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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년의 서울살이와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제주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서른일곱 살 늦은 나이에 '육아'의 세상에 갑자기 던져져 온갖 추태를 보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육아 중인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웃기고도 모자라게 육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드리기 위해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연재해보려 합니다. - 기자 말

"어머니, 저 배불러요. 후식 내오지 마세요."

시댁에서 저녁을 먹은 뒤, 냉장고에서 배를 꺼내 깎으려는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말했다. 어머니는 크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 먹지 마. 이거 니 거 아니야. 선우 줄 거다."

잠깐이지만 겸연쩍어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녀독남 귀하게 자란 남편이 자기 아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부동의 1위'였는데, 38년 만에 그 위치가 바뀐 것이다.

느지리오름 정상에서
▲ 할머니와 손주 느지리오름 정상에서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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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주'란 어떤 의미일까? 할머니에게 '손주'는 뼈를 녹이는 존재라던데…  '뼈가 녹는 감정'의 깊이를 가늠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저 꼬물거리는 아기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은 손자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할아버지는 손주의 사진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손주 집 방문하는 날을 기다린다.

엄마 1년차, 온갖 말에 예민한 시기

한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면, 다른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1번이고 1위인 '우리 손주'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눌려있는 엄마에겐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가끔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가 손자를 보러 오실 때면 "선우 손톱 깎았어?", "바지도 안 입고 있네, 안 추워?", "쉬야 했네, 기저귀 갈았어?", "얼굴에 멍이 들었네. 아이쿠 어쩌다가"라는 말씀을 아이를 보며 하신다. 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해야 하는데, 손주를 보며 말씀하시니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된다.

질책이 아닌 애정 어린 잔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 됐든 주양육자인 나는 벌 받는 학생처럼 잔뜩 긴장한다.

"오늘 자기 전에 깎을 거예요."
"지금보다 더 두껍게 입으면 땀띠가 나서요."
"균형을 잘 못 잡아 넘어졌어요. 잘 본다고 봤는데도…."

처음엔 구구절절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어머닌 잘 듣지도 않으셨다. 말 그대로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닌 그저 지나가는 말을 하신 것이다.

가끔은 "어머니, 저 엄마예요. 아이를 방치하지 않아요. 하루 종일 아이 옆에 붙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온종일 쉴 틈 없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도, 어머니에게 쉽게 보이는 구멍이 많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머니 눈에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런데 사실 어머니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든 나를 도울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분이셨다. 하지만 나는 잘하고 싶었다. 척척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잘되지 않았다. 그런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별소리 아닌 것들도 자꾸만 마음에 담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선우 콧대를 세워줘야 한다고 자꾸 만져주래."

저녁을 먹던 어느 날, 어머니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만 '에휴' 하고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할아버지고 할머니고 선우가 중심인 세상에서 오가는 대화 소재일 뿐이었지만, 나에겐 온통 명령처럼, 분부처럼 들렸다. 

잘한 건 '아들 덕', 못한 건 '내 탓'

마음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내가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질 때와 딱딱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는 천지 차이였다. 부정적인 생각은 한 번씩 불면으로 찾아오고, 밤새 잠을 못 이룰 때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졌는데, 그럴 땐 누가 이 '생각의 꼬리'를 끊어주어야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남편과 대화를 많이 했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내가 부풀려놓은 생각과 상상들은 얼른 마음속에서 지워야 했다.

그때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자존감'이었던 것 같다. '엄마 1년차'의 신입은 그토록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옳은지 그른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던 지난 1년 동안, 나는 누군가의 '괜찮아, 잘하고 있어, 잘 키우고 있어'를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아들이 다 가져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들이 수고한 일이 되었다. 반대로 아들이 넘어지거나 울거나 하면 그건 내 탓이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나답게 육아하기를 포기하고, '누군가의 눈'에 흡족한 육아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도 상담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어깨를 도닥여주는 남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언제나 위험천만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 나를 뒤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존감은 누군가가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들, 우리 요 정도에서 합의하자

더 놀고 싶은 아이와 제발 자고 싶은 엄마
▲ 잠은 언제 잘 거니 더 놀고 싶은 아이와 제발 자고 싶은 엄마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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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년 동안 아들은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들, 특히 '잠'과 연관된 영역을 무수히 침범하고 방해했다. 아들과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울고불고 웃으며 친해져 갔다. 나는 신이 아니라 엄마이기에, 아이를 울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1년 365일, 24시간, 서툰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끝내 붙어 있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엄마가 무조건 아이에게 맞추는 건 아닌 듯하다. 1년의 모유 수유를 끝내고 단유하던 첫날, 아이는 많이 울었다. 우는 아이를 '쌩팔(맨팔)'로 안아 재우면서 수십 번 '그냥 젖을 물릴까' 생각했지만, 둘째 날, 셋째 날 점점 더 나아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도 엄마의 마음을 파악하고 맞춰가고 있구나. 우리는 암묵적인 합의를 하고 있구나. 조율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막 돌이 지났다. 우리의 결혼식(관련 기사 : 원빈 결혼하던 날, 우리도 진상 부부가 되었습니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의 생일도 소박하게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려 가족과 함께 보냈다. 희한하게 돌이 지나고 아이는 너무나 똑똑해졌다. 요즘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와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지난 1년 동안 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엄마 역할에만 집중한 것이 보람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엄마 역할 하느라 '박진희'라는 존재는 그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값진 일을 해내고 있었다.

독감 예방접종으로 생일빵을 대신 했다.
▲ 아들의 첫 생일 독감 예방접종으로 생일빵을 대신 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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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생일 아침, 우리는 독감 예방접종으로 아이에게 진정한 '생일빵'을 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준비해둔 커다란 안개꽃 다발과 새벽에 정성 들여 쓴 편지를 내게 내밀었다. 선우가 자란 1년이지만, 곁에서 함께 고생한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단다. 선우는 주사 맞느라 울고, 나는 자존감을 세워준 남편 때문에 울면서, 그렇게 아들의 첫 생일을 보냈다.

남편으로부터 꽃다발과 정성들여 쓴 편지를 받았다. 충분했던 하루.
▲ 아들의 첫 생일 남편으로부터 꽃다발과 정성들여 쓴 편지를 받았다. 충분했던 하루.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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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사랑에 뼈 빠지는 분들, 감사합니다

거의 매일, 대구에 있는 친정 식구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친정 부모님은 동생네 두 조카 녀석을 돌보느라 동생 집으로 출퇴근을 하신다. 

두 손주와 산책쯤은 기본으로 하는 친정아빠
▲ 손주를 사랑하는 외할아버지 두 손주와 산책쯤은 기본으로 하는 친정아빠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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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된 막내 조카는 외할아버지를 가장 좋아한다. 얼마 전엔 퇴근을 하고 동생 집에 들른 할아버지를 보고, 조카가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외할아버지는 손 씻을 시간도 없이 바로 조카에게 붙잡혔다. 조카가 뭐라고 할아버지에게 명령을 했다. 그랬더니, 세상에 우리 아빠가 물구나무를 섰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물구나무를 서는 할아버지라니... 나는 아빠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말 그대로 '웃퍼서' 눈물이 났다. '뼈 녹이는' 손주 때문에 '뼈 빠지는' 할아버지라니.

최선을 다해 내 아이와 놀아주는 할머니가 여기 또 있다. 그깟 잔소리 좀 들으면 어떠한가. 내 아이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데. 그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또 얼마나 건강하게 자랄까. 감사한 것만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나날들. 뼈 녹이는 손주들 덕분에 뼈 빠지게 고생하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몹시 응원하고 싶다.


태그:#육아, #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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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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