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는 유난히 어려웠던 농사로 기억될 것 같다. 봄 가뭄으로 마늘과 양파의 생육이 부진했고, 폭염과 잦은 비로 강원도 고랭지배추는 수확을 앞두고 겉과 속이 물러지는 무름병으로 출하량이 줄어서 배추가격이 폭등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김치의 양념이 되는 고춧가루는 품귀현상으로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병충해로 인한 작황 부진은 폭염과 긴 장마의 이상기온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가 농사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불가항력적이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농사법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올해 고추는 두 번 따고 포기했어. 약 치고 나면 비 오고 또 약을 쳐도 비가 오니까 소용없어."

농장 인근의 고추 농사를 짓는 농부들마다 고온다습한 장마철에 발생하는 탄저병과 뿌리로 감염된 역병(전염병)으로 고추 농사가 제대로 안 되었다. 농장의 고추도 한 달여 간 지속된 장맛비로 장마 끝 무렵에 탄저병으로 건질 것이 별로 없었다. 이같은 현상은 전국적으로 김장용 고추는 서너 배까지 값이 올랐지만 구하기도 어렵다. 가격은 올랐지만, 수확량이 줄었기 때문에 농민의 수익도 늘어나지 않는다. 비료·농약과 같은 농자재의 고정비용과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를 빼면 남는것이 없다는 말도 듣는다.

역병에 걸린 고추밭, 농부는 수확을 포기하고 뽑았다
 역병에 걸린 고추밭, 농부는 수확을 포기하고 뽑았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트럭에 큰 통을 싣고 가뭄이 심한 봄에는 물을 실어나르고, 잦은 비가 내린 여름에는 농약을 싣고서 뿌리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정도로 올해의 이상기후는 농부들을 지치게 했다. 해마다 보는 모습이고 겪는 현상이지만, 독한 농약을 뿌린다고 해서 병을 완전하게 막아내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발생하지 않거나 막지 못할 병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농약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작물에 피해를 발생시키는 바이러스는 날씨와 토양환경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기후에 의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라서 방법이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흙이 살아야 농사가 잘 된다'는 말처럼, 토양환경을 좋게 하는 방법들은 있다. 흙이 지력(地力)을 유지하고 토양생태계를 보호하려면, 화학비료와 농약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화학물질은 흙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농사의 근본이 되는 흙과 연결된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비료와 농약으로 키우는 농산물이 건강하고 안전할 리 없다. 비료는 작물의 특성과 성장속도에 상관없이 빨리 자라고 크게 만드는 성장촉진제와 같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에 의한 자연스러운 성장이 아닌 화학물질이 투입되면 작물은 생육장애와 면역력이 약해져 병충해에 대한 방어력이 약해진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농약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농업의 현실이기도 하다.

누구를 위한 규격화된 농산물인가

"벌레 잡는 거야. 약 한번 뿌려, 손으로 언제 다 잡아낼 거야. 배추가 너무 안 크는데 비료 한 줌씩 넣어봐."

올해는 잦은 비로 달팽이가 자주 보인다. 한두 마리는 신경도 안 쓰는데 개체 수가 많아 배춧잎을 들춰가며 손으로 잡아내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농부가 하는 말이다. 농사에서 풀과 벌레는 피할 수 없다. 이들을 적(敵)으로 보고 모두 없애야 한다면 끊임없이 농약을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자연생태계에서 필요로 하는 생명체로 본다면 작물에게 큰 피해가 없는 정도에서는 공존해도 별 탈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벌레먹은 흔적이 있는 농산물은 상품에서 제외되거나 하위등급으로 취급되어 제 값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농산물 유통시장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농사는 벌레가 보이거나 없더라도 짐작으로 농약이 뿌려지는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런 농사로 다양한 크기와 맛을 가진 농산물을 소비자가 선택할수 없도록 유통시장에서 차단한다. 농민은 규격화 된 농산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함이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장마비로 쓰러진 대파는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장마비로 쓰러진 대파는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전쟁 무기에서 파생된 비료와 농약은 식량 증산과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녹색혁명'으로 지구촌 곳곳에 뿌려졌다. 그러나 그 실상은 화학기업의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생태계와 환경파괴는 물론, 사람들을 먹을거리의 공포에 계속 몰아넣고 있다.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 검출된 농약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는 위험성이 뱕혀지면서 생산이 중단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흙 속에 잔류하고 있었다.

국가정책으로 화학산업이 들어오면서 비료와 농약도 전국으로 보급되었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유기농업은 자리를 잃었고, 그 자리를 화학비료와 농약이 없으면 농사가 안된다는 주입된 인식은 지금의 '관행 농업'으로 전체농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환경파괴를 중단하고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청산해야 할 농업의 '적폐'라고 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업과 식량주 권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태그:#농약, #화학비료, #DDT, #관행농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