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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5일 아침 9시 22분. 마침내 아들과 함께 '서울 달리기 대회' 10Km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계기는 지난 6월이었다. 몇 달 동안 쉬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자 둘째 아들이 살을 빼겠다며 같이 뛰겠다고 한 것. 아무렴! 살 빼는 데는 역시 달리기가 최고지. 마음이 바뀔까 싶어 얼른 운동화를 사 주었다.

1Km를 뛰고 걸어오는 것으로 시작해 차츰 거리를 늘려 왔는데 몸무게가 많이 불어 있던 녀석은 그것조차도 쉽지 않아 했다. "처음엔 다 그런 것!"이라며 위로하고 회유도 해가며 격려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어쩌다 두 번 정도를 뛰는 것만으로는 거리도 스피드도 늘지 않았다. 몸무게 역시 마찬가지. 체중계에 올라섰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없으니 열의도 식을 수 밖에. 오히려 적당한 운동으로 밥맛만 좋아져 체중은 갈수록 더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도 기특한 것이 운동하러 가자 하면 두 번에 한 번 정도는 큰 저항없이 따라 나서곤 했다는 것. 아마도 대회 날짜를 미리 정해 놓았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하다.

그렇게 끊어질 듯 포기할 듯한 달리기가 힘겹게 몇 달을 이어왔고 마침내 대회일이 다가 왔다. 문제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하는 탓에 교통통제를 오래 할 수 없어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 10Km는 1시간 30분이 마지막이었다. 아들은 지금까지 5.5Km를 달려 본 것이 최고였고 그마저 요즘 들어선 4Km 밖에 뛰지 못했다. 명색이 처음 참가하는 대회인데 컷오프에 걸려 인도로 걸어 들어오게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고심할 수 밖에 없었다. 대회 전날, 밤잠을 설치며 세운 전략은 억지로라도 5Km까지 뛰고 나머지 절반은 걷다 뛰다 해서라도 어떻게든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 오자는 것. 그러기 위해 내가 끝까지 같이 뛰어 주기로 했다. 아들도 동의.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들을 깨웠다. 대회장은 시청 앞 광장. 서두른 덕분에 여유있게 도착해 경품행사에도 참여하고 주위도 둘러 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오전 8시 15분,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 신호가 울렸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는 사이 어느새 1Km, 2Km를 지나고 있으나 아들은 의외로 잘 뛰고 있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 4Km가 가까워지자 힘들다며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 진다. 나는,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마침내 5Km. 애초 계획한 목표지점이다. 시간은 30분. 급수대가 있어 물을 마시면서 한숨 돌린다. 나란히 걸으며 상황을 알려 주었다. 녀석은 시간 계산을 해 보는 눈치. 얼마나 걸었을까? 아들이 내 등을 툭 치며 앞으로 뛰어 나간다. 아마도 걷기만 해서는 제한시간에 쫓길 듯한 생각에 체력을 회복한 만큼 한 번 해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Km를 달리고 다시 또 한 번의 걷기가 있은 후 마지막 2Km를 쉬지 않고 달려 마침내 멋지게 결승선을 통과. 평소 연습하던 거리의 두 배를 달린 것이다. 장한지고!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았다.

달리기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꿈같고 환상같은 일, '아이와 달리는 것'

아직 쌩쌩한 모습이다
▲ 출발 전 기념사진 아직 쌩쌩한 모습이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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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깟 10Km 뛴 것을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할지도 모른다. 맞는 이야기. 각자가 느끼는 경험과 느낌은 백인백색인지라 아들의 것 역시 오롯이 아들만의 것으로 남겨 두련다. 앞으로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도전이니 뭐니 하는 꼰대짓은 쿨하게 사절! 지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뿌듯함을 이기지 못해 어떻게든 이 기분을 만끽하고 표출하고 싶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뿐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짧지 않은 세월, 단지 건강을 위해 하는 것 뿐이기는 하나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없다. 더구나 대학생이 된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하는 건 더더욱 희귀한 케이스. 도대체 왜? 아이들이 싫어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하며 놀기도 바쁜데 고통스러운 땀과 인내가 필요한 달리기를, 여자 친구도 아닌 아버지와 같이 한다고? 소가 웃을 일인데 그걸 해낸 것이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오늘, 옆에서 달리던 이름도 모르는 달림이 한 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뛰고 있는 우리를 보고 "너무 부럽다!" 하며 찍은 사진을 전화기로 보내 주기까지. 덕분에 나는 아들과 함께 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귀한 사진을 한 장 얻었다. 얼마나 부러웠으면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을 위해 뛰면서 사진까지 찍어 주었을까.

하나 더. 울트라 마라톤까지 섭렵한 동호인 한 분은 내 이야기만을 듣고도 "그냥 좋다!"는 표현까지 해온 적이 있을 정도. 그만큼 달리기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꿈같고 환상같은 것이 바로 아이들과 같이 뛰는 것이다. 오늘 그 로망 하나를 이룬 셈. 한 번 하고 끝나 버리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자그만치 넉달에 걸친 꾸준한 연습 끝에 이룬 빛나는 성과. 30도가 훨씬 넘는 한여름의 뙤약볕을 이겨낸 영광스러운 훈장같은 것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 서울 시내 한복판을 아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 이름도 모르는 달림이분께서 찍어 준 바로 그 사진 청명한 가을 하늘. 서울 시내 한복판을 아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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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게맛을 아냐?"고 했던 텔레비젼 광고가 생각난다. 게맛이야 먹어 보면 손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지금 이 기분은 뛰어 보기 전까지는 아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없이 좋은데, 참 좋은데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그러니 "그냥 좋다!"고 할 밖에. 시인 원태연은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했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다면 당장 운동화를 사주고 함께 달려 보시라! 호들갑을 떨어서라도 풀어야 할 만큼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즐거움, 행복이 함께 온다.

아들! 고마워!^^

나란한 완주 기록증.
▲ 완주 기록증 나란한 완주 기록증.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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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울달리기대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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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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