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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1시간의 마법'

지난달부터 탄력 근무를 시작했다. 1시간 늦게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한다. 시작은 단순했다. 대상 포진으로 몸이 너무 힘들었고, 출퇴근 러시아워를 피해 스트레스라도 줄여보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는 내 요청을 받아줬고, 두 달간 탄력 근무를 하게 됐다. 처음엔 '어차피 일하는 것은 똑같을 테고, 1시간 늦게 출근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거 아닌가. 똑같은 일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탄력근무제를 경험해보니 너무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회사의 업무 생산성엔 변함이 없었다.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기 때문에 회사와 다소 먼 거리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보통 출근에만 2시간을 쓴다. 늘 아이들이 자는 모습만 보고 집을 나서곤 했다.

탄력근무제를 시작하면서 1시간 늦게 출근하게 되자 아이들을 깨워 같이 아침을 먹고, 유치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며 집을 나설 수 있게 됐다. 퇴근이 1시간 늦어지지만 러시아워 시간을 피하니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30~40분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아침에 아이들과 1시간 더 함께 있는 것은 워킹맘의 삶을 충만하게 했다. 내 건강도 빨리 회복됐다. 1시간으로 삶의 질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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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책'도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이 임산부 2시간 단축 근무제를 시행하고, 택시비 1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원래는 임신 12주 이전, 36주 이상 임산부에게만 적용되는 단축 근무제를 전 기간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세운 정책보다 더 너르게 적용하려는 기업의 배려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겨우 2시간 가지고'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임신해서 직장에 다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2시간으로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임산부나 워킹맘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는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이것이 사회적인 배려로 이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현재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 아빠 육아휴직 등의 정책이 존재한다. 이 정책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빠 육아휴직제도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계약직 근로자의 경우, 육아휴직이 곧바로 퇴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사회적인 배려로 확대되지 못하는 경우다. 정부의 정책은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라는 법(法) 제적인 의미이지만, 사회적인 배려는 문화다. 문화는 보편적 인식이다. 누구라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있어 배려받아야 한다는 정정당당한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아이 낳고 살기에 편한 나라'가 아니다. 양육수당, 육아지원금, 누리과정 등 정부는 각종 보육정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기업의 문화 아래 여성은 차별받고 가족의 문화 안에선 희생을 요구당한다. 그런 면에서 민간 기업인 현대백화점이 앞장 서서 임산부 관련 정책을 시행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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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임산부 잔혹사

내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시급한 프로젝트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의 일을 대체해 주지 않았고, 모두 다 그렇게 일했기 때문에 임산부라고 따로 배려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감기에 된통 걸렸다. 임신을 했으니 약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의가 밤 9시에 잡혀있었다. 집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배가 당기고 어지러워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상사는 '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는 의문의 얼굴로 나를 보았고, 곧 "일은 다 했냐" "나머지 일은 누가 할 거냐"는 질책이 시작됐다. 그래도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가방을 싸 들고 그 길로 사무실을 나왔다. 이후, 난 그 프로젝트에서 제외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산부를 그런 시급한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팀장님도 참 이상했고, 배가 부른 임산부에게 아무렇지 않게 야근을 시키던 회사도 이상했다. 이상한 일이 상식이던 때다.

지금이야 임산부 초과근로 금지법이 생겼지만, 오히려 이 법으로 인해 여성이 취직에서 불리해지거나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물론 아무것도 없던 시절보다 환경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예전에 한 회사의 여성 임원은 나처럼 막달까지 계속 야근을 했고, 그 시절엔 출산 휴가라는 말조차 없어서 3주 동안 '병가'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3주 후 다시 복직해서 회사의 전설이 됐다.

만삭이었던 내 회사 동기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았다며 어떤 할아버지에게 호통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울면서 내렸단다. 그때 그 할아버지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다. 여긴 대한민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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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던 시간 '탄력근무제', 눈치 보여 못쓰겠다

탄력근무제는 10월이면 끝난다. 신데렐라처럼 마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끝나면 다시 나는 예전의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한다. 아침마다 아이들 얼굴을 보면 애틋하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지만, 나에겐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 평범함을 끌어오느라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유를 쓰고, 상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것도 배려라면 배려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아이들이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할 때만이라도 탄력근무제를 이용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

근무시간도 같고, 일의 생산성도 높고, 삶의 질도 높아졌지만, 나는 쉽사리 다음 달 탄력근무제를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 눈치가 보인다. 회사에서 워킹맘이 나 혼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두 달간 탄력근무제 '혜택'을 받았고, 이를 활용한 워킹맘도 회사 내에서 극소수다. 이른바 집단의 눈치가 보이는 시점이다.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탄력근무제를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 이런 분위기가 되려면 결국은 정책보다 사회적 배려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당장 보육료 10만 원 더 지원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애 낳고 살기 정말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야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 결국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 (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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