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스톰> 영화 포스터

▲ <지오스톰>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인간은 자연에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미지의 것을 보고픈 호기심도 가진다. 재난 영화는 자연이 주는 공포를 경외의 눈으로 보게 만들고 스크린을 통해 재해를 경험하고 싶은 욕망도 실현하는 이중적인 장르다.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무성 영화 시절부터 이런 심리를 간파하여 '재난'을 제공했다.

초기 무성영화 중 하나인 <파이어!>(1901)가 화재 사건과 생존자를 구조하는 소방관을 보여준 이후 재난 영화는 자연재해, 외계인의 공격, 바이러스의 창궐, 현대 시스템의 위기 등 다양한 소재로 관객을 매혹했다. 1930~1940년대엔 물, 불, 지진을 소재로 한 <대홍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가 나왔다면, 1950~1960년대는 전쟁과 핵무기를 은유한 <우주 전쟁> <세계가 충돌할 때> <화성침공> <괴물>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 제작된 <에어포트> <포세이돈 어드벤처> <대지진> <타워링>은 대형 예산, 톱스타, 다양한 인물들로 전개되는 멀티 플롯, 재난의 스펙터클, 영웅의 희생이란 공식을 구축하며 장르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2000년대는 컴퓨터 그래픽이 재난 영화를 재발견한 시기다. <트위스터> <타이타닉> <볼케이노> <단테스 피크> <아마겟돈> <딥 임팩트> 등 뛰어난 시각 효과를 자랑하는 영화가 쏟아진 이 무렵의 주역은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투모로우> <2012>를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다. 그리고 그의 곁엔 동료 딘 데블린이 함께 했다.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지오스톰>은 <유니버셜 솔저> <스타게이트> <인디펜더스 데이> <고질라>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 제작과 각본을 맡았던 딘 데블린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딘 데블린은 롤랜드 에머리히와 재난 장르를 이끈 주역답게 재난 DNA를 적극 발휘하여 <지오스톰> 속에 인간이 기후를 조작하면서 시작된 지구의 대재앙을 빼곡하게 담았다.

<지오스톰>은 가까운 미래에 기후 변화로 지구에 갖가지 자연재해가 속출하자 세계가 힘을 모아 인공위성 조직망을 통해 날씨를 조종하는 '더치보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으나 인간이 날씨를 자유자재로 통제한다는 SF적 상상력엔 미국이 실제로 기후를 조작한다는 음모론적 시각이 녹아있다.

딘 데블린은 <지오스톰>을 롤랜드 에머리히 문법으로 펼친다. <지오스톰>엔 대통령과 정부(인디펜던스 데이), 영웅으로 활약하는 과학자(고질라), 재난 풍경(투모로우), 세계의 이모저모(2012) 등 롤랜드 에머리히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아마겟돈> <딥 임팩트>의 영향도 감지된다. 마치 1990년대 재난 영화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주연배우인 제라드 버틀러는 1990년대 정서를 한층 강화한다. 8090은 하드 바디를 자랑하는 액션 스타가 맹활약한 시절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만들어진 슈퍼히어로들의 전성시대다. 현재 아날로그 액션을 보여주는 할리우드 스타는 드웨인 존슨, 제이슨 스타뎀, 제라드 버틀러 정도다.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1세기판 <다이하드>인 <백악관 최후의 날> <런던 최후의 날>에서 강한 육체를 뽐냈던 제라드 버틀러는 <지오스톰>에서 '더치 보이'의 개발자인 제이크 로손 역으로 분해 지구의 운명을 짊어진다. 이번에는 몸이 아닌 머리를 활용한다. 제이크 로손은 <아마겟돈>의 해리 스탬퍼(브루스 윌리스 분)와 닮은 면이 많다. 이십여 년 전에 <지오스톰>이 나왔다면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을 맡았겠지 하는 상상도 든다.

과거 재난 영화의 색채로 가득한 가운데 현재의 흐름도 엿보인다. 대통령 경호원으로 나오는 사라(애비 코니쉬 분)와 국제 우주 정거장 셔틀 지휘관 우테(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분)는 과거의 여성 캐릭터와 달리, 남성보다 강한 힘을 과시하고 조직을 지휘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21세기 할리우드의 변화를 반영한다.

정치스릴러의 색깔을 가미한 점도 기존 재난 영화와 차별화된 요소다. <지오스톰>엔 세계가 힘을 모아 기후를 조종하여 안전망을 만들었지만, 그 힘을 악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기적인 세력이 등장한다. 일련의 재난 영화들이 자연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지오스톰>은 절대적인 평화의 힘이 절대적인 파괴 무기가 되어 지구를 지옥으로 만드는 상황을 그린다. 자연스럽게 '더치보이'시스템은 현실의 핵무기와 겹쳐진다.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지오스톰>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지오스톰>은 기상 이변으로 인류가 위기를 맞이하는 광경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맞이할 기후 문제일 수도 있다. 미래 세계의 정세를 예언으로 그린 풍경화일 수도 있다. 두 가지 모두는 미국과 트럼프, 나아가 세계의 대결 구도를 날카롭게 겨냥한다.

지금 미국은 파리기후 협약을 탈퇴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백인 우월주의와 이민 배척주의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세계에서 고립주의가 가속화되는 중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오스톰>에 담긴 분열이 낳은 지옥도, "대립을 벗어나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눈과 귀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 미국, 스코틀랜드, 영국, 호주, 멕시코, 루마니아, 독일, 나이지리아, 이집트, 아일랜드, 쿠바,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배우들이 뭉쳤기에 울림은 더욱 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통해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덩케르크>와 <지오스톰>이 도착한 건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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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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