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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이 훼손됐다. 박정희의 얼굴과 계급장 그리고 군복엔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이 훼손됐다. 박정희의 얼굴과 계급장 그리고 군복엔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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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내 박정희 흉상에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코 부위는 망치에 맞아 흠집이 나 있었다.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이 행위를 한 이는 최황(33)씨였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박정희 흉상 철거를 위한 선언문에서 이렇게 외쳤다.

"흉상(胸像)은 흉상(凶像)이 됐다."

경찰과 검찰이 나섰다. 최황씨는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지난 4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로부터 6개월가량이 지난 2017년 10월 12일, 검찰은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형사3단독 박종학 판사)에서 그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1심 선고는 오는 11월 9일 이뤄질 예정이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특수재물손괴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의 쟁점은 '박정희 흉상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흉상이 영등포구청 소유라고 판단하고 있고, 최황씨는 소유권자가 없는 물건(무주물)이라고 보고 있다. 최황씨는 "흉상 소유권자가 영등포구청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라면서 "검찰이 주장하는 특수재물손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1심 결심공판이 있었던 지난 12일 피고인 최황씨를 직접 만나 박정희 흉상을 둘러싼 법정 공방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박정희 흉상의 '주인'은 있다? 없다?

지난 2016년 12월 5일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에 빨간 락카를 칠하고 망치로 박정희 코에 흠집을 낸 최황씨.
 지난 2016년 12월 5일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에 빨간 락카를 칠하고 망치로 박정희 코에 흠집을 낸 최황씨.
ⓒ 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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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의 논리는 무엇이었나.
"1966년부터 박정희 흉상이 있던 곳은 제6관구(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 부지였다. 1986년 이 부대가 해체되면서 공원이 들어섰다. 검찰은 군부대 부지가 서울시로 이양되면서 토지 위에 있는 나무나 바위 같은 종물(종속된 물건) 역시 서울시로 소유권이 이전됐다는 논리를 폈다. 그렇기 때문에 제6관구에 있던 박정희 흉상도 영등포구청의 소유물이 된다고 본 것이다. 자물쇠가 있으면 열쇠도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으로 이해했다."

- 검찰의 '박정희 흉상은 영등포구청 소유물'이라는 논리가 타당하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검찰이 법적인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논리를 요약하면 '땅이 넘어가면서 부지에 있던 설치물도 넘어간다'는 건데, 이것이 인정된다면 실정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본다. 계약상 특별한 조항이 없으면 토지를 이양한 소유자가 시설물까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 검찰의 주장은 일반적인 인수인계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 박정희 흉상이 있던 부지는 군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관계에서 이전됐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수인계의 통념과 다를 수도 있지 않나.
"검찰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다. 1966년도에 군부대가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들어진 박정희 흉상이 과연 영원히 대한민국의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부대는 해체됐다. 자연스럽게 부대가 해체되면서 소유권 자체도 소멸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 상황에서 박정희의 흔적을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박정희 흉상을 대한민국 소유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것이 아니다. 박정희 흉상은 주인 없는 물건이다."

- 검찰이 특수재물손괴로 기소했다. 재물손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건가.
"재물손괴에 '특수'가 붙은 것은 내가 망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1차 공판 때 '범죄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락카칠을 하고 망치질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희 흉상은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방치된 물건이기 때문에 재물손괴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영등포구청, 지금까지 박정희 흉상 방치해왔다... 소유 근거가 없다"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박정희 흉상 인근에 부착된 경고문. 박정희 대통령 흉상보존회(회장 박계천)이 내걸은 경고문이다. 2000년 박정희 흉상 철거 사건 이후 영등포구청은 흉상 주변에 이중 펜스, cctv를 설치했다.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박정희 흉상 인근에 부착된 경고문. 박정희 대통령 흉상보존회(회장 박계천)이 내걸은 경고문이다. 2000년 박정희 흉상 철거 사건 이후 영등포구청은 흉상 주변에 이중 펜스, cctv를 설치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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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구청은 박정희 흉상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던가.
"그렇다. 하지만 관리대장 혹은 다른 문건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행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박정희 흉상을 둘러싼 영등포구청의 행동만 봐도 영등포구청에 흉상 소유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최초에 박정희 흉상의 소유권을 주장했던 이들은 박정희흉상보존회(회장 박계천)였다. 2000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동당 등 시민단체·정당 소속 30여 명이 이 흉상의 철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흉상의 코가 뭉개지는 등 훼손됐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흉상을 보존해야 한다'는 민원이 있어서 흉상 주변에 이중 펜스, cctv를 설치한 게 영등포구청이 한 일의 전부다. 심지어 박정희흉상보존회 등에서 사비를 모아 흉상을 복원했다.

지난해 12월 내가 흉상에 락카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빨간색 락카칠을 지운 것도 박정희흉상보존회였다. 영등포구청은 이 건을 두고 고발을 하지도 않았다. 영등포구청이 박정희 흉상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봤다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주체적인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방치해온 것이다."

- 박정희 흉상은 공원에 있다. 공원의 설치목적과 이 흉상의 성격이 맞지 않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공원이 무엇인가.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조성되는 공간 아닌가. 하지만 박정희 흉상은 국가주의의 상징물에 불과하다. '5.16 혁명 발상지'라고 적힌 문구가 이를 증명한다. 5.16 군사쿠데타를 기념하기 위한 상징물과 공원의 존재 이유와는 공통분모가 없다. 영등포구청은 박정희 흉상과 관련한 숱한 문제 제기에도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그냥 둬왔던 것밖에 안 된다."

"'박정희 흔적 건드렸으니 징역... 무죄면 이상하잖아'로 들렸다"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이 훼손됐다. 박정희의 얼굴과 계급장 그리고 군복엔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위치한 박정희 흉상이 훼손됐다. 박정희의 얼굴과 계급장 그리고 군복엔 빨간색 락카가 칠해졌고, 흉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철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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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검찰 이야기로 돌아가자. 징역 1년 구형, 어떻게 평가하나.
"일반적으로 볼 때와 감정적으로 볼 때, 둘로 나눠 답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보면, 검찰의 구형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검찰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구형이라고 본다. 어차피 나는 법정에서 재판부를 설득해야지, 검찰을 설득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지만 감정적으로 보면, 매우 유감이다. 어떤 공공기관의 시설물에 해를 끼쳐서 그 기관의 업무에 실질적인 손해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국가주의의 상징물에 락카칠·망치질 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구형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 현장에서 검찰은 어떤 어떤 법 조항에 근거해 구형하지 않았다. 내가 들은 것은 단 두 줄이다. '징역 1년 구형합니다.' '증거 1, 2호 몰수합니다.' 여기서 증거 1호는 망치, 2호는 락카다. 당연히 다양한 판례를 보고 구형했겠지만, 법정에서의 쟁점을 다루지 못한 느낌이었다. 면밀하게 검토해서 나온 구형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사견을 전제로 '박정희 건드렸으니 징역 살아야지, 무죄 나오면 이상하잖아, 어쨌든 유죄' 정도로 읽혔다."

-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늘(12일) 결심공판에서 최후변론을 하다가 중간에 잘렸다. 판사가 '소유권 등 쟁점에 대한 이야기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정희 흉상의 소유권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나는 무죄를 주장한다.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대한민국(혹은 지자체) 소유라고 여겨졌던 '행정적 구멍'에 '여기 구멍이 있어요'라고 빨간색 체크를 했을 뿐이다. 비록 체크의 방식이 다소 불편한 방법일지라도 그것이 죄가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번 건을 시작으로 이 땅에 의심받지 않고 존재해왔던 행정적·법적 구멍이 더 있는지, 혹시 그곳에 낭비되는 세금이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박정희 흉상이 있는 곳이 영등포구이기 때문에 소유권 역시 영등포구청에 있어 특수재물손괴에 해당한다는 검찰. 박정희 흉상에 관리대장 등 행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소유권이 없어 무죄라는 피고인. 재판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지, 결과는 11월 9일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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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정희, #최황, #박정희 흉상, #검찰, #영등포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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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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