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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우리는 '맹견'의 시대에 살고 있다.
 2017년 10월, 우리는 '맹견'의 시대에 살고 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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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떠들석한 단어가 있습니다. '맹견'이라는 단어입니다. 종종 맹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 제목들이 보이더니 이른바 '최시원 사건'을 통해 폭발하듯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개에게 사람이 물린 과거와 해외의 사고들이 마치 자석에 쇳가루가 달라붙듯 모여들더군요. 기사의 제목에는 무조건 '맹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잇따른 사망', '개에게 물려 구사일생' 등의 단어는 물론 '총기 허가증', '미국은 종신형', '미국선 수갑찰 일', '한일관 대표 맹견 때문에', '안락사' 등의 표현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목줄을 하지 않은 상태로 개를 집 밖에 풀어두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짚어볼 게 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는 것만이 아니라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시원씨의 개 프렌치불독이 유명 식당 대표를 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집중 조명이 된 것이니 그것을 좀 따져보겠습니다.

유명 식당 대표가 개에게 물려 사망했다?

지난 9월 30일 서울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 김아무개씨가 슈퍼주니어 멤버 겸 배우 최시원 가족의 프렌치불도그에 물리는 모습. 당시 개는 목줄이나 입마개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9월 30일 서울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 김아무개씨가 슈퍼주니어 멤버 겸 배우 최시원 가족의 프렌치불도그에 물리는 모습. 당시 개는 목줄이나 입마개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 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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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동물에게 물리면 염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동물의 입에는 많은 종류의 세균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니 사람의 입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세균이 있습니다.

둘째로, 날카로운 칼이나 유리에 베인 상처에 비해 못이나 송곳 등에 찔린 상처가 더 위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균이 깊게 침투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동물에 물린 사람은 철저하게 소독하고 관찰합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개에게 물렸고, 사건 발생 당일 오전 10시 13분에 응급실에 갔습니다. 피해자는 응급실에서 상처 소독, 항생제 주사, 파상풍 주사, 먹는 항생제 등을 처방받고 귀가했습니다. 이틀 뒤인 10월 2일 피해자는 다시 외과를 찾아 진료를 받으면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를 처방받았습니다.

'개에게 물려 상처가 났고, 의학적으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해자 측이 충분히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일단락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피해자는 10월 5일, 몸살 기운을 느껴 다음날 오전에 병원에 갔고 당일 피를 토하며 상황이 악화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급성 패혈증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결론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발단 자체가 개에게 물린 것이므로 '피해자가 개에게 물려 사망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언론사에서 취재를 담당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라면, 그리고 그 기사의 사실 여부를 충분히 따져야 마땅한 '데스크'라면 당연히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표현을 써야 하는지 심사숙고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해당 의료진도 개에게 물린 것을 결정적인 사망 원인으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와 기자들은 이런 객관적 사실은 모두 지워버리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유명 식당 대표, 맹견에 물려 사망"이라고요. 기자들에게서 팩트체크와 디테일이란 것이 실종됐습니다(실종신고라도 해야겠습니다).

가해자의 개가 맹견인가?

슈퍼주니어 멤버이자 배우인 최시원 가족이 기르던 반려견에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 김아무개씨가 물려, 김씨가 며칠 뒤 패혈증으로 숨진 사실이 밝혀진 뒤 최씨와 가족은 SNS를 통해 유가족에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진은 최씨와 반려견인 프렌치불독, 최씨와 가족들이 올린 사과문.
 슈퍼주니어 멤버이자 배우인 최시원 가족이 기르던 반려견에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 김아무개씨가 물려, 김씨가 며칠 뒤 패혈증으로 숨진 사실이 밝혀진 뒤 최씨와 가족은 SNS를 통해 유가족에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진은 최씨와 반려견인 프렌치불독, 최씨와 가족들이 올린 사과문.
ⓒ 최시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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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맹견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맹견은 '몹시 사나운 개'입니다. 동물보호법에서 정의하는 맹견은 좀더 구체적입니다.

1. 도사견과 그 잡종의 개, 2.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3.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4.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5. 로트와일러와 그 잡종의 개, 그리고 6. 그밖에 사람을 공격하여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개.

1항부터 5항의 개들은 그 종이 비교적 명확하게 명시돼 있습니다만 문제는 6항입니다. 국어사전의 '몹시 사나운 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개에게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맹견의 종류를 늘린다는 식의 법안을 발의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옆집 치와와도 맹견이 될 수 있군요. 당연히 이번 사건 가해자 최시원씨의 개도 맹견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과 법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말이죠.

그럼 여기서 맹견을 맹수로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맹수는 '성질이 몹시 사나운 짐승'입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성질이 몹시 사나운 시골집 수탉이나 석촌호수의 거위도 맹수가 될 수 있겠군요. 당연히 옆집 치와와도 맹수가 될 수 있고요.

말장난 같죠? 그런데 실제로 이런 말장난을 언론과 기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사나운 개는 모두 맹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언론사에서 취재를 담당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라면 용어의 정리나 사용을 이런식으로 해선 안 되겠죠.

그동안 가해자의 개가 몇 명의 사람을 물었는지 여부는 물론이고 같은 종의 개가 그동안 사람을 문 사고가 얼마나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따져봐야 마땅합니다만 그런 언론사와 기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기사에 '일반적으로 프렌치불독이 사람을 물어서 심각한 상해를 일으킨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정도의 문장이 들어가야겠네요. 사실이니까요. 이 부분에서도 기자들의 팩트체크와 디테일은 없었습니다.

공포를 넘어 '혐오'가 확산되는 건 누구의 책임인가

정교한 맥락 설명 없는 보도는 결국 '반려견 혐오'를 낳았다.
 정교한 맥락 설명 없는 보도는 결국 '반려견 혐오'를 낳았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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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고에 대해 보도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안전불감증을 경계하도록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확한 사실과 정교한 맥락의 설명 없이 감정만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언론이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혹시나 기자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언론 용어로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번역하면 '황색 언론'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황색언론을 그대로 가져와보겠습니다. 황색 언론이란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흥미본위의 보도를 함으로써 선정주의적 경향을 띠는 저널리즘입니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는 범죄·괴기 사건·성적 추문 등을 과대하게 취재·보도하는 저널리즘의 경향이죠.

공익보다 선정성 경쟁에 입각해 기사를 작성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도 소홀합니다. 정언유착 혹은 권언유착이 이뤄질 경우 황색 언론은 정권의 치부를 가리거나 정권에 불리한 기사에 대한 물타기 기사로 이용될 수 있다고도 설명합니다.

기자님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요즘 쓰는 기사들이 바로 황색 언론입니다. 증거는 하나하나 가져올 필요도 없이 널려있습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 상에는 개와 개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만 혐오가 횡행하는 게 아닙니다. 개를 산책시키다가 "공원에 개를 데리고 오지 말라"거나 "입마개 하라는 소리 못들었냐"는 식의 시시비비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나운 개뿐만 아니라 반려견에 대한 혐오와 동시에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기자들이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쓴 기사들이 감정을 자극하고 공포심과 불안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만들었으니까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그러니까 그 유명한 괴벨스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 주의'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유가족입니다. 그 피해는 언론과 기자 여러분에 의해서 더 커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보태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활동가입니다. 소위 '맹견 사고'와 관련한 카라의 논평은 이곳(클릭)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기레기, #맹견, #언론,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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