이고 온전한 인구, '생산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구를 선별하는 수단이 바로 낙태죄의 민낯이다.

이렇듯 낙태죄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한국은 놀랍게도, 헌정 이래 최초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한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낙태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후보 시절 낙태죄 폐지에 대해 "낙태죄 전면 폐지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우아하고 단호한 답변으로 주목을 받은 이낙연 총리 역시 "개인적으로는 (낙태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중략) 일률적으로 무조건 찬성이다, 무조건 반대다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현 정권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답을 종합해본다면 이 정권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낙태죄 폐지는 '무조건적인 찬/반'이 아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9월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식 사진. 주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건강과대안,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9월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식 사진. 주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건강과대안,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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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이 얼마나 우아한 대답인가. 또 얼마나 쉬운가. 낙태죄의 존재가 당장 나와 내 주위 친구들의 삶을 위협하는 입장에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어떤 과정이 있어야 '사회적 합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국민투표에 부쳐 과반을 넘으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국민투표를 감행할 의지가 있긴 한 것인가 말이다. 그 어떤 의지 없이 '사회적 합의'만을 들먹일 때, '사회적 합의'는 인권의 문제를 나중으로 넘겨버리자는 차별과 탄압의 우아한 언어로 사용될 뿐이다.

위의 사례들이 낭독되었던 현장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발족되었다. '낙태죄 폐지'가 흔히 임신이 가능한 몸, 즉 젊은 여성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냐는 편견에 맞서는 이름이다.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여성 역시 인간이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 사회정의를 위해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낙태죄 폐지야말로 '모두를 위한' 일임은 자명하다.

1년 만에 다시 촛불을 든다. 검찰 개혁 등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한국사회의 적폐 청산이 문재인 정권 100대 국정과제의 맨 앞머리에 와있지만. 우리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낙태죄 역시 청산되어야 할 구태의 적폐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나는 내 몸이,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이, 동료 시민의 몸이 국가에 의해 불법화되고, 저당 잡히는 사회를 위해 촛불을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촛불을 든다. 인권에 기초한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태그:#검은시위, #낙태죄, #페미니즘, #적폐청산,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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