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황해>, 2012년 <신세계>, 2014년 <차이나타운>, 2016년 <아수라>, 그리고 2017년의 <청년경찰>과 <범죄도시>. 이들 영화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범죄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는 점이고, 둘째는 범죄자가 한국계 중국인(아래 조선족)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법무부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체류 외국인은 매년 9.26% 증가하여 2016년 기준 약 205만 명에 달한다. 이중 중국인은 약 101만 명으로 전체 수의 약 50%에 달한다. 이에 조선족의 범죄 문제는 점점 더 화두가 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인의 강력범죄(살인, 강도, 성폭행, 방화) 수는 351건으로 전체 외국인의 약 42%를 차지한다. 폭력범죄는 약 68%를 차지한다.

혐오의 시작, 타자화

2015년 동북아평화연대와 코리안리서치센터가 서울시에서 후원을 받아 시행한 <청년세대(20~35)의 중국 동포 이미지 인식에 관한 연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청년의 약 94%가 조선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약 82%가 조선족에 대한 인식은 '신문과 방송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응답했으며, 조선족 차별의 이유로는 약 60%가 '중국 동포와 관련한 사건들 때문에'라고 답했다. 실제로 2012년에 발생한 수원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은 조선족이었고, 사체를 280조각으로 해체하여 유기하는 등 그가 보여준 잔인성은 국민에게 큰 공포를 주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조선족은 흉기를 갖고 다닌다", 혹은 "납치를 하고 인육을 먹는다" 등의 조선족 괴담도 떠돌았다.

2016년 한국에서 발생한 중국인의 강력범죄와 폭력범죄는 각각 전체 비율의 1.3%, 1.7%이다. 반면 중국인 외의 외국인 범죄자 수를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인의 비율은 강력범죄와 흉악범죄 모두 약 97%를 차지한다. 이처럼 대중 일반에게 노출되는 강력범죄자 중에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조선족=범죄자'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은 타자화에 기반을 둔다.

타자화란 특정 집단에 속한 개인의 주체성과 특성을 무시하고, 이들을 집단으로 범주화하여 특정 속성을 부각하면서 사회 일반과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타자화는 주로 사회적 소수에게 발생한다. 정치력이 약한 집단은 더 강한 집단을 이질적으로 규정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혐오는 타자화에서 시작된다. 조선족 각 개별이 조선족이라는 집단으로 범주화되고, 여기에 강력범죄자라는 속성이 부각되면 개인의 인격이 삭제된다. 따라서 조선족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각 인간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아닌 강력범죄자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되고, 이 과정에서 '조선족=범죄자'라는 프레임이 생성된다. 이렇게 조선족에 대한 폭력은 합리화된다. 이때 조선족은 다수가 지닌 인식을 공유하지 못해서 다시 타자화 된다. 조선족은 자신들이 강력범죄자라는 인식을 할 수 없는데, 이는 타자화를 형성하는 '일반적' 생각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혐오의 감정적 호소

영화는 혐오를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타자화의 근거를 인간 내부에서 형성한다. 대중영화는 문법적 측면에서 장르 영화의 특성을 따른다. 장르 영화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비가시적 편집 기법 등을 통해 이음새를 감추고 실제처럼 가장하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때 영화는 실제 같은 경험을 매끈하게 제공하는 동시에 레저로서의 재미를 제공하기 위하여 특정 장면을 극적으로 노출한다.

조선족은 <황해>에서 살인 청부업자로, <신세계> <아수라> <범죄도시>에는 조직폭력배로, <청년경찰>과 <차이나타운>에서는 인신매매범으로 나온다. 영화 속 범죄자는 범죄에 관련된 행동을 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영화 속의 조선족은 잔인하게 묘사된다. 망치로 손목이나 머리를 내리치고, 칼로 목을 긋는 등의 장면은 흔히 등장한다. 이들 장면은 실제처럼 매끄러워서, 관객들 내부에서 현실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목격했을 때와 유사한 감정을 환기한다. 이는 실제 조선족이 저지른 범죄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족=범죄자'라는 타자화로 이어진다.

조선족들의 생활을 일반 사람의 생활 이하처럼 묘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황해>에서 조선족은 짐승처럼 족발을 먹고, 뼈로 사람을 죽인다. <청년경찰>에서는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떼로 잠을 자는 식으로 묘사된다. 이는 '조선족=짐승 같다'는 감정적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 속에서 범죄자의 이미지는 강화된다.

[혐오의 진화 1] 슈퍼히어로의 세계

 선과 악이 뚜렷해야 하는 영화 속 세계. <범죄도시>에서 이들은 철저한 악으로 등장한다.

선과 악이 뚜렷해야 하는 영화 속 세계. <범죄도시>에서 이들은 철저한 악으로 등장한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는 '슈퍼히어로'적 면을 드러내며 혐오를 강화한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주로 장르 영화의 내러티브 문법을 빌려온다. 이때 내러티브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규정하며 선 vs. 악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결국은 선이 승리한다는 결말을 짓는다. 이때 선과 악은 영화 내에서 새로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에 기댄다.

<황해> <신세계> <아수라> 등은 모두 조직폭력배 간의 싸움을 서사로 한다. 따라서 이들 영화에는 선악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는 선과 악을 분명히 규정한다. 이때 악은 조선족이고, 선은 경찰이다. <청년경찰>은 기준(박서준 역)과 희열(강하늘 역)이라는 두 명의 경찰대 후보생을 주인공으로 앞세우고, <범죄도시>는 마석도(마동석 역)이라는 강력반 형사를 내세운다. 특히 <범죄도시>는 주인공에게 외형적으로 아주 강력한 마동석을 캐스팅하며 선의 강력함을 더욱 강화한다.

이들 영화가 코미디 요소를 적극적으로 삽입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청년경찰>은 문제아 후보생이라는 헛똑똑이 캐릭터가 겪는 우여곡절을 이용한다. <범죄도시>는 배우 마동석의 외형에서 쉽게 예상되지 않는 "마블리(마동석+lovely)"적 언행을 통해 웃음을 유도한다. 코미디 적 요소는 관객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에서 다른 장르보다 사회 비판적 주제나 정치적 이슈를 더욱 수월하게 공론화할 수 있으며, 수월하고 가볍다는 점에서 사회 내부의 무의식과 관련이 깊다.

<청년경찰>과 <범죄도시>의 이러한 서사는 할리우드의 일반적인 슈퍼히어로물과 유사하다. 이처럼 관객을 영화 내의 내러티브로 설득하지 않고, 대신 관객이 기존에 갖고 있던 사회적 인식과 무의식 속에 형성된 윤리관에 기대어 광장의 선동꾼처럼 감정적으로 호소한다는 점에서 혐오는 장르 영화문법처럼 더욱 매끄러워진다. 또한, 승리한 선의 세력이 한 나라의 공권력인 경찰이라는 점에서 타자화는 더욱 강화된다.

[혐오의 진화 2] 현실요소 삽입

 영화 <청년경찰>도 조선족의 범죄를 추적하는 게 주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일부 단체에서는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영화 <청년경찰>도 조선족의 범죄를 추적하는 게 주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일부 단체에서는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청년경찰>은 조선족의 범죄를 보여주며 대림역 일대를 적극적으로 노출한다. "여기(대림동) 조선족들만 사는데 여권 없는 중국인도 많아서 밤에 칼부림이 자주 나요.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밤에 다니지 마세요"라는 대사 등도 나온다. 실제로 대림역 인근은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대림동의 등록 조선족은 약 1만5000명이며, 특히 대림역이 포함된 대림2동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약 8300명이 거주한다. 이들 중 1만767명 방문취업 비자(H-2)를 받아 거주 중이다.

이에 40개 중국동포 단체의 대표들은 지난 9월 1일 <청년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대림2동 주민센터에서 <청년경찰> 상영금지 촉구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박옥선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황해> 등 기존에 나온 영화들은 조폭이나 살인 청부업자 세계를 배경으로 하죠? 저희 같은 일반 서민들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 영화 청년경찰에서는 일반 서민들이 사는 대림동을 특정해서 범죄자 소굴로 묘사했어요. 또 평범한 중국 동포들을 경찰도 무서워하는 칼 부림꾼으로 만들어버렸고요"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중앙일보> "'청년경찰' 일파만파... 40개 중국동포 단체 대표 최초 집결" 9월 1일)

<범죄도시>는 가리봉동의 흑사파를 모티프로 한다. 흑사파는 중국의 거대 폭력조직 흑사회의 행동대장 출신인 양씨가 연변 폭력배 31명을 모아 2005년에 결성한 폭력집단이다. 이들은 가리봉동 일대에서 칼이나 도끼를 차고 다니면서 상인들에게 위협을 가해 현금을 갈취하였다. 포장마차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휘둘러 시민에게 상해를 입히는 등의 행동도 저질렀다. 이에 흑사파 조직원들은 범죄단체 결성, 상습 폭행 등으로 혐의로 2007년에 입건되었다.

흑사파는 가리봉동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기존의 가리봉동 중심세력이었던 흑룡강파를 무너트렸다. 이에 흑룡강파 조직원은 호프집에서 흑사파 두목의 배를 찌르고, 흑사파는 보복으로 흑룡강파 대장을 칼로 찌르고 발목을 부러트리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 스토리는 <범죄도시> 서사의 뼈대가 되어 그대로 등장한다.

실제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그들을 범죄자로 묘사하는 것은 영화의 이음새를 숨기며 실제처럼 가장하는 것을 지향하는 대중영화의 문법 속에서 영화적 장치와 현실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이는 관객에게 조선족이 실제로 그렇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혐오의 프레임을 강화한다.

<황해>의 제작사가 리순복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였다는 점을 숨겼지만, <범죄도시>의 제작사는 홍보 포스터에 "실화 영화 액션"이라는 문구를 집어넣고, 언론과 시사회를 통해 실화임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강윤성 감독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 중 가장 현실적이고 리얼리티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음을 강조하는 것은 조선족=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지금 여기의 현실로 호도한다. "나쁜 사람들은 반드시 응징을 당하고 벌을 받는다는 것을 함께 담아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은 조선족=나쁜 사람=범죄자라는 도식을 강화한다.

혐오 vs. 정치적 올바름

 영화 <차이나타운>의 김혜수. 이 영화도 조선족 범죄 집단의 이야기가 주요 내러티브이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김혜수. 이 영화도 조선족 범죄 집단의 이야기가 주요 내러티브이다. ⓒ CGV아트하우스


2004년의 흑사파 사건. 2012년 수원 토막살인사건. 영화 <황해>의 서사를 답습한 2014년의 조선족 살인청부업자 사건 등에서 보이는 조선족의 모습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실제로 현재 중국인의 강력 및 폭력범죄 비율은 국내 체류 중국인 전체의 약 0.68%로, 한국인의 0.05%인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인다.

혐오적 태도와 "성별·인종 등 특정 집단에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말이나 정책"(메리언 웹스터 사전)을 지향하는 정치적 올바름(PC) 사이의 간극은 전 세계적으로 팽팽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대선후보 연설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 망치고 있다" 등의 연설을 했고, 이는 미국 백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뒤집고 승리하며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되었고, 당선된 이유 중 하나가 '정치적 올바름'이 되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워싱턴포스트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와 달리 고학력 부유층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여성이나 이슬람교에 대한 비하 발언을 일삼은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지 못했지만, 투표장에서는 트럼프를 찍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역전된 이유로 '정치적 올바름'을 꼽았다. (KBS, 트럼프의 막말과 '정치적 올바름', 2016.11.10.) 슬로베니아의 출신의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는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PC를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관련 기사: <한겨레> "[슬라보이 지제크 칼럼] 무엇을 할 것인가 -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1월 29일)

이탈리아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 시사주간지 <레스프레소>에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칼럼인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억압받는 소수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탄생한 '정치적 올바름'이 새로운 근본주의로 전환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글에서 에코는 "텍스트의 '올바른' 해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추방함으로써 분명 불관용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에코는 <가재걸음>(열린책들, 2012)에서 "만약 우리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신체장애인이나 불구자 대신 '다른 능력을 갖춘 differently abled' 사람들이라 부르기로 하고선 이후 공공장소에다 진입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적으로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불합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절대로 끝나지 않을 회피의 목적으로 새로운 이름이 요구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하며 PC의 허점을 지적했다.

한편 지제크는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 에서 PC가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만 생각하려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며, 실천 없는 이들의 무의식적 위치 이동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정치적 올바름" 2015년 10월 30일) 따라서 지제크는 PC의 어설픈 소비 대신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을 강조했다. 한편 지제크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인디고연구소, 2012)에서 진정한 정치적 올바름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범죄도시 청년경찰 정치적 올바름 조선족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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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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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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