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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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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0일 오전 10시 28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권고안 발표가 났습니다. '건설 공사 재개 59.5%', '건성 공사 중단 40.5%'로, 결국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다시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기억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있습니다.

"원전 정책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습니다.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습니다."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국가 공식 행사에서 대통령이 '탈핵'을 천명한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이 원하는 공약을 만들기 위해 운영했던 '문재인 1번가'에서 30만 명 넘는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공약이 바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이었습니다. 탈원전과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열어 갈 에너지 전환 시대를 수많은 국민들이 열망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됐던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 운동'은 조기 대선을 치르며 당초 계획보다 훨씬 일찍 서명이 마감됐지만, 33만8147명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최종 집계됐습니다. 이 결과를 당시 문재인·심상정·안철수 후보에게 전하며 탈핵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약속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탈핵에 대한 기대와 바람에 대한 응답이 지난 6월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발표됐습니다. 이날 대통령은 ▲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 ▲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 금지 및 월성 1호기 폐쇄 ▲ 원자력 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승격 및 다양성과 대표성·독립성 강화 ▲ 탈핵로드맵 빠른 시일 내 마련 ▲ 친환경 에너지 세제 합리적 정비 ▲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 효율화 및 산업용 전기요금 재편 등을 제시했습니다.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 '공론화'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문제에 있어서는 '백지화'가 아니라 한 발 물러서는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안전성, 공정률,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3개월 동안 중단할 것과 공론화로 결정할 것을 의결했습니다. 7월 7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추진 계획이 발표되고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시민사회 진영은 공약 후퇴에 대한 유감을 표하면서도 공론화의 숙의 과정을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대응 체계를 꾸렸습니다. 7월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 900여 단체들이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을 꾸리고 발족식을 거행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가 탈핵으로 가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진정한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탈핵 집중 행동을 펼쳐나갈 것임을 밝혔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8월 17일, 70여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성로 광장에 모여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대구경북시민행동' 출범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기자회견과 강연·토론회를 열었고 거리에 현수막을 걸고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나누고 서명을 받으며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순례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신고리 댄스'를 추기도 하고 시민선언을 발표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알려왔습니다.

9월 9일에는 탈핵을 염원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울산에 모여 함께 행진을 하고 한목소리로 탈핵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변화를 위해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발족식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발족식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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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론화위원회는 8월 25일부터 9월 12일까지 전화 설문을 통해 시민참여단 500명을 모집했습니다. 남성이 51%로 여성 49%보다 많았고, 지역적으로 서울(23.2%)과 경기(24.2%)가 절반 가까이 차지해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을 비율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세대별 분포에서도 60세 이상(23.2%)과 50대(22.4%) 순으로 많아 미래 세대를 위한 결정을 기성세대들 위주로 판단케 하는 것은 아닌지, 기대보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습니다.

16일,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발표를 듣고 2차 조사를 가졌고, 이후 지역 순회 토론회와 TV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어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합숙토론이 이어졌고 토론 전후로 3차, 4차 조사를 마쳤습니다.

수십 년간 원전은 안전하다고 학습돼왔고, 수백수천억 원이 원전 홍보에 사용돼왔습니다. 이미 기울어졌던 운동장은 공론화 절차가 진행되자 더 가파르게 기울어졌습니다. 친원전 기사를 퍼붓던 언론은 팩트마저 왜곡해가면서 총력을 기울였고,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로 갈등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한수원을 비롯한 정부출원 연구기관까지 각종 이벤트에 물품까지 배포하며 원전 홍보에 앞장섰습니다.

이에 대항해 시민사회 진영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고문을 쓰고 카드뉴스와 팩트체크를 SNS에 공유하며 바로잡으려 했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될 정도로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변화를 믿었기에 마지막까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의 공론화가 말뿐인 공론화로 고성과 막말이 오가며 졸속으로 진행됐던 것에 비하면 형식적인 틀은 갖췄을지 모르나,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준비와 운영에서도 미흡한 점이 적잖아 공정한 공론 형성이 가능할까 미지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여 대상자 478명 중 471명이 참석해 건설 재개와 중단 양측의 발제를 듣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시종일관 진지하고 차분하게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해 20일 공론화위원회는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24일 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승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다... '탈핵의 길'은 계속된다

신고리 5·6호기에는 승패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경기가 아닙니다. 이는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도 한 말입니다. 부족한 점도 있었겠지만 공론화를 통해 얻은 국민의 소중한 의견을 어떻게 정책으로 풀어내 실현해 나갈 것인지, 거스를 수 없는 에너지전환 시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열어갈 것인지. 국민에게 넘겼던 공은 다시 정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는 재개됐지만, '탈핵의 길'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던 순간들도 그 길 위의 발자국으로 남아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핵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탈핵! 탈핵! 탈핵!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구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지빠귀와 장수하늘소' 11+12월호에 실릴 예정인 글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태그:#탈핵, #탈원전, #신고리5_6호기백지화, #NONUKES, #에너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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