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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은 나의 가족이다.
 반려동물은 나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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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에서 '반려동물의 병간호도 유급 휴가 사유로 인정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 여성이 급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해 유급 휴가를 신청했지만, 상사가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탈리아 법원에서는 해당 사유가 '가족이나 개인에 관련된 심각한 사유'로 인정된다면서 직장에서 이틀간의 유급 휴가를 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동물 의료나 복지가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진 이탈리아에서도 처음 내려진 결정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동물을 유기하거나 고통을 겪게 할 경우 징역 1년 혹은 약 최대 1만 유로의 벌금형'에 처하는 형법 조항이 근거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유급 휴가의 근거인 '가족이나 개인에 관련된 심각한 사유'에 반려동물의 병간호를 포함한다는 것은 반려동물을 가족의 영역에 포함시킨 공식적인 판결이기도 한 셈이다.

'겨우' 강아지의 죽음이 내게 미치는 영향

내 강아지는 2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애견·애묘인들 사이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15년을 살았으니 강아지의 수명을 그럭저럭 꽉 채워 살고 간 셈이었다.

12살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털의 윤기를 잃어가고 한쪽 눈에는 녹내장이 생겨 하얀 백태가 낀 늙은 개였기 때문에, 나는 그쯤부터 언젠가 이 개가 내 곁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그리고 아무리 준비해도 결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 결혼한 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익숙한 친정집에 남아있던 내 강아지가 좀처럼 밥을 먹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네 발로 잘 걷고 나랑 산책도 했던 녀석이, 내 방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병원을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냥…. 헤어질 때가 됐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손으로 찍어주는 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간혹 경련을 일으키는 강아지의 모습을 나는 그저 수없이 쓰다듬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이별을 앞두고 있었던 밤, 두렵고 슬퍼서 남편에게 전화해 '와서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결혼한 지 채 반 년이 안 됐을 때였다. 평일이었기에 휴대전화 저편에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하는 난처한 기색이 느껴졌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에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고양이나 큰 개는 무서워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 강아지를 서너 번 만나긴 했지, 나는 서운한 마음을 숨기고 그냥 됐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딱 그날 밤을 채 넘기지 못했다. 한국의 법에 따르면 동물의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아니면 허가된 동물 전용 소각로에서 화장해야 한다. 아침이 돼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예약하면서 남편에게 다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꼭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순간 내 배우자로서 당연히 함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아지가 떠났으니 장례식장에 함께 가달라'는 내 전화를 받고 남편은 '일단 회사에 전화해야…' 하고 머뭇거리면서도 결국 반차를 내고 왔다.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 반려동물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가 입관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 반려동물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가 입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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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몇 번 얼굴을 보지 않아 아직 서먹한 남동생도 강아지의 장례를 치르며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남편에게는 어색하고, 낯설고, 생소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는 반려동물 장례라는 게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니까. 그는 화장하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예상외로 길어지자 슬슬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고 눈에 띄게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그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바쁘면 옆에서 티내지 말고 그냥 가!"

웬만하면 내가 부탁하는 귀찮은 일들을 거절하지 않고, 되레 내게 필요한 것을 먼저 챙겨주는 남편이었기에 그때의 서운함과 충격은 컸다. 강아지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족을 떠나보냈다는 상실감에 한동안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강아지에 대한 글을 쓰지도, 사진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내가 더 커서 만났다면 더 잘해줬을 텐데, 강아지가 어릴 땐 나도 어려서 뭐가 필요한지 잘 몰랐다. 그 부족함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서 나는 한동안 어찌할 줄 몰랐다.

당시 반려동물 관련 회사를 다니고 있어(즉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한 직원들이 대부분이라), 상황을 전하자 회사에서 당연하게 휴가를 내줬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억지로라도 하루 정도는 휴가를 내고 내 반려견의 마지막을 함께했을 것이다. 그건 내게 너무 당연한 과정이었고, 일보다 중요했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하기로 한 남편에게 그 이별의 순간을 함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무리한 것이었을까? 반려견을 보낸 상실감 안에서 신랑에 대한 배신감 한 방울이 잉크처럼 번졌다.

남편은 나중에 '난 강아지가 죽은 게 회사까지 빠질 만한 일인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회사에 '아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는데 휴가를 좀 쓰겠다'고 어떻게 말하느냐는 것이다. 15년 동안 내 침대 귀퉁이에서 재운 강아지가 떠난 것에 대한 슬픔과 후회, 상실감 같은 것을 그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반려동물의 죽음을 가족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로서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하기로' 하고 결혼한 남편이 남일처럼 구는 게 섭섭했다. 내가 여태까지 겪은 일 중 일생일대의 사건을 '회사까지 빠질 만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는 그의 무신경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려동물은 나의 가족이다.
 반려동물은 나의 가족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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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금 우리 부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가 자신을 공격할 것 같아 무섭다던 그는 지금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 재운다. 털이 많이 빠진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배고픈 길고양이를 만나면 집에 올라가 캔을 들고 나온다. 아마 이제는 그도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던 그때의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하지 않을까. 적어도 반려동물의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 수는 없는 그 마음을.

회사도, 약속도, 책임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애지중지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이라는 것도.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침울해 있는 이에게 '그러지 말고 그냥 한 마리 더 사'라고 하는 말이 그들 딴에는 해결책이고 위로일 것이다.

물론 생각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반려인의 입장에선 개가 100마리 있어도 그중 나와 눈빛이 통하고 서로의 습관을 꿰뚫고 있는 사이는 내 반려견 한 마리뿐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의 입장에서는 그 가족들이 바로 세상의 전부다.

반려동물의 병간호를 '가족이나 개인에 관련된 심각한 사유'로 인정한 이번 이탈리아의 판례는 그래서 의미 있게 느껴진다. 반려동물의 수술, 질병, 죽음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해 '겨우 동물 가지고 유난 떤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반려동물은 그 각각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점에서, 유행을 타거나 쉽게 '소비'돼서는 안 된다. 어쩌면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야말로 반려동물을 장난감으로 보지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보호자들의 마음가짐과 사회적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늘어나는 반려동물의 수만큼 가볍게 버려지는 유기동물의 수가 많아지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태그:#반려견, #강아지, #반려동물,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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