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살아있는 전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맞대결을 펼칠 기회를 잡았다.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은 18일 오전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3차전을 펼친다.

토트넘과  레알 모두 나란히 2승을 거둔 가운데 골득실에 다득점까지 같아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이 경기의 승자가 조 1위로 올라감과 동시에 '죽음의 H조'에서 가장 먼저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토트넘은 비록 원정인데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열세지만 앞선 경기에서 도르트문트(3-1), 아포엘(3-0)을 완파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좋은 승부가 기대된다.

앞선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던 손흥민은 레알전에서도 선발출장이 기대되고 있다. 손흥민은 아직 정규리그(EPL)에서는 골을 신고하지 못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손흥민 개인으로서도 레알 마드리드전은 의미가 있는 경기다. 손흥민은 평소 호날두에 대한 동경심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손흥민은 지난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날두를 볼때마다 굉장하다는 생각을 한다. 맨유 시절부터 난 그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항상 모든 경기를 챙겨봤다. 그가 했던 기술을 많이 시도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호날두는 많은 선수들의 아이돌같은 존재"라고 극찬한 바 있다. 평소 존경하던 우상과 같은 프로 선수가 되어 한 그라운드 안에서 뛰게 된다는 것만으로 손흥민에게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손흥민에게 레알전이 중요한 이유는 호날두와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다. 토트넘은 리그에서 순항하고 있지만 손흥민의 입지는 다소 애매한 상황이다. 해리 케인-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으로 이어지는 토트넘의 공격 삼각편대는 올시즌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견고하다. 지난 시즌 21골을 기록하며 한국인 유럽파 역대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던 손흥민은 올시즌 초반에는 팔 부상 등의 여파로 제 컨디션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고 득점포도 주춤하다. 지난 9월 14일 도르트문트전 마수걸이 골 이후로 다시 한달 넘게 골침묵에 시달리고 있다.

설상가상 손흥민은 최근 들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지션 땜빵' 역할을 요구받는 처지다. 손흥민의 주 포지션은 4-2-3-1에서의 측면 공격수다.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은 지난 시즌에 이어 손흥민을 윙백으로 배치하는 전술적 실험을 자주 시도하고 있다.

전문 측면 공격수를 두지 않은 스리백 전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손흥민이 계륵이 된 모양새다. 손흥민의 윙백 변신은 토트넘의 백업수비 자원 부족과 측면 공경력 강화라는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포체티노 감독의 승부수지만, 어디까지나 '골잡이' 손흥민의 활약을 보고 싶어하는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달가운 장면만은 아니다.

손흥민의 윙백 기용은 현지에서도 효율성을 놓고 반응이 분분하다. 손흥민은 14일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본머스전에도 왼쪽 윙백으로 출전했다. 토트넘은 본머스에 1-0으로 승리하며 올시즌 EPL 홈경기 첫 승을 올렸고 손흥민은 에릭센의 결승골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경기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물음표에 가까웠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다 보니 수비는 물론이고 장점인 공격까지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레알전에서 토트넘이 만일 정상적인 4-2-3-1 포메이션을 구사한다면 손흥민은 익숙한 측면 공격수로서 선발출장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스리백 전술을 쓴다면 손흥민의 출장 확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현재 토트넘은 주전 측면 수비수인 벤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지난 본머스전에 이어 레알전 출장이 불투명한 상태다. 만일 손흥민이 레알전에서도 윙백으로 나선다면 우상인 호날두를 전담마크하는 진풍경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선호하는 호날두는 포지션상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알이 최근 투톱을 구사하는 4-3-1-2 포메이션을 자주 활용하는 것을 감안해도 3명의 중앙수비수를 배치하여 안정감을 놓이는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지난해 FA컵 준결승전 첼시전의 악몽에서 보듯, 레알같이 공격력이 막강한 팀을 상대로 전문 수비수가 아닌 손흥민을 윙백으로 활용하는 모험을 또 걸지는 미지수라는 점. 수비력에 무게를 둔다면 중앙수비수지만 풀백 경험도 풍부한 얀 베르통언을 측면으로 돌리거나 신성 카일 워커 피터스 등을 투입하는 것이 더 유력하다. 이 경우 손흥민은 벤치에서 조커로 대기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공교롭게도 호날두 역시 손흥민과 마찬가지로 리그에서는 무득점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순항하고 있다. 호날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2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자신이 보유한 챔스 최다골 기록을 109골로 갈아치웠다.

세계적인 위상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손흥민과 호날두 모두 자국 팬들의 엄청난 기대와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매일같이 그라운드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왕이면 손흥민이 우상 호날두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성공한 열혈팬'의 좋은 예를 보여줄 수 있기를 많은 한국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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