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배우 김의성의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적은 종이를 펼쳐들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배우 김의성의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적은 종이를 펼쳐들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오는 12일 막을 올리는 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 올해는 레드카펫에서 어떤 퍼포먼스가 나올지 주목된다.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은 배우들이나 감독 제작자 등 영화인들이 단순히 관객의 환호를 받는 것을 넘어 약자에 대한 연대와 표현의 자유 등을 강조하는 견해를 밝히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부산영화제 사태와 관련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의성 배우가 레드카펫에 입장하며 부산영화제의 독립성을 강조했고, 정지영 감독은 부산영화제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지지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입장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과 4.16을 강조하는 퍼포먼스가 나오기도 했다. 2011년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당시 레드카펫에 선 배우와 감독은 연대를 상징하는 작업복을 입었고, 구호를 펼쳐 들었다.

영화인들의 의사 표현은 레드카펫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주변에서 1인 시위 등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2006년에는 개막작이었던 <가을로> 김대승 감독이 스크린쿼터와 관련 1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역시 <돼지의 왕>으로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의 농성과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던 제주 강정마을을 응원하는 1인 시위를 전개했다.

부산시 "지난해 시장 불참으로 영화제가 어려움 겪어"

올해 역시 일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퍼포먼스가 모색되고 있는 모습이다. 초점은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정치적 탄압과 이에 동조한 서병수 시장에 의해 영화제의 위상과 상처가 현저히 훼손된 상태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특히 지난해 영화계의 반발 여론을 의식해 불참한 서병수 시장이 올해는 개막식 참석을 예고하고 있는 상태다. 부산시 관계자는 10일 지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 시장 등 간부들이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해 산하 기관들도 참가를 주저하면서 영화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올해는 시가 앞장설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영화제 측도 "서병수 시장이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임을 부산시 관계자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서 시장은 부산영화제 사태의 주범으로 꼽힌다. 단순히 정권 차원의 탄압에 동조한 것이 아닌 주범으로 꼽히는 이유는 전임 시장들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고 정치적 외압은 막아주기 위해 애썼다면, 서 시장은 간섭하려 한데다 자기 뜻을 영화제가 따르지 않자 전면에서 탄압에 가장 앞장섰기 때문이다. 덕분에 20년간 쌓아온 부산영화제는 공든 탑이 무너진 상태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부산영화제는 정치적 압박에 시달렸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강제로 해임당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서병수 시장은 영화계의 사과 요구를 거부한 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검 수사와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을 통해 "김기춘 전 실장이 2014년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기 위해 서병수 부산시장에 직접 전화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정치적 탄압의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으나 서병수 시장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련 기사: "<다이빙벨> 막아라" 김기춘, 서병수 부산시장에 직접 지시)

지난 8월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사퇴 발표 직후 서 시장은 입장발표를 통해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중단 압박과 관련해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동안 쌓아온 중립성과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이용,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라 판단하여 해당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 실제 상영을 막기 위한 제재나 방해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사퇴해도 모자랄 서병수, 레드카펫 밟겠다고?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김동호 현 이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김동호 현 이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 부산국제영화제


이에 대해 주요 영화계 인사들은 "뻔뻔하고 후안무치하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영화계의 사과 요구를 무시하고 도리어 이를 조롱하는 모양새여서 영화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부산영화제 사무국 직원들도 지난 8월 발표한 성명에서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요구한 상태다. (관련 기사: "서병수, 영화제 조롱"... 영화인들 '부산시 입장문'에 반발)

일부 영화인들은 "서 시장이 분명한 사과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올해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으려 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화인들을 계속 무시하고 조롱하는 모양새로 보인다"며 불편함 심기를 나타내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서병수는 부산시장을 사퇴해도 시원치 않을 사람인데,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을 걷겠다니 제정신인지 모르겠다"며 "망신당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다"고 강한 불쾌함을 나타냈다.

또한, 올해는 이용관 전 위원장과 전양준 전 아시아필름마켓 위원장에 이어 김지석 부집행위원장까지 지난 5월 칸에서 타계하면서 영화제 창설 멤버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영화제다.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심장마비로 타계한 데는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적 탄압을 가한 서 시장의 책임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5월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빈소를 찾은 서 시장의 악수 요청을 손으로 가로막으며 거부했다. 부산영화제 탄압의 주범과는 절대 타협하거나 유화적일 수 없다는 의지였다.

당시 장례식 때 서병수 시장의 모습을 본 영화인들 역시 부글부글 끓기는 마찬가지였다. 장례식 분위기를 깰까 봐 대다수 영화인은 서병수 시장이 장례식에 온 것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부산영화제 정상화와 서병수 시장을 비판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펼쳐질 조짐이다.

'서병수 사과하라'와 '물러나라 서병수' 놓고 고민 중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정지영 '#SUPPORT BIFF #SUPPORT MR.LEE' 정지영 감독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69개국에서 301편의 영화가 초청돼 부산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센텀시티, 메가박스 등 5개 극장 34개 스크린에서 오는 15일까지 상영된다.

▲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정지영 '#SUPPORT BIFF #SUPPORT MR.LEE' 정지영 감독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69개국에서 301편의 영화가 초청돼 부산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센텀시티, 메가박스 등 5개 극장 34개 스크린에서 오는 15일까지 상영된다. ⓒ 유성호


올해 영화제에서 행동을 벼르고 있는 몇몇 영화인들은 서병수 시장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영화인은 피켓 시위를 생각하고 있다며 '서병수 사과하라'와 '물러나라 서병수' 문구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청작으로 선정된 한 감독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레드카펫에서의 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의 또 다른 감독도 "조합 지침에 따라 레드카펫은 보이콧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에는 참여해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부산영화제 정상화는 이용관 전 위원장 사퇴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올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이콧을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초청작으로 선정돼 부득이 참석하는 조합 소속 감독들에게는 레드카펫에서 구호가 적힌 종이 펼쳐 들거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언급해 줄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산영화제 기간 중 먼 곳으로 떠나 있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제 창설 주역으로 독립성을 지켜내려다 정치적 탄압을 받은 전임 집행위원장은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해 영화제와 거리를 두는 현실에서, 영화제를 탄압하고 훼손시킨 주역이 레드카펫을 밟으려는 모습에 영화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서병수 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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