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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반홀름 건물
 스반홀름 건물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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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행복의 나라라는 덴마크, 그런 나라에 대안적인 삶을 찾아 농촌 마을에 모여 사는 150명의 사람이 있다. 마을의 이름은 스반홀름. 스반홀름은 여태까지 내가 가본 공동체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많았다. 40년의 긴 역사, 백만 평의 부지, 500톤 생산 규모의 야채 밭, 18세 미만 아이 30명을 포함한 150명이나 되는 회원 수 등 객관적인 수치로 봤을때 많이 놀랐다. 명백히 성공한 공동체였다.

가장 놀란 부분은 개인이 버는 80%의 수익을 공동체에 낸다는 점이었다. 스반홀름 회원의 70%가 공동체 밖에서 공동체와 아무 관련 없는 일을 한다. 억 단위의 연봉을 받는 교수부터 월 삼백만 원을 받는 시내버스 운전사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이 있다. 공동체 밖에서 일하든 안에서 일하든 관계없이 수익의 80%를 내기 때문에 음식, 주택, 생활필수품 등은 공동체에서 조건없이 지급 받는다. 공동체에서 지급하는 물건은 모두 나트라케어 생리대 등의 친환경 고급 제품이다. 남은 20%의 수익으로 의복, 치과보험, 교통비, 화장품 기타 개인용품을 사고 문화생활을 누린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북유럽에서 스반홀름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 시간, 공간을 희생해 이웃과 사랑하며 살기로 한 천사 같은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태까지 가본 공동체 비해 더 개인 시간이 없고,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을 이웃과 공유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스반홀름의 광활한 야채 텃밭의 무급 일꾼으로 일하러 간 지 첫날, 공동체 식당에서 낯선 풍경을 봤다. 볕이 잘드는 창가의 4인용 식탁에서 노인 한 명이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노인처럼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두, 세 명 더 있었다. 많은 공동체를 가봤지만, 공동체 식당에서, 공동 식사 시간에 혼자 밥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식당에서 배식을 받은 후 음식을 들고 가서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먹기도 했다. 공동체 사람들은 저녁 7시쯤 되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공동체 운영을 위한 공식 회의는 매주 2~3차례 있었지만, 친목 모임이나 공동체 행사는 드물었다. 출퇴근하는 평일에는 회의말고는 아무 행사도 없었고, 주말에는 가족끼리 모이거나 각자 시간을 보냈다. 스반홀름 체류 첫 주, 여기가 정말 개인 봉급까지 공유한다는 공동체가 맞는지 궁금했다. 서로 관계가 깊지 않아 보이는데, 어떻게 개인 봉급까지 공유하며 사는 걸까.

스반홀름의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에 사는 뵈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70년대 후반에 반전, 반핵 운동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 모여 스반홀름을 만들었고, 비혼 청년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동체초기에는 수익의 100%를 내고, 공동체 모임도 빈번했지만, 덴마크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개인주의가 심화하면서 스반홀름도 그 영향을 받았다.

뵈는 "스반홀름에는 개인마다 충분히 자기 팔을 충분히 벌릴 공간이있어요. 공동체에서도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는 게 늘 좋은 건 아니에요. 스반홀름에는 마음이 복잡할 때 나가서 기분을 환기할 자연이 가까이 있고, 사생활을 위한 각자의 공간이 충분해요"라고 말했다.

스반홀름에는 공동체 부엌, 식당, 놀이터, 유치원, 마당등의 공유 공간과 개인 생활을 위한 주택 간의 구분이 확실하다. 

스반홀름에서는 120마리의 젖소를 키운다
 스반홀름에서는 120마리의 젖소를 키운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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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공동체 사람들 간의 유대와 신뢰는 어떻게 만들까. 뵈는 "제게 스반홀름 사람들은 가족이에요. 2000년에 심장마비로 쓰러졌을때, 공동체에서 매일 밤 저를 응원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어요. 공동체에서 산 지 7년째 되던 해, 안식년을 마련해 줘서 포르투갈로 가족전체가 6개월 여행도 다녀왔죠. 그리고 이건 저만 따로 하는건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해요. 새로운 세대와도 소통하고, 공동체를 튼튼하게 하고 싶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스반홀름 사람들의 유대가 약해 보인다는 내 우려가 기우일 뿐이라고 했다.

뵈의 이야기를 들으니 스반홀름의 비밀이 하나둘 벗겨지는 듯했다. 스반홀름의 아이들은 오래 지속되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란다. 나고 자라, 걸음마를 할 때부터 공동체를 떠나야 하는 18세까지 매일 서로 얼굴을 보며 지낸다. 각자의 집이 있지만,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스반홀름에서 나고 자란 19세의 소피는 거대한 자연에서 오랜 친구들과 자라온 자신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회상했다.

"스반홀름에서는 많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같은 추억을 공유해요. 다 같은 공간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요즘 같이 이동이 잦은 시대에 스반홀름 뿐 아니라, 여태까지 가 본 다른 공동체에서도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은 마을에 오래 살고, 깊이 서로를 알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입신청에서 회원인증까지 6개월 걸려

회의 중인 스반홀름 회원들
 회의 중인 스반홀름 회원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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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반홀름은 회원 선별 기준이 까다롭다. 가입신청에서 회원인증까지 6개월의 기간이 걸린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 재정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받지 않는다. 6개월의 과정에 이 사람이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할 사람인지, 아니면 단지 스반홀름에 삶을 의탁하기만 하러 온 사람인지 분별해 낸다고 했다. 사회에서 받는 봉급의 액수, 사회적 지위는 전혀 관계 없었다.

스반홀름에서 4년을 산 프레야, 안드레아스 부부는 신뢰 없이는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스반홀름은100명이 넘게 사는 큰 공동체예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과 다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는건 불가능해요. 일부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나머지 사람과는 가볍게 안부 묻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죠."

관계가 얕다면 어떻게 서로를 믿고 지내는 건지 묻자 "스반홀름의 회원 선정 기준은 대단히 까다롭다"며 "6개월의 절차를 거친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일 확률이 높고, 우리 공동체의 비전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두 사람은 대답했다.

마을 회의에서도 스반홀름 사람들의 신뢰는 빛을 발한다. 스반홀름에서는 모든 의사결정을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투표로 의사 결정을 할 경우,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대안을 제시해야 하므로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있을 수 없다. 공동체 리더가 없으므로, 동의해야 한다는 압박은 없다. 그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때까지 회의를 하고 또 회의한다.

친환경 에너지 사용, 친환경 먹거리 재배 등의 기술적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 비하면 해결도 쉽고, 공동체에서 마음만 먹으면 해내기 어렵지 않다. 스반홀름의 풍력 발전기는 한번 설치 한 이후로 어제도, 오늘도 문제없이 작동했다.

스반홀름 회원들은 분명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들이 낸 금액보다 더 많이 돌려받았지만, 자기 삶의 많은 시간을 공동체 회의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일에 썼다. 자가용 마련이나, 빈번한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도 내려놔야 했다. 

공동체 생활의 핵심은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고, 공동체 생활과 개인 삶의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개인의 전적인 희생이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니라, 내가 공동체에 이바지한 만큼, 받아야 할 것도 잡아야 한다. 타인과의 조화를 위해 내 욕심을 줄이고 남이 내 삶에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반홀름이 40년 동안 이어질 수 있던 이유가 여기 있다.


태그:#덴마크, #공동체, #세계일주, #스반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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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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