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라는 것을 정의하자면 밝음과 어두움의 두 표현의 대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밝음과 어두움은 영화영상, 특히 흑백영화인 경우에 주된 대조이다. 영화에서 조명은 거의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없는데, 카메라의 작은 움직임이나 피사체의 움직임 속에서 언제나 변화하기 때문이다. 조명은 다시 빛과 색채로 나뉜다. 영상물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빛과 색채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선 영화의 빛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빛의 강도와 빛이 나오는 방향, 그리고 빛의 분위기이다. 첫 번째로 우리가 보는 빛의 강도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이 키(High Key)와 로우 키(Low Key)이다. 이 둘의 구분은 빛과 그림자의 비율에 따라서 결정된다. 빛과 그림자의 구분이 없이 전체적으로 밝게 묘사되는 것은 하이 키, 빛과 그림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조명법이 로우 키이다. 이 둘 사이에는 일정한 분위기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이 키는 전체적으로 밝은 탓에 쾌활함과 명랑한 느낌을 줌으로 희극물에는 필수적이다.

반면 로우 키는 어두운 그림자가 반드시 나타나므로 그림자가 암시하는 어두움, 슬픔, 침울함, 무거움의 분위기를 띄게 된다.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에서는 로우 키가 거의 일반적으로 쓰인다.

두 번째로는 빛의 방향인데 이것은 빛이 어디에서 근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빛의 근원은 한가지 장소에서만 기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장소에서 나오는 빛이 서로 조화하며 인물과 사물을 비추고,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빛의 분위기는 이러한 빛의 강도나 방향을 종합해, 단순히 자연스러운 현실의 재현뿐만 아니라, 장면의 분위기를 위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쓰여야 한다.

색은 색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에 따라 의미를 나타낸다. 많은 예술가들은 어두운 색을 공포나 악, 미지의 대상으로, 밝은 색은 안정과 미덕 진리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사용해왔다. 붉은색은 정열, 불길함, 검은색은 어두움, 백색은 청순함, 환희 등의 감정을 암시한다.

흔히 오손 웰즈 감독을 미국 표현주의의 대표라고 말한다. 표현주의 감독들에게 빛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그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중요시하며 자연광선의 유형들을 애써 뒤틀리게 함으로 상징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럼 지금부터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에서 나타난 조명에 대해 알아보자.

케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영화

 <시민 케인> 스틸 사진

<시민 케인> 스틸 사진 ⓒ 오슨웰즈


이 영화는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는 모순된 성격의 막강한 신문왕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제목에서 '시민'이라는 부사어구로 강조되는 케인의 인물상은 사실 부유한 케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의 설정으로 어울릴 수 없는 두 단어의 조화를 통한 케인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조명하고자 하는 효과이다. <시민 케인>은 첫 도입부에서 케인이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흑백TV에서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나오며 생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다. 이어서 나 타나는 신문사 내부에서는 신문사 내부의 직원들의 모습이 블라인드 처리가 되어 나타난다. 이때 천장의 몇몇 부분에서 강한 빛이 새어 나오며 간간히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다시 그들 중 케인의 생애에 대해 조사를 하고자 하는 '톰슨'이라는 기자로 시선이 옮겨가고, 그는 케인의 생애에 관련이 깊었던 사람들 을 찾아가 그들의 회상과 증언을 통해 '케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찾아가는 것은 취재를 하며 케인이 남긴 마지막 유언인 '로즈 버드(Rosebud)'라는 단어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톰슨 기자는 블라인드 처리, 혹은 뒷모습만을 보여줌으로 철저하게 가려진다. 톰슨 기자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내는 케인이라는 인물의 모습을 플래시백 기법으로 보여줄 때 조명은 일반적인 영화적 구도와는 다르게 비춰진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하나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본디 연극 제작으로 연출계에 발을 들인 감독의 성향이 드러나 있다고 보인다.

연극적 조명 기법의 예를 들자면 톰슨 기자가 대처 기념관에서 자료를 보려고 하는 장면에서 조명은 빛이 천창을 통해 아래로 내리쬐는 효과를 낸다. 조명은 방 전체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있는 책상만을 비추고 있다. 이러한 조명은 책상 위에 올려진 자료에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강조다.

대조적인 조명, 그에 따른 케인의 삶

 <시민 케인> 스틸 사진

<시민 케인> 스틸 사진 ⓒ 오슨웰즈


이야기를 통해 전개되는 케인의 생애는 케인의 젊은 시절부터 죽음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초반에 케인의 어린 시절을 보여 주는 장면에서 흰 눈과 대조적으로 케인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어린 케인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은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흰색은 선, 흑색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어린 시절 선한 본성을 가진 케인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오손 웰스 감독은 케인의 유년기와 개혁의 의지에 불타는 청년시절을 다룬 장면에서 그의 선한 내면과 곧은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하이 키를 썼다. 하지만 그의 젊음을 묘사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하이 키가 적용된 것은 아니다. 케인이 나타나는 장면에서 조명은 주로 케인의 얼굴을 향해 비추고, 얼굴의 절반은 밝게, 나머지 절반은 어둡게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손 웰스 감독은 조명을 비교적 작은 곳에 집중시키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효과를 사용해 케인 내면의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선과 악이 충돌하는 대조효과를 낸다. 감독은 심리적이며 주체적인 목적을 위해 '강력한 대조법'을 사용한다.

조명 효과를 통해 감독은 시민 케인의 변화를 나타내고자 한 건 아닐까. 그는 25세가 되며 '인콰이어러'라는 신문사를 인수해 힘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소시민들을 대변하는 사회의 보호장치 역할을 자처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케인이 부유해지는 삶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점점 변해간다. 종국에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추구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데올로기를 망각한 채 추악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오손 웰스 감독 은 이러한 케인의 성격변화를 앞에서 언급한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통해 은유하고 있다. 그의 선과 악이 공존하며 점점 악에 사로잡혀가는 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장면들은 그의 후견인과의 말다툼 장면, 원칙 선언문을 신문에 싣겠다고 말하는 장면 등이 있다.

이때 그의 얼굴은 조명에 의해 절반으로 나뉘어 나타나게 된다. 후에 케인은 본인이 가진 부를 통해 정치 입문의 포부를 가지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선거 도중 케인이 또다른 후보인 짐 게터스와의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케인의 얼굴은 블라인드 처리된다. 이 부분을 이분법으로 해석해 보자면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하이 키의 조명 효과로 대변되던 케인의 선한 마음을 블라인드 처리함으로 악에 의해 잠식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계단의 위아래로 라이벌과 전 부인을 향해 독설을 내뿜는 모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하강의 구도를 통해 사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게 된 모습으로 변한 케인을 강조한다.

이러한 조명 효과에 맞춰 수잔이라는 여자와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케인의 인기는 추락하고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하게 된다. 그리고 전부인과 그의 아들이 죽게 되는데 그들의 죽음과 함께 과거의 케인은 완전히 죽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윽고 그는 수잔과 결혼해 수잔을 오페라 가수로 성공시키는 것에 힘을 쏟는다. 수잔에게 별다른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케인은 그녀를 오페라 스타로 키우려 하고, 수잔은 그녀가 당하는 사회적 모욕에는 관심이 없는 케인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결국 수잔은 자살을 기도하고 이 자살기도를 계기로 케인은 수잔의 꿈을 지지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제나두(Zanaeu)'라는 이름의 거대한 저택을 세우고 케인은 그 안에서 수잔과 함께 은둔과 같은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제나두 저택 안은 어두운 조명으로 표현된다. 마치 끝없는 밤이 계속되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오직 스포트라이트만이 중압적인 어둠 속을 꿰뚫는다. 의자와 소파, 영웅상들이 윤곽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지배적인 분위기는 스산하고 비밀에 싸여 있으며, 그 어둠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악함이 담겨있다.

영화 속에서 제나두 내부로 취재를 나가는 톰슨 기자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는 카메라 워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제나두로 대표되는 케인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마치 악의 요새와도 같은 형상이다. 이후 수잔은 제나두에서의 답답한 생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서 떠나버린다. 마침내 홀로 남은 케인은 폐쇄되고 단절되었지만 가난하지는 않은 이곳, 제나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조명은 전반적으로 로우 키를 사용했으며 하이 키의 사용은 조금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케인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케인이 늙어가고 점차 타락한 인간으로 변화해 가면서 조명은 차츰 더 어두워지고 명암 대조는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이러한 조명은 관객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케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선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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