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

<아르곤>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김주혁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를 놀라게 한 대사는... ⓒ 나무엑터스


처음 tvN <아르곤>이 시작됐을 땐, 기자가 주인공인 히어로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정의로운 주인공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밝혀내고,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스토리. 하지만 <아르곤>은 달랐다. 드라마는 언뜻 완벽해 보이던 스타 언론인 김백진(김주혁 분)도 결국 실수하고, 감정에 휘둘릴 수 있는 한 개인임을 고백하며 끝이 났다. "기자는 영웅이 아니다. 뉴스는 믿는 게 아니라 판단해야 한다"는 김백진의 일갈은 보는 이들은 물론, 김백진을 연기하는 배우 김주혁에게도 큰 울림을 줬다. <아르곤>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김주혁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좋은 대사들이 많아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었지만, 그 대사는 전달하면서도 울림이 컸어요." 

김주혁은 "<아르곤>이 언론인의 판타지를 그린 작품이라면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지만 메시지는 묵직한 <아르곤>의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담담하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고백하는 지식인을 보기는 쉽지 않다. 작은 실수를 감추기 위해 더 큰 죄를 저지르고,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타인의 억울함 정도는 쉽게 눈감는 지도층은 자주 접한다. 그래서 "내 명예 지키자고 기자라는 직업을 똥통에 처박을 수는 없다"는 김백진은 더 판타지처럼, 더 히어로처럼 느껴졌다.

"영웅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완벽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허점도 보이고,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사실 뉴스만 봤지, 기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모르잖아요.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을 거예요. 그래서 미안한 부분도 있고요. 조금 더 잘 알고 표현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너무 미화하진 않았을까... 제 연기자로서의 한계겠죠." 

내 스타일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JTBC <뉴스룸>의 손석희? 미드 <뉴스룸>의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 분)? 김주혁을 앵커 연기를 하며, 그 누구도 참고하지 않았다.

JTBC <뉴스룸>의 손석희? 미드 <뉴스룸>의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 분)? 앵커 김백진 역을 맡은 그는 TV 속 앵커들의 모습을 보며 앵커 역할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스타일 대로, 자신이 믿는 대로 연기하자 했다고. ⓒ 나무엑터스


앵커석에 앉은 김주혁을 보며, 어떤 이들은 JTBC <뉴스룸>의 손석희를 떠올렸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미드 <뉴스룸>의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 분)을 연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주혁은 어떤 인물이나 캐릭터도 참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앵커들 많이 보고, 많이 연습했죠. 하지만 결론은 내 스타일 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연기 하자였어요. 앵커들은 감정을 배제하고 정보를 전달하지만,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데 감정을 완벽하게 배제하는 게 과연 옳을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앵커 멘트를 할 때도 울컥하고 화나는 감정을 과하지 않게 양념으로 쳤어요." 

김주혁이 김백진을 연기하며 가장 울컥한 순간은 송건식 언론상(실제로는 송건호 언론상)을 받고 수상 소감할 때였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김백진의 모습도 그랬지만,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동료 기자들을 언급하며 객석을 바라보며 뭔가 가슴에서 훅 오르는 기분이 들었단다.

"무슨 감정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단순히 드라마를 함께 찍은 동료, 그 이상의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죽어라 일하고도 스포트라이트는 앞에 나선 한 사람만 받고... 선배 축하해주겠다고 와서 저기 앉아 떡이나 먹으면서 눈 껌뻑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짠해 보이더라고요. 기자 좀 연기했다고 기자들의 삶을 뼛속까지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이 치열했을 거라는 건 알게 됐잖아요. 이제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 김주혁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극 중 김백진은 자신의 철학과 소신이 명확한 인물이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보기도 한다. 내 이익을 희생해 내 소신을 지키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내 소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과연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김주혁은 어떤 정의를 지키는 사람일까? 

"음... 당해봐야 알 것 같아요. 김백진처럼은 못하더라도, 성격상 저쪽에 빌붙진 않을 것 같아요. 근데 또 남한테 손해 주는 일도 잘 못 해. 굶으면 굶었지, 남한테 돈 못 빌리는 스타일이거든요. 남한테 피해 주는 걸 정말 싫어해요. 제가 김백진이었다면, 조용히 그만두지 않았을까요?" 

김백진과 김주혁

 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

극 중 김백진은 자신의 철학과 소신이 명확한 인물이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보기도 한다. 김주혁은 그런 김백진과 얼마나 닮았을까? ⓒ 나무엑터스


김백진은 기자로서의 소신과 직업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럼 김주혁은 배우로서 어떤 소신과 직업관을 가지고 있을까?

"연기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외적으로 배우니까 뭘 지켜야지, 어떤 모습을 보여야지, 이런 생각은 없어요. 예의범절 지키는 건 배우로서 지켜야 할 게 아니라, 사람이면 지켜야 할 부분인 거잖아요. 배우라고 특별할 건 없죠. 다만 관객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은 하죠." 

김주혁과 함께한 스태프, 배우들은 그를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꼽았다. 김주혁은 이를 '주연배우의 의무'라고 표현했다. 주인공이 인상 쓰고 있으면 현장 분위기가 다운된다는 이유다. 주연배우는 분량도 많은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이래와서 힘들다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주혁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뭔가 멋있어 보이는 답이 나올 것 같은 질문이면 어물쩍 넘기거나 퉁명스러운 말투로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이 주둥이로 일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기 포장에 서툰 사람이라지만, 한편 배우는 때로 자신을 보기 좋게,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미지 메이킹을 못해서 배우로서 피해 보는 부분도 있겠죠. 근데 그건 잠깐인 것 같아요. 당장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쌓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걸 믿고 우직하게 나가는 거죠. 그런 면에선 김백진과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구탱이 형'

 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

젠틀한 이미지의 배우 김주혁은 <1박 2일>을 통해 '구탱이 형'이라는 친숙한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별명에 대한 애착이 많다고 했다. <1박 2일>은 소중한 인연들은 물론, 연기에 대한 재미를 알려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 나무엑터스


김주혁은 기본적으로 젠틀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다. 하지만 < SNL코리아>의 첫 호스트로 나서 보여준 파격이나, < 1박 2일>을 통해 보여준 허술한 '구탱이 형'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자신의 이미지를 깨트리는 데 주저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그는 또, "< SNL >은 그저 사무실에서 시켜서 나갔을 뿐, 솔직히 하기 싫었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 1박 2일>에 대한 애착이 많아요.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지만,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죠. < 1박 2일> 멤버들 단체 카톡창에서 나올 때 되게 씁쓸하더라고요. (굳이 왜 나왔느냐고 묻자) 거기서는 방송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요. 내가 봐선 안 될 것들이 있으니 일부러 나갔죠. '나 나갈게' 하고요."

< 1박 2일>은 김주혁에게 '구탱이 형'이라는 친숙한 별명과 함께, 연기에 대한 재미를 알려준 프로그램이다. 김주혁은 언제부터인가 연기가 재밌어지고, 편해졌다고 했는데, 그게 < 1박 2일>을 하면서부터라고.

"연기가 아닌 내 일상의 모습을 TV로 처음 봤잖아요.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내 감정이 드러난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리고 내 얼굴이 어떻게 나오건 점점 신경도 안 쓰게 되더라고요. (웃음) 내가 그동안 말로 다 표현 못 했던 것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인간 김주혁의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긴 거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늘어난 것이 바로 애드리브다. 예전에는 '애드리브가 작가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주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아르곤>은 특히 애드리브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작품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보였고,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이 생각났다고. 무엇보다 이윤정 PD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너무 이상하면 제가 커트할게요' 하는 스타일이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단다.

"야구장에서 이경영 선배와 나눈 대화나, 8회에 신철 형(박원상 분)이랑 나눈 대화는 거의 애드리브였어요. 감독님한테도 맥락만 전달하고, 즉흥연기처럼 하겠다고 했어요.

흔히 사람들은 애드리브를 웃기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니에요. 애드리브는 큰 톱니 사이에 작은 톱니를 넣는 것과 같아요. 더 부드럽게 잘 굴러가도록 만드는 거죠. 사실 드라마 대본에는 빈틈이 많거든요. 그 구멍을 메우는 게 배우의 역할인 거죠." 

스스로를 믿는 배우 되고 싶다

 배우 김주혁 tvN <아르곤> 인터뷰 제공사진

김주혁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마음에 남는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도 운이 좋은 일"이라면서, <아르곤>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 나무엑터스


김주혁은 <아르곤>을 끝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드라마 잘 봤다, 고맙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재밌는 드라마라 좋았다'가 아니라 '좋은 드라마라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색달랐다고. 김주혁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마음에 남는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도 운이 좋은 일"이라면서, <아르곤>을 통해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다고 했다.

"전에는 내 감정이 틀린 감정일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지금은 배우가 옳다고 믿고 연기한다면, 시청자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틀린 감정은 없는 거죠. 그러니 이제는 연기할 때 더 솔직하게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이젠 나를 그만 의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그동안 (연기에 대한) 고민 정말 많이 했거든요.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하겠죠. 하지만 이젠 스스로에게 '그만 의심하고 믿어봐. 의심이 네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 '되든 안 되든, 일단 나를 던져 보자' 해보려고요. (웃음)"

아르곤 김주혁 김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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