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후보 전주 KCC가 혼쭐이 났다. 15일 원주종합체육관서 열린 '2017-18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개막전에서 약체로 평가받았던 원주 DB에게 시종일관 끌려 다닌 끝에 81-76으로 무릎을 꿇었다.

당초 예상은 KCC의 압도적 우세였다. KCC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했던 전태풍(37·178cm), 하승진(32·221cm), 안드레 에밋(35·191cm)이 모두 돌아오고 비시즌간 리그 최고의 토종 공격수로 꼽히는 이정현(30·191cm)을 FA 역사상 최대 금액인 9억 2000만 원에 영입했다. 거기에 검증된 외국인 빅맨 찰스 로드(32·200.1cm)까지 품에 안았다.

지난 시즌을 통해 주전급으로 성장한 송교창(21·201cm)을 비롯 최승욱, 박경상, 김민구, 김지후, 박세진, 주태수, 송창용, 신명호, 이현민 등 양과 질적으로 최고의 선수층을 구성했다. 당연히 우승후보로 꼽힐 수밖에 없다.

반면 DB는 간판스타 김주성(38·205㎝)이 체력문제로 인해 식스맨으로 뛰게 된 가운데 윤호영(33·195.6cm)이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으며 허웅(24·186cm)또한 군 입대로 자리를 비웠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상범 감독이 대놓고 "리빌딩 시즌이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농구는 단체스포츠다. 이름값만 가지고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DB는 KCC에게 이러한 부분을 확실히 보여줬다. 코트에 나서는 전선수가 공수에서 유기적 플레이를 한 DB에 비해 KCC는 개인기에 의존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뼈아픈 패배로 이어졌다.

 신예 버튼과 베테랑 에밋의 플레이는 완전 딴판이었다. 버튼이 베테랑같았고 에밋이 신예같았다.

신예 버튼과 베테랑 에밋의 플레이는 완전 딴판이었다. 버튼이 베테랑같았고 에밋이 신예같았다. ⓒ 전주 KCC


살림꾼 없는 집안 속 두 개의 폭탄

앞서 언급한 대로 KCC는 에밋과 로드라는 이름값 있는 플레이어로 외국인선수 조합을 마쳤다. 지난 2시즌간 검증된 대로 에밋은 리그 최고의 테크니션 공격수다. 탄력 넘치는 드리블을 바탕으로 한 돌파는 물론 갑자기 동작을 멈춘 채 수비수의 중심을 빼앗고 발사되는 스탑점프슛이나 플루터가 일품이다. 외곽슛도 장착하고 있으며 웨이트가 탄탄한지라 상대 빅맨과 골밑에서 충돌이 벌어져도 쉽게 밸런스가 흔들리지 않는다.

로드는 하승진 맞춤형 외국인선수로 뽑혔다. KCC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하승진을 활용해야 한다. 장단점이 분명한 스타일이지만 어쨌거나 KCC는 하승진을 중심에 두고 나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올 시즌 개막전에 몸을 맞춘 하승진을 위해서라도 골밑에서 함께할 파트너가 필수였다.

최고의 사이즈를 갖춘 토종 센터답게 하승진은 높이 자체가 무기이지만 큰 체격만큼 기동성이라는 부분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슈팅력 또한 좋지 않아 골대에서 떨어지게 되면 공격력이 현격히 하락한다.

때문에 하승진과 호흡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높이는 있되 너무 느려도 안 되고 활동 폭이 골 밑에만 집중돼도 곤란하다. 거기에 하승진의 좁은 공수 범위를 전천후로 커버할 능력 역시 요구된다. 기동성을 바탕으로 포스트 인근에서 스크린플레이, 속공 및 패싱게임, 블록슛에 참여하며 미들슛 등 어느 정도 슈팅력까지 갖춰야 한다.

어찌보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인데 KCC에서는 스트래치형 빅맨 유형의 로드를 선택했다. 본래 외국인드래프트에서 과거 우승의 영광을 함께한 에릭 도슨(33·200.8cm)을 지명했으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인해 로드로 대신하게 됐다. 이것이 진짜 도슨의 부상인지 아니면 드래프트 룰을 이용한 계획된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에밋과 로드는 이전부터 '양날의 검'으로 불렸다. 개인능력이야 확실하게 검증됐지만 쉽게 흥분하거나 지나치게 혼자 하는 농구로 일관하며 팀플레이에 맞지 않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에밋같은 경우 국내리그 이전부터 '노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개인플레이가 심하다. 로드 또한 감정기복이 심해 그날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경기력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시즌 전부터 KCC팬들 사이에서는 화려함보다 궂은 일과 팀플레이를 함께 해줄 수 있는 외국인선수가 필요하다는 말이 많았다. 로드의 영입으로 아쉽게 떠나고만 도슨이 딱 거기에 맞는 스타일이다.

이날 DB와의 경기에서도 양 팀 외국인선수의 플레이는 극명하게 갈렸다. 에밋과 로드는 팀플레이를 무시한 채 자신에게 공만 오면 슛을 난사하기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성공률까지 좋지 않았다. 반면 DB의 디온테 버튼(23·192.6cm)과 로드 벤슨(33·206.7cm)은 말 그대로 알짜였다.

아이오와 주립대 출신의 버튼은 KBL이 첫 프로 무대일 정도로 어린선수다. 득점에 강점이 있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있었으나 KCC를 상대로 베테랑 에밋보다 훨씬 노련하고 팀플레이에 잘 맞는 정석적 플레이를 선보였다. 내 외곽을 넘나들며 득점을 올린다는 점에서는 에밋과 비슷하지만 단순히 자기득점만 보는 것이 아닌 빈공간에 동료들이 보이면 지체 없이 패스를 뿌려줬다.

에밋같은 경우 자신 앞에 두 세명의 수비수가 몰려들어도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버튼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찬스에서 조차 더 좋은 위치에 동료들이 있으면 공을 넘겼다. 실제로 서민수, 두경민 등의 성공률 높은 외곽슛 배경에는 버튼의 공이 상당히 컸다.

벤슨 역시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답게 노련함을 보여줬다. 한창때의 그는 3~5번을 모두 커버할 정도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현재의 벤슨은 그때만큼의 운동능력과 순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벤슨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하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영리한 플레이로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하게 팀에 공헌했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포지션에서 구멍을 내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팀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 있다. 경험치가 쌓여감에도 달라지는게 없는 비슷한 또래 에밋, 로드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대목이었다.

신선우 감독 시절에도 허재 감독이 이끌던 당시에도 KCC는 궂은일을 하고 팀플레이에 공헌하는 살림꾼이 있을 때 강했다. 비시즌간 이러한 플레이를 해줄 선수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게 어렵다면 외국인선수를 그러한 유형으로 선택하는 혜안도 필요하다. 토종 스윙맨 부족을 3~5번을 넘나들 수 있는 유형의 외국인선수로 채운 울산 현대모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이정현, 전태풍, 송교창 등 현재의 KCC는 득점력 좋은 토종 선수가 가득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선수 두명이 모두 나홀로 플레이를 펼친다면 말 그대로 시한폭탄을 안고 시즌에 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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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폭탄 왕의 귀환 KCC 흔들리는 KCC 개막전패배 외국인선수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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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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