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매기가 꿈꾸던 '어게인 1992'의 기적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5년 만의 가을야구를 첫 라운드에서 아쉽게 마감했다.

롯데는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5전 3승제) 5차전에서 NC 다이노스에 0-9로 완패했다. 포스트시즌 사상 첫 부산-경남 라이벌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양팀의 대결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동생' NC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마산에서 열린 지난 4차전에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가져온 롯데는 홈 최종전에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을 기대했으나 믿었던 마운드가 5회 고비를 버티지 못했다. 선발 박세웅이 4이닝 3실점으로 일찍 강판되고 이어 등판한 필승조 조정훈-이명우까지 줄줄이 무너졌다. 5회에만 7실점을 내주는 빅이닝을 허용하며 승부는 그대로 기울었다. 롯데 투수진은 이날 15피안타 9사사구를 내주며 제구력에 극심한 난조를 보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투수교체 타이밍이 패착이 됐다. 시즌 중반까지 롯데의 에이스였던 박세웅은 후반부터 기복심한 투구내용을 보이며 포스트시즌에서는 린드블럼-레일리-송승준에 이은 4선발까지 밀려났다. 조원우 감독은 3차전에서는 송승준, 우천순연으로 하루 연기됐던 4차전에서는 1차전 선발 린드블럼을 다시 등판시키며 박세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을 드러냈다. 5차전 역시 2차전에서 부러진 배트에 다리를 맞아 부상당한 레일리의 공백만 아니었다면 박세웅이 등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박세웅은 우려와 달리 초반 4회까지는 잘 버텼다. 하지만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박세웅의 한계는 한 번의 위기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전의 중요성과 압박감을 감안하면 투수교체 타이밍을 좀더 빨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실점 이후에 투입된 조정훈과 이명우는 몸이 충분히 풀리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며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거듭된 볼넷과 적시타 허용으로 제풀에 무너졌다.

롯데 타선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기 내내 상대 에이스 에릭 해커(6.1이닝 4피안타 2사사구 무실점)을 비롯하여 이민호-원종현-임창민으로 이어지는 NC의 철벽 마운드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롯데는 산발 8안타 3볼넷을 얻어내고도 무득점에 그쳤다. 4차전을 제외하면 내내 기복심한 모습을 드러냈던 롯데 타선은 하필이면 올해 포스트시즌 첫 영봉패를 시리즈  최종전에서 당하는 굴욕을 겪으며 홈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뜨거웠던 여름, 아쉬운 가을로 요약되는 롯데의 2017시즌은 한마디로 등락이 심한 롤러코스터였다. 전반기 성적이 41승 1무 44패, 7위에 머물때만 해도 롯데의 전망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전력을 재정비한 조원우호는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팀으로 환골탈태했다. 린드블럼이 반년 만에 KBO 무대에 복귀했고 베테랑 송승준도 불펜에서 다시 선발진으로 재합류했으며 레일리마저 후반기들어 안정세로 돌아가면서 선발진이 탄탄해졌다. 불펜역시 손승락-박진형-조정훈으로 확실한 필승조가 구축되며 뒷문이 든든해졌다. 이대호-손아섭-전준우-강민호 등이 버틴 타선의 화력도 막강했다.

롯데는 결국 후반기 39승18패 1무의 고공비행을 거두며 7위에서 일약 3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준PO 직행으로 5년만의 가을야구 복귀에 성공했다. 시즌 80승(2무 62패)은 구단 역사상 한 시즌 구단 최다승 기록이기도 했다. 최근 3년간 상대 전적과 리그 순위로 항상 열세를 보였던 지역 라이벌 NC를 4위로 끌어내리며 상대 전적에서도 9승 7패로 우위를 점했다는 것 역시 의미있는 소득이었다. 최근 몇 년간 성적부진과 잦은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 없었던 사직구장에서 모처럼 뜨거운 야구 열기가 다시 불타오른 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무색할 정도로 롯데의 가을은 허무했다. 승-패를 거듭하여 최종 5차전까지 끌고간 모양새는 접전이었지만, 1.4차전 선발로 분투한 린드블럼을 제외하면 롯데 선수들의 경기력은 시종일관 답답한 '고구마'였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NC를 상대로 롯데는 홈어드밴티지와 체력적 우위를 좀처럼 살리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모습을 거듭했다. 어느덧 4년연속 가을야구를 경험하며 어엿한 신흥강호로 성장한 NC의 노련미와 뒷심은, 흐름을 타는 경향이 심했던 롯데에 비하여 집중력에서 앞섰다.

롯데는 홈런 4방을 터뜨린 4차전을 제외하면 타선이 내내 침묵했다. 최준석이 타율 0.077(13타수 1안타) 1타점, 강민호가 타율 0.250(16타수 4안타)에 그쳤다. 이대호는 타율은 .350(20타수 7안타)로 높았지만 4번타자로서 타점은 4차전에서 솔로포로 올린 1개가 전부였을 만큼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손아섭이 홀로 3홈런 6타점으로 해결사 역할을 수행했지만 최종전에서는 그마저 5타수 무안타로 침묵하자 더 이상 추력의 동력이 없었다.

고비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충분히 잡을수 있었던 1차전에서 마무리 손승락이 2이닝을 역투하고도 포수 강민호의 잇단 실책성 플레이가 발단이 되어 11회 연장승부 끝에 패배하며 첫 단추부터 꼬여다. 2차전에서는 잘 던지던 선발 레일리가 예기치못한 부상으로 강판되며 남은 시리즈에 더 이상 출장하지못하게 되어 마운드 운영 전체가 꼬였다. 무엇보다 롯데는 2선발인 브룩스 레일리를 예기치 못한 부상 때문에 5차전에서 기용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롯데의 공수에서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던 김문호마저 옆구리 부상으로 시리즈 도중 이탈한 것도 악재였다.

2017시즌을 마감한 롯데는 올겨울 다시 한번 기로에 서게 됐다. 지난 2년간 롯데의 지휘봉을 잡았던 조원우 감독의 계약기간은 올시즌을 끝으로 만료된다. 초보 사령탑이던 조원우 감독은 첫해 5강 탈락의 시행착오를 딛고 올해 롯데를 5년만의 가을야구로 이끄는 공로를 세웠다. 2년 간 정규리그 통산 승률은 .510(146승140패2무)으로 준수한 편이다.  베테랑과 유망주의 신구조화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신중한 선수단 관리 능력도 호평을 받았다.박세웅과 김원중의 성장, 박진형-조정훈의 각성으로 인한 필승조 구축 등은 조원우 감독의 성과였다.

하지만 정작 가을야구에서 보여준 아쉬운 모습으로 조원우 감독의 단점 역시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정규시즌에 비하여 사령탑의 경기운영능력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기전에서 조감독의 용병술은 늘 한 박자 어긋났다. 늘 '승부처'를 강조하지만 흐름을 놓쳐 정작 승부처까지 가기도 전에 지레 자멸하는 패턴은 5차전만이 아니라 정규시즌부터 종종 지적받았던 조 감독의 단점이기도 했다.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직행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무너진 데는 사령탑 간의 지략싸움에서 조 감독이 산전수전 다 겪은 김경문 NC 감독에게 밀린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규시즌의 성과와 가을야구에서의 실패,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조원우 감독의 운명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동안 잦은 감독교체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롯데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1992년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벌써 25년째 KBO 역사상 최장기관 무관의 불명예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롯데가 가까운 시일 내에 우승에 도전할 전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중한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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