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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교 하류에 깃든 바다모래 위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합니다. 가을을 머금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풀잎들 저 아래로 한 점 두 점 무수히 많은 점이 되어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청정교 하류에 깃든 바다모래 위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합니다. 가을을 머금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풀잎들 저 아래로 한 점 두 점 무수히 많은 점이 되어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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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다한 결과인양, 경례 다 마친 후 솔방울의 장렬한 전사(戰死)인양 솔방울이 땅에서 전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고 다한 결과인양, 경례 다 마친 후 솔방울의 장렬한 전사(戰死)인양 솔방울이 땅에서 전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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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곳... 안면도랍니다)

한 번을 만나도
천 번을 만난 것 같은 사람
당신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한 번의 속삭임이
천년의 세월을 거듭나는 인연처럼
우연이 아닌 만남

한 번의 키스는
처음 사랑처럼 잊을 수 없는
천년의 밤 (강민 <당신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6> 전문)

그렇습니다. 한 번을 만나도 천 번을 만난 것 같은 곳이 있습니다. 반대로 천 번을 만나도 한 번을 만난 것 같은 곳이 있습니다, 내게 안면해변은 그런 곳입니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감촉이 몇 번을 걸어도 여전합니다. 지치지 않고 지칠 수 없고 지치면 안 되는 곳입니다.

만리포니 천리포에 비교하여 그리 너른 백사장도 없습니다. 해변이 길지도 않고 금모래니 은모래니 할 것도 없습니다. 주변의 편의시설이나 화려한 공간도 없습니다. 곰솔 사이로 야영할 공간이 좀 마련되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행복하게 만드는 밤, 안면해변입니다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발아래서 나긋나긋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힘에 꽤나 드는 걷기입니다.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발아래서 나긋나긋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힘에 꽤나 드는 걷기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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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유명해변들과는 그 숫자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긴 하지만 여전히 호젓한 데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식처인 게 분명합니다.
 태안의 유명해변들과는 그 숫자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긴 하지만 여전히 호젓한 데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식처인 게 분명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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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 시인의 표현처럼, 안면해변과의 '한 번의 키스는 처음 사랑처럼 잊을 수 없는 천년의 밤'인가 봅니다. 이 밤은 새벽을 잃어버린 밤입니다. 영원한 밤, 불면의 밤, 둘이 오롯이 지새는 하얀 밤, 네 그런 밤입니다. 까만 밤도 하얀 밤도 다 좋습니다. 그런 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에 해무로 자욱한 안면해변도 그렇고, 늦은 오후에 아내의 손을 잡고 거니는 안면해변도 그렇습니다. 가끔 해가 이울 때 그 유명한 꽃지해변 대신 안면해변을 택하여 걷는 이유도 그런 밤을 사모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밤이 이렇게 환할 수가 있을까요. 밤이 이토록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요. 어느 새 해무를 밀고 바다 저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밉니다. 바람은 내 몸에 닿기 전에 먼저 바닷가 풀잎들을 건드려 곤드레만드레 질펀한 사랑 노래를 늘어놓고 난 후 내 옷깃에 스며 들어옵니다.

청정교 하류에 깃든 바다모래 위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합니다. 가을을 머금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풀잎들 저 아래로 한 점 두 점 무수히 많은 점이 되어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하도 궁금해 견딜 수 없어 돌아오는 길에 그네들을 마중하러 바닷가로 가고 말았네요.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일 뿐, 결국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네요. 그냥 염생식물이겠거니 하고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나문재는 아니고 그렇다고 퉁퉁마디도 아니니 내 지식의 한계를 넘긴 염생식물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길을 더 오래 머물며 걸으면 누구에게라도 얻어 듣겠지요. 그럼 이 염생식물이 무엇이라는 지식으로 내 머리에 각인 될 거고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궁금증을 삭입니다.

양쪽으로 곰솔이 나란히 도열하여 경례를 붙이는 듯합니다. 너무 기합이 들어 그런가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를 그네들의 땀방울이 길 위로 즐비합니다. 땀방울이 솔방울이 되었군요. 수고 다한 결과인양, 경례 다 마친 후 솔방울의 장렬한 전사(戰死)인양 솔방울이 땅에서 전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방울, 곰솔의 장렬한 전사(戰死)일까요

숲 쪽으로는 무궁화도 자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요. 술에 붙은 작은 나방은 앙증맞기도 하죠.
 숲 쪽으로는 무궁화도 자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요. 술에 붙은 작은 나방은 앙증맞기도 하죠.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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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양털구름? 그게 그건가요. 하여튼 저 멀리 떠있는 구름이 무척 몽환적입니다.
 뭉게구름? 양털구름? 그게 그건가요. 하여튼 저 멀리 떠있는 구름이 무척 몽환적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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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에 솔방울이 밟힐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리 조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전사한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발아래서 나긋나긋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힘이 꽤나 드는 걷기입니다. 해변길 중 가장 걷기 녹록치 않은 길이 안면해변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앞에 가는 여행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그 솔방울이 빚어낸 전사(戰死)의 숭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 감사했답니다. 주말이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안면해변을 찾습니다. 태안의 유명해변들과는 그 숫자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긴 하지만 여전히 호젓한 데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식처인 게 분명합니다.

이미 밝게 떠오른 햇빛을 받아 곰솔 터널이 이미 대낮입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여행자들은 앞 다투어 앞으로 앞으로 향하기만 하는군요. 말 한 마디 섞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그들은 재게 걷는데 나는 굼뜨게 걸으니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나는 앞으로 가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즐깁니다. 길을. 느낍니다. 바람을. 만집니다. 바다를... 그러니 그들과 만난다는 게 기적이지요. 뒤에서 오던 이는 만납니다. 하지만 앞에서 걷는 이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인생이 그런 거라고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부러 외롬을 만들며 걷는 안면해변길, 오늘도 바다뿐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뭉게구름? 양털구름? 그게 그건가요. 하여튼 저 멀리 떠있는 구름이 무척 몽환적입니다. 솔가지 위로 어지러이 그들의 지역구 다지기를 하는 걸 보니 그네들의 선거가 얼마 안 남은 모양입니다. 제발 누가 이기든 질펀한 가을비가 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해변길에 왜 미군? 미군들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꽤 차가운 날인데도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들도 보이고요. 짧은 영어로 무슨 일이냐니까. 훈련이랍니다. 허허. 당연한 걸 괜히 물었습니다.

조개도 입을 벌리고 하늘 구경을 합니다. 구름들의 지역구 선거에 조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유독 한 조개만이 그런 모양입니다. 숲 쪽으로는 무궁화도 자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요. 술에 붙은 작은 나방은 앙증맞기도 하죠. 내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안면해변을 향한 애모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조개도 입을 벌리고 하늘 구경을 합니다. 구름들의 지역구 선거에 조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조개도 입을 벌리고 하늘 구경을 합니다. 구름들의 지역구 선거에 조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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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길에 왜 미군? 미군들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공놀이도 하고 물에 들어가기도 하는군요.
 해변길에 왜 미군? 미군들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공놀이도 하고 물에 들어가기도 하는군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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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면도 뒤안길]은 글쓴이가 안면도에 살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계속 함께 해주세요.



태그:#안면도 뒤안길, #안면해변, #안면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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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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