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비토 아이스크림] 쇼핑하는 것보다 먹는 것이 좋아

돈키호테 나카스점에 들렀다. 돈키호테는 과자류부터 약, 화장품, 각종 기념품을 면세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쇼핑의 메카다. 가이드 북이든 블로그든 여행 정보를 찾다 보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등장하는 곳이길래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이라는 마음으로 방문해보았다.

건물 2층에 있는 돈키호테로 올라가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엄청나게 많은 물건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 그리고 엄청나게 긴 줄이었다. 입장 1분 만에 쇼핑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딱히 사야 할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긴 했다. 공허한 마음과 돈을 아꼈다는 약간의 안도를 품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 비토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비토 아이스크림
 비토 아이스크림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첫날 묵었던 '북앤베드'에 한국어로 된 후쿠오카 가이드 북이 있었다. 거기 비토 아이스크림이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규슈 낙농 농가의 우유와 제철 과일을 사용해 정통 이탈리아 제조 방법으로 만든 프리미엄 젤라토를 맛볼 수 있는 곳. 특히 2년에 한 번 수확된다는 세계 최고 품질의 시칠리아 섬의 피스타치오로 만든 피스타치오 젤라토는 꼭 도전해보자."

그리하여 피스타치오 젤라토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기본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어서 하나는 피스타치오, 하나는 산딸기 맛으로 골랐다.

비토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피스타치오 젤라토
 비토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피스타치오 젤라토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부드럽고 원재료의 진한 풍미가 살아있는 맛이었다. 소파에 몸을 푹 파묻고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으니 살 것 같았다. 종일 걸어 다녀 고단했던 몸의 피로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난 쇼핑 보다 먹는 게 좋아. 숟가락을 물고 생각했다. 바로 한 층만 올라가면 갖가지 상품들이 펼쳐져 있는데, 거기엔 아무 관심이 없고 1층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나를 방해할 수 없으니까.

[링고 애플파이] 그동안 분명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텐진 지하상가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새콤달콤한 냄새가 풍겨온다. 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근원지를 찾으면 금세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링고'라는 애플파이 가게다.  나는 이틀을 텐진에서 묵으면서 이 앞을 몇 번이고 지나쳤다. 지나치면서도 하나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애플파이라면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껍게 구운 반죽, 끈적끈적한 시럽에 눅눅하게 젖어 있는 사과 조각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애플파이는 어린 시절 후로 영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텐진 지하거리에 자리한 링고
 텐진 지하거리에 자리한 링고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텐진을 떠나던 아침, 아직 가게 문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지하상가 한쪽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쯤되니 궁금증이 발동한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걸까? 속는 셈 치고 슬쩍 줄을 서본다.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쉴 새 없이 구워져 나오고 포장되는 애플파이.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도 별생각도 없었다. 약간의 호기심만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을 뿐. 몰랐다. 애플파이를 쥐어 든 순간. 나의 애플파이 역사가 바뀌리라는 것을.

포장 중인 링고 애플파이
 포장 중인 링고 애플파이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쉴새없이 팔려나가는 링고 애플파이
 쉴새없이 팔려나가는 링고 애플파이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겹겹이 얇은 층으로 이루어진 크루아상 스타일의 파이가 가볍게 부서졌다. 부서진 파이 사이사이로 뜨끈뜨끈한 사과조각과 슈크림이 흘러나왔다. 입속을 가득 채운 사과와 슈크림이 부드럽게 뭉그러졌다. 달콤함과 혼란함이 마구 뒤섞였다. 과거에 내가 먹었던 애플파이는 뭐였지? 애플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던 건 거짓말이었을까? 애플파이라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 갓 구워낸 파이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더니 뱃속이 따뜻해졌다. 이제 애플파이라는 음식에 관해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애플파이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텐진 지하 거리에서 먹었던 링고의 애플파이만큼은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캠벨 얼리] 위로가 필요할 때 발견한 팬케이크

하카타 아뮤플라자. 우동으로 점심을 먹고 천천히 쇼핑몰을 둘러보려던 참이었다. 핸드폰 알림음이 들렸다. 메일 한 통이 도착해있었다. 최근 한 출판사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곳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글솜씨는 좋은 편이세요'로 시작하는 메일은 '죄송합니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출판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출판사로부터 첫 연락을 받았던 때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글은 잘 쓰는데 콘셉트나 주제의식이 부족하다.'

종종 들어온 말이었다. 시중에 나온 책들을 꼼꼼히 분석해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역부족이었나보다.

'괜찮아.'

스스로 한 말이 가슴 속 어디에선가 반사되어 돌아왔다.

'아니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은 거구나. 바다 건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좀 괜찮아질까. 아니, 어쨌든 이건 너 자신의 일이라구. 그렇다면 달콤한 것을 먹으러 가자. 다행히 아뮤플라자 9층에는 팬케이크 점이 있었다. 9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길은 길고 길었다. 9층까지 가는 동안 끊임없이 괜찮아와 괜찮지 않아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멋진 콘셉트가 내 앞에 나타날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맛있는 팬케이크가 내 앞에 있을 수는 있었다. 참 서글프고도 다행인 점이었다.

캠벨 얼리 팬케이크점
 캠벨 얼리 팬케이크점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레몬을 곁들인 팬케이크
 레몬을 곁들인 팬케이크
ⓒ 이보미

관련사진보기


레몬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너무 두껍지 않으면서도 폭신폭신하게 구운 팬케이크에 절인 레몬과 레몬 시럽을 곁들여 낸 접시를 보면서 나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달달한 맛과 새콤한 맛이 내 씁쓸한 속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나는 마치 스테이크를 썰듯 맹렬하게 팬케이크를 썰어 먹었다. 팬케이크 세 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크림을 한 숟가락 뜨는데, 생크림 안에 레몬 셔벗이 숨겨져 있어 놀랐다. 마치 깜짝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차가운 셔벗을 떠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식을 후쿠오카에서 받아서 다행이야. 만약 내 방에서 받았더라면, 지금쯤 방바닥을 뒹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지금 나는 여행자여서, 비록 슬픈 소식을 받고서라도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자. 그래서 일상을 살면서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일상을 계속 살아가자. 달콤한 것을 먹고 회복하자. 괴로워하며 뒹굴지 말고. 너무 상심하지 마. 반드시 내 책을 내게 될 테니까.'

일상에도 얼마든지 팬케이크 점은 있을 거다. 하지만 캠벨 얼리의 팬케이크만큼 맛있는 곳이 있는지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