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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육아, 가사노동 등을 도맡아 하는 모습입니다.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아이가 있는 여성은 집안에 갇힌 납작한 존재로 그려지는 걸까요? 여기,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 개혁·정치·여성주의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엄마의 영역'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당연한 명제를 몸소 증명하는, 'OO하는 엄마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엄마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육아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일과 육아는 반드시 별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엄마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육아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일과 육아는 반드시 별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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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A씨는 어느 날 깜짝 놀랐다. 여느 때처럼 "우리 아들 예쁘다"라고 칭찬했는데, 아이가 "남자는 예쁜 게 아니라 멋진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접하는 책이나 장난감을 꼼꼼히 살피고, 차별이나 편견이 들어간 콘텐츠는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했던 A씨였다.

이후에도 아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여보 나 다녀올게"라며 자연스럽게 '가사노동을 하는 아내와 밖에 나가 돈을 버는 남편'의 모습을 따라 하거나 "발레는 여자들이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A씨는 혼란에 빠졌다. 아이가 커가면서 익힐 편견이 걱정됐고,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아이들이 접하는 콘텐츠를 검토하고, 바꾸기 위해 모였다. 문화·예술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엄마들의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다. 이들은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을 분석하고, 책 속의 '다양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사례를 모아 그림책의 경향성을 밝히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지난 15일, 서울 내방역 인근 밸류가든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명의 엄마들은 각자의 성에 따라 홍, 박, 김, 이, 윤 씨로 표기했다.

한숨 나오는 콩순이와 뽀로로

홍씨는 고전문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고, 현재는 육아를 본업으로 하고 있다. 홍씨는 "엄마인 것은 내 삶에 있어서 떨어트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것 때문에 이전의 삶과 단절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육아를 하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이들과 '엄마들의 그림책 살롱'이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1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박씨가 그 행사에서 프랑스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꼭지를 맡게 되면서 이들의 '작당모의'가 시작됐다. 박씨는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그곳에서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전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곳의 모든 것이 그녀를 '열 받게' 했다. 그러던 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만났고, 여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뭔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직접 주변에 연락을 돌렸다.

그 연락을 받고 승낙한 사람이 스스로를 '맘뉴비'(신입 엄마)라고 표현하는 이씨다. 이씨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늦게 육아를 시작했다. 자신이 아이를 낳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다는 그녀는 강남역 사건이 벌어진 직후 임신을 확인했다. '콩순이', '뽀로로'를 보며 한숨을 쉬던 이 씨는 대학 시절 인연이 있던 박씨와 연락이 닿으면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여기에 음악·예술 기획 일을 하던 윤씨와, 출판업계·영화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사기업에 다니는 김씨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 <다시 보는 그림책>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엄마 홍 씨가 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홍 씨가 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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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입은 아빠, 뜨개질하는 할머니?

성인들이 접하는 콘텐츠는 시대가 변할 때마다 빠르게 바뀐다. 사람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시대적인 콘텐츠는 더 이상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변화가 느리다. 특히 낱권 그림책이 아닌 전집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먼저 아이를 키운 집에서 물려받는 경우도 많고, 수십 권이 한꺼번에 판매되다 보니 아무래도 변화에 둔감하다. 성별, 가족형태, 직업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적 시각 없이 담고 있다.

아이들 그림책 시장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번역된 외서인데, 이 또한 완벽하진 않다. 가령 유명한 그림책인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출간된 지 몇십 년이 지났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비교적 성평등한' 그림책으로 여전히 추천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 역시 80년대 제1세계 영국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졌다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박씨는 "얼마나 추천할 게 없으면 아직도 <돼지책>을 봐야하느냐"며 웃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의식은 그림책에서 재현되는 세계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림책은 편견 어린 묘사를 그대로 답습한다. 예를 들어 '소꿉놀이' 하면 모두가 쉽게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남편이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현관에서 서류가방을 건네받으며 출근하는 아침의 풍경이다. 누가 꼭 이래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미디어나 그림책에서는 항상 이런 모습이 재현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장면들을 체화한다.

김씨는 "어떤 책 한 권에 엄마가 전업주부로 등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핵심은 다른 데 있다. 100권의 동화책 중 99권에서 엄마가 전업주부로만 그려지는 게 '진짜 문제'다. 이런 책을 접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전업주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박씨는 이를 대한민국의 '중산층 콤플렉스'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모범적 미래'만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것이 납작하게 묘사된 중산층의 정상가족의 모습으로 고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책 속에서 맞벌이하는 여성이나 출근하지 않는 형태의 노동, 양복을 입지 않는 일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업이나 성별뿐 아니라 세대 또한 매우 단편적으로 묘사된다. 최근에는 많은 부모들이 조부모와 함께 육아를 한다. 유치원 하원 시간에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림책 속 육아에선 조부모의 역할이 아예 빠져있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는 항상 벽난로 앞에 앉아 뜨개질하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인데, 이 모습이 한국의 조부모를 제대로 반영한 건지 의문이다.

이 세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그림책

이런 빈약한 묘사는 부모의 삶,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살게 될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윤씨는 일하는 부모의 이미지가 늘 어딘가로 출근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지기 때문에 아이에게 자신이 하는 재택근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묘사는 현실의 반영이고, 또 이런 묘사에 익숙해진 이들이 현실에서 편협한 인식을 재생산하기도 한다.

홍씨의 남편은 정장을 입지 않고 일을 하고, 퇴근을 일찍 하기 때문에 아이의 하원을 도맡는 날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주변 엄마들의 의아한 눈길이 꽂힌다. "자기 남편은 일 안 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정장을 입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남성은 '일하지 않는 남성'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의 이미지 또한 고정돼 있다. 지난 대선 홍보물에 등장한 워킹맘의 이미지는 단 하나였다. '오피스룩'이라고 부르는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한 손에는 아이를 안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정장 차림을 하고 매일 출퇴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비율에 비해 이미지가 과잉 대표된 사례다.

물론 이런 획일성을 깨기 위한 시도도 존재하지만, 표현 방식이나 관점에 여전히 한계가 많다. 윤씨는 서울시에서 여는 행사 홍보용 포스터에서 성평등을 표현하는 기계적인 방식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포스터에는 남자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이 아이들이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던 것. 남자아이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는 것으로 성평등이 구현될까.

성소수자, 이혼가정, 조손가정과 같이 소위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는 형태의 공동체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소설 등에서 이혼가정을 주제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지만 난 괜찮아, 난 행복해'와 같이 작위적 주제의식을 담기도 한다. 엄마들은 "뭐가 더 좋다는 얘기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삶도 있다고 생각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예시로 들었다.

"꼭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했어,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늘은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빠가 엄마의 새 애인에게도 안부 전해줘, 라고 말하기도 하고. 동성 커플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이야기를 접한 적이 없으면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해본 아이들은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를 하는 모습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를 하는 모습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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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직업, 인종... 종횡무진하는 그림책을 꿈꾼다

이들이 하려는 프로젝트는 그림책의 '다양성'을 평가하는 지표를 만들고, 실제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들에게서 데이터를 얻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정리해 그림책 속에서 수많은 형태의 삶이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서울시에서 정책의 젠더적합성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척도를 바탕으로 지표를 만들고, 출판·젠더 전문가에게 감수를 맡겼다. 지표들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내용이 있나요?
예시)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하는 집사람, 남성은 직업 활동하는 바깥사람
사장님, 의사. 비행사는 남성, 비서, 간호사, 승무원은 여성
▲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나요?
예시) 여성은 순종적이고 얌전한 모습, 남성은 거칠고 적극적인 모습
▲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열등하게 묘사하고 있나요?
예시) 여성은 항상 잘 몰라서 질문하고, 남성은 가르치는 모습
육아휴직 중인 남성, 또는 전업주부 남성을 희화화
▲ 신체의 일부를 성별과 연관시켜 강조하거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표현이 있나요?
예시)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조적인 역할에 한정
뚱뚱한 몸을 희화화, 나이든 몸 비하,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
▲ 가족 구성원을 한정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구축하고 있나요?
예시)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가족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등장
▲ 가족 내 역할을 고정하고 있나요?
예시)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운 아버지, 자상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애교 많은 딸, 듬직한 아들

평가의 대상으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책을 선정했지만, 엄마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로의 확대도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그림책뿐 아니라 교구, 학습지,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접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상호작용하며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고가 말랑말랑한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다. 질 좋고 다채로운 콘텐츠를 경험할수록, 아이들이 자유롭고 한계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92년생 김지영의 삶은 다르기를

"각자 바쁠 텐데 모임에 참여할 시간을 내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엄마들은 "왜 안 그러겠냐"며 웃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러고 있지?"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92년생 김지영들의 삶은 우리와 달랐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우리가 딱 82년생 김지영 세대인데, 우리 때는 너무 아무런 정보 없이 결혼과 육아에 뛰어들었던 것 같아요."

반면에 92년생 김지영들은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결혼과 육아를 지레 포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윤씨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웹툰 <며느라기>를 보면 댓글에서 젊은 여성들이 '비혼이 답'이라고 말하는데 그 마음이 공감 가기도 하지만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경험하는 행복들도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 세대에선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여성 모델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입 모아 말했다. 그 시작이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일 것이다.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 공식 링크

https://meetshare.parti.xyz/p/picturebook

[OO하는 엄마들] 기획 살펴보기
① "육아하다 새벽 2시 등교해 공부" '엄마 학생'의 하루
② 아이 업고 국회로 향하는, '수상한' 엄마들
③ 이기적인 엄마들의 모임, 이 카페는 '적극 환영'


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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