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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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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처음 보고받은 시각이 오전 10시가 아니라 9시 30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 뒤 15분만에 구조지시'를 내린 게 아니라, 보고받고도 40여분 간 직무불능 혹은 무능력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12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표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세월호 사고 내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각은 오전에만 9시 30분 - 10시 40분 - 11시 10분이었다. 그간 박근혜 정부가 오전 10시 - 10시 40분 - 11시 20분에 보고됐다고 밝혀온 게 조작됐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제출한 행적자료와 이번에 청와대가 밝힌 보고시각 조작사실을 반영해 재구성한 최초보고 뒤 1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09:30]  국가안보실 세월호 사고 상황 보고 수령하여 검토

[09:53]  외교안보수석 국방 관련(세월호와 무관) 서면보고 수령하여 검토

[10:15]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상황 파악 및 지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10:22]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다시 전화해 지시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하라"

[10:30]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해 지시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세월호 사고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며 처음 내린 지시는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같이 단순한 구조지시가 나오는 데에 45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대통령이 침묵했던 그 45분 동안 세월호는 바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해경 헬리콥터가 구조작업을 시작했고(9시 30분) 해경 123정이 세월호 좌현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9시 38분).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은 해경 구조단정에 올라탔다.(9시 46분). 9시 34분 좌현으로 52.2도 기울어 있던 선체는 9시 50분 경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해경 123정은 "배가 잠시 후 곧 침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상황실에 보고했다. 9시 54분 세월호는 64.4도로 기울어 좌현이 완전 침수됐다. 이후 세월호는 빠른 속도로 침몰했다. 승객을 태운 채로.

윤전추 "안보실 최초보고 전달 뒤 안봉근이 올라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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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45분' 동안 박 전 대통령은 뭘 한 걸까. 여러 가능성이 있다. 우선,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를 보고받고도 그리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하지 않았거나,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오전 9시 30분에 전달됐다는 국가안보실의 보고는 9시 24분 청와대 참모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전파한 사고발생 내용을 문서로 출력한 것이다. 탄핵심판 당시 증인으로 나왔던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이 보고에 대해 "(문자메시지를 출력하여) 문서 서류화 된 것을 제가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박근혜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하는 윤전추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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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행정관의 증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있을 때 이 같은 보고서가 오면 '집무실'이라고 부르는 방에 넣어두고 인터폰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알리는 식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당시 세월호 사고보고 전달과정에 대해 윤 전 행정관은 "(대통령이) 집무실 안에 있어서 인터폰으로 급한 서류라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윤 전 행정관이 대면해 건네지 않았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초보고를 즉각 읽어보지 않고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안보실의 최초보고 전달 뒤 얼마 안 돼 박 전 대통령이 최측근 비서관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가안보실의 최초 사고보고 뒤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은 관저로 가서 박 전 대통령을 대면했다. 이에 대해 윤 전 행정관은 "(보고서를) 전달하고 조금 있다가 안봉근 비서관이 급한 전화 업무 때문에 올라 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전화 업무'란 박 전 대통령이 전화로 호출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최초보고 시각을 오전 10시라 밝힌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의 구조지시 뒤 안 전 비서관의 대면보고가 있었던 걸로 간주됐다. 하지만 최초보고 시각이 9시 30분으로 당겨졌다. 최초보고를 접한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비서관을 호출했고, 안 전 비서관이 관저로 간 뒤에 구조지시가 나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비서관을 급히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대규모 해상 사고가 터진 상황에서 국가안보실의 보고가 올라갔지만 대통령에게는 즉각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태그:#45분, #박근혜, #안봉근, #윤전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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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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