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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 합덕 전통시장에서 런던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용숙 씨. 66세의 나이에 뒤늦은 영어 공부에 한참이다.
 충남 당진시 합덕 전통시장에서 런던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용숙 씨. 66세의 나이에 뒤늦은 영어 공부에 한참이다.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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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New'를 앞에 두고도 엔(N)밖에 못 읽었어요. 지금은 'New'가 '새로운'이라는 의미라는 걸 알고요, 또 'News'가 새로운 소식이란 것도 알아요. 여러분도 배우세요. 배우니까 이렇게 행복합니다."

충남 당진시 합덕시장에서 런던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66세의 박용숙씨는 요새 살맛 난다.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길거리에 나가면 한글이 아니라 영어가 더 눈에 들어온단다. 농협에 가면 뱅크(bank, 은행)가 있고, 오늘이 먼데이(monday, 월요일)인 것도 안다. 그는 신이 난 목소리로 "2년만 있으면 영어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합덕읍 신리 출신인 그는 3남 3녀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 동네에서 자녀들이 공부 잘하는 집이라고 소문 날 만큼 박씨의 남매들은 모두 대학까지 진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하지만 그 에서 박씨만 신촌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학업을 접었다.

그는 "7살 어린 나이에 학교에 들어갔다"며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가지 못했고 공부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없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배우지 못한 한이 평생 남아 있던 그는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키우면서도 가슴 속 한편에 배움에 대한 열정을 늘 품고 살았다.

어깨너머로 공부하다가... "영어 독학하자!"

아들과 딸이 집에서 과외를 받을 때면 옆에 앉아 무슨 공부를 하는지 귀를 기울이곤 했다. 선생님이 산수 문제를 내주면 옆에서 같이 풀어보기도 했다. 또 TV를 볼 땐 한 손에 펜을 꼭 쥐고 시청했다고. 그는 "TV에서 중요한 상식이 나오면 공책에 적어가며 TV를 봤다"며 "어깨너머라도 배우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며 배움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생계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과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학사모를 쓴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책과 필기구를 볼 때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그러던 그가 학교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형편으로 학교를 마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해나루시민학교가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씨도 해나루시민학교에 입학했지만 가게를 비울 수 없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영어 공부를 독학하기로 다짐했다. 영어라고는 알파벳 대문자만 겨우 읽을 수 있던 것이 전부였다. 신발가게를 운영하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Size'도 몰랐고 'Black'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알파벳 책을 펼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고 외우기 시작했다.

천안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딸(송주화)과 함께 5개월 전 중국에 갔을 때, 딸은 'X'가 '스' 발음이 난다는 것을 알려주며 꼭 공부를 해야겠냐고 한 적이 있었다. 한 글자라도 배우고 싶다는 박용숙씨의 답변에 딸은 알파벳 책을 선물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영어를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동사까지 공부해 'I go to E-mart' 등 간단한 문장을 변형해 쓰고 읽을 수 있게 됐다. 이 모습을 본 딸은 엄마 박씨에게 책 <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를 선물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아들(송철민)은 오랜만에 본 엄마가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칭찬했고 손녀(송다연)는 할머니에게 동영상 사이트로 영어 공부하는 법을 알려줬단다. 남편(송재길)은 "아내가 하루에 대여섯 시간은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열의가 넘친다"며 아내를 칭찬했다.

42년 째 런던화점 운영... '일도 열심, 취미도 열심'

그는 합덕시장 내 런던화점을 남편과 함께 42년째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기성화 구두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제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맞출 수도 있다. 또한 가죽부터 디자인까지  손님의 취향에 맞추고 있다. 구두 수선 역시 직접 부부가 하고 있다.

박씨는 런던화점 운영과 함께 에어로빅도 배우고 있다. 합덕읍주민자치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에어로빅반에 매주 세 차례 다니고 있으며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는 "구두 제작과 수선 일을 해왔기 때문에 팔과 다리 곳곳이 아팠다"며 "하지만 에어로빅을 배우고 난 뒤 아픈 곳도 없이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일도 열심, 취미도 열심 그리고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그에게 목표가 생겼다. 2년 후에는 영어책을 읽고, 또 유창하게 영어가 가능해지면 외국에 가서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싱가폴에 여행 갔을 때 한 밤에 호텔 직원이 문을 열더니 영어로 말을 했다"며 "당황스러워 그냥 문을 닫아버렸는데 다음에 해외여행을 가면 꼭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 처음엔 제가 못할 줄 알았어요. 그래도 배우고 싶어서 공부했죠. 근데 생각보다 공부한 내용이 기억에 잘 남고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이럴 때마다 저 스스로 대견하고 또 자부심이 든답니다. 모두 늦었단 생각 말고 지금 시작하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도 실렸습니다.



태그:#충남, #당진, #공부, #영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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