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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숙지원의 꽃들은 다채롭고 화려했고 또 풍성했다. 꽃의 키와 모양 색깔 그리고 어떤 꽃이 가뭄과 습한 기후에 적응하며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지, 번식력은 좋은지, 알뿌리 식물의 경우 겨울철 보관방법은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꽃이 피는 시기와 꽃의 특성과 특징을 고려하여 꽃이 진자리에 계절에 오신 새로운 꽃을 배치해주었던 아내 덕분이었다. 

 

꽃들과 만남은 도를 넘는 눈의 호사였으며 나를 다시 보는 마음 여행의 시간이었다. 그런 꽃들을 통해 희망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준비하는지 배웠던 시간이었다. 주어진 시간만큼 자리를 지키다가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떠나가는 꽃들을 보며 자연의 질서를 새겼다.

 

사람사이에서는 오래 만나면 좋지 않은 관계로 발전하여 끝내 서로 외면하고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꽃들과 이별은 담백하면서도 아쉬움의 여운이 더 짙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면서 내가 마음을 닫고 보낸 사람들, 또 나를 미워하며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했고, 내 가슴에 남은 미움 원망과 화해하고 억울함을 풀었다.

 



꽃들이 어느 정도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주변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이 어떤 수준인지 나는 모른다. 또 꽃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꽃마다 다른 개성과 품성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꽃 스스로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짧았지만 빛나던 자신의 시간을 별 같은 씨앗으로 남기고 가는 꽃들의 모습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는 점에 공감한다. 꽃들은 보는 이의 무뎌진 감성과 빈약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아름답고 섬세하고 선한 마음을 갖게 하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꽃을 세상의 요정이라고 노래하고 또 천사 혹은 선녀라는 동화적 이미지로 찬사를 아끼지 않은 시인들의 표현이 그런 매력의 감염에서 오는 효과가 아닌가 싶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더러 노랫말이 된 꽃들도 있으나 세상에는 아직도 마음통할 시인을 기다리는 꽃들, 오선지에 올라 피아노 건반위에 튀고 싶은 꽃들도 많을 것이다. 화선지 혹은 인화지에 남아 그림엽서가 되는 소망을 가진 꽃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감사와 사랑은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가 아닐 진데 그런 꽃들의 미소에 답할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일 재주도 없고, 붓을 들어 그 모습을 그릴 솜씨 없음이 미안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방문해준 선배 내외는 내 얼굴이 편안하게 보인다면서 손을 잡았다.  

또 지난 일요일에 찾아온, 젊은 날의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 후배는 소리가 많이 살아났다고 반겼다. 

 

아마 내 얼굴이 편안해지고 목소리가 맑아졌다면 그렇게 만들어준 요인은 여럿이겠지만 그 중에서 지난 1년 나와 함께 살았던 꽃들의 숨은 공도 적잖으리라. 사람의 사상과 철학은 꽃처럼 사람을 품어주는 미덕이 되지 못한다.

 

세상의 종교는 서로 노려보지만 자연의 꽃은 서로 배반하지 않는다. 사람의 말과 웃음은 날이 선 칼이 되기도 하지만 꽃들의 미소는 화해와 평화다. 비록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꽃에 대한 느낌과 원예치료의 효과를 이야기했더니 공감한다며 숙지원 주변 곳곳에 조성된 꽃밭을 부러워하면서 돌아갔다.


가을비, 그리고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자하라 꽃잎은 지고 달리아와 멜란포디움이 긴장하고 있다. 살아있는 존재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그래도 벌과 나비를 모으던 향기는 서편 노을에 실어 보내고 색이 산들바람에 지는 색 바랜 꽃잎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서늘해지는 까닭은 이제 생노병사의 과정과 의미를 조금 알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온기로 눈을 녹이며 꽃망울을 키우는 홍매,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준 노란 복수초, 잔디 뿌리 속에서 숨어 있다가 추위에 싹을 내밀고 찬 서리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수선화, 그리고 화려한 색깔의 철쭉 등 제철을 잊지 않고 피었던 꽃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또 목련이 지고 석류가 꽃으로 웃으면 키 작은 채송화와 비올라, 신비스러운 흑종초와 금붕어를 닮은 금어초 그리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이 화답하는 초여름의 축제도 잊지 못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남기고 시들어간 선홍색 꽃무릇도 잊을 수 없다.



소리 없이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힘.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와 평화의 상징이 되고 또 지친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꽃들의 미소.

 

단 한 번만이라도 꽃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기적을 만나고 싶다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주책이라는 핀잔만 날아오겠지. 비록 약속하지 않았으나 그 꽃들은 내년이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억은 오늘을 밝히는 등이 되고 기다림은 내일 희망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꽃의 미소, #홍매, #철포나리, #흑종초, #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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