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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와 고교학점제와 수능절대평가제가 주요 교육정책과제로 등장했지만 곧 시행은 미뤄졌다. 그 주된 이유는 개혁과제 하나만 해도 서너 가지 부대조건을 동시에 개선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점제는 그 취지가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설되는 과목에 대해 동일 지역내 몇 개 학교를 클러스터로 묶어 학점을 공유한다든가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과목을 수능시험에 출제할 것인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어떤 것으로 해야 하는가, 수능과목이 늘어나는 데 따른 부담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단번에 한 가지 정책만 발표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수능절대평가제의 경우, 전과목을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과목만 할 것인를 놓고 여론이 충돌했다. 이는 일부 과목에서만이라도 상대평가를 해서 선발효과를 유지함으로써 내 자녀를 좀더 유리한 입장에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학부모의 교육열 때문이다. 이 역시 연기되었다. 이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개혁은 정권 변동에 맞춰 발표되고 이내 개혁이 완성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음과 같은 만성적인 교육적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의 학교현장의 오랜 문제들

"왜 한국의 학생들은 해외 학생들과 수준높은 토론이 안 되는가? 왜 학생들의 인성이 날로 메마르고 있으며 사제관계도 예전처럼 애틋함이 없는가? 왜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잠을 많이 자며 잡담을 할 때 거의 그냥 둘 수 밖에 없는가? 학문 분야 노벨상이 한 명도 없는 데, 암기 중심의 매우 비생산적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왜 입시 위주의 교육은 완화되지 않는가?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의 과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진보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대응책을 세우지 못하는가? 한국에서는 기술계(전문계) 학교졸업자에 대한 대우가 어떠하길래 선진국과 달리 버스운전수와 대학교수의 임금의 차이가 심한가?"

이것의 원인을 요컨대 직업차별/노동차별/학력차별로 전제하고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의 사무직 선호현상은 높은 연봉, 정년 및 노후보장, 안정된 직장에 은행대출이 잘되는 금융상의 지원 등이 가능해질 뿐더러 심지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대학교수의 자녀가 배관공과 같은 기능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창피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의 학사관리가 엄격하면서도 탈락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즉 대학입학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을 통과한 후 1~2년 후에 탈락하면 BAC+1, BAC+2의 이력서를 들고 다른 적성 혹은 직업학교를 찾는다. 기술개발과 그 종사자들을 우대하는 풍토다. 노동자 우대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독일에서는 청년이 창업하면 3년간 월급을 보장함으로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직업차별이 문제

어느 사회나 차별과 배제에서 오는 문제들이 없을 수 없지만 교육 선진국들은 한국과 같은 절대적 문제들이 적다. 덴마크 등지에서는 청소부와 시장이 큰 차이 없이 정원이 딸린 이층 집에서 사는 것이 거의 공통의 꿈이 되어가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실업자들에 대해 취업 상태에 맞먹는 장기간의 실업수당과 자녀교육비 등이 지급되지만 한국의 실업수당은 보통 6개월이면 끝난다. 취약한 복지혜택은 직업차별과 함께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차별이 한국 교육문제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다.

직업차별이 연쇄적으로 교육의 정상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직업/노동차별이 교육의 흐름을 제어하면서 그 성공적 실천을 방해하고 있다.
▲ 직업차별의 악영향 직업/노동차별이 교육의 흐름을 제어하면서 그 성공적 실천을 방해하고 있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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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차별/노동차별/학벌차별의 원인을 놓고 전통적인 반상차별(班常差別)의 성리학적 가치관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이는 기술자-기능인에 대한 경제적 보수, 연금보장, 복지혜택상의 차별을 없애는 것으로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사무직과 공기업 선호현상은 대학진학을 과열시킬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한국처럼 의예과나 법학과가 그리 인기학과 대열에 끼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요즘 의학 및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직업 차별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물리학, 화학, 미학, 철학과 같이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결국에는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분야가 선호됨과 동시에 각종 요리, 패션 등 실용학문도 인기분야다.

교육환경 조성도 교육정상화의 중요한 조건

예전에 수업시간에 고교생들에게 덕(德)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담은 책 '프로타고라스'를 읽힌 적이 있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논쟁을 담은 것인데, 덕이란 지식처럼 가르치고 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이 책은 덕에 대해 지성적으로 논쟁하는 아주 훌륭한 교본이라 여겼지만 고교 1년생들에게는 어려웠다. 한 반의 30명 중에서 3명 정도가 스스로 책 내용을 이해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려운 부분을 해설하며 읽히려고 해도 맡은 과목인 윤리 교과서 진도를 떼기 바빠서 이마저 어려웠다. 게다가 국영수 공부하는 데 지장을 줄까봐 과제도 내기 어려웠다. 독서 과제를 내면 대부분 인터넷에서 줄거리와 감상을 베껴오는 실정이다.

미국의 중고교에서 인터넷에서 숙제를 베껴오면 그 과제는 0점으로 처리될 만큼 엄격하다. 이렇게 학사관리가 엄정해지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학기당 이수과목이 평균 7개가 넘지 않게 줄이고, 한 과목이 담은 내용을 대폭 줄여 공부 부담을 줄이며, 교사들이 행정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수업탐구와 과제처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 교사 1인당 학생수가 수십 명이 넘지 않아야 하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고교 혹은 직업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면 사회적으로 경제 및 인식면에서 크게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한국은 이 조건들이 전반적으로 미비하다. 그래서 입시교육과 이에 따라붙는 사교육 수요를 완화시킬 수 없다.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차별/직업차별 극복이 교육정상화의 길을 열어줄 것

러시아 태생이면서 한국에 귀화한 한국학 전공자인 박노자 교수가 한국의 노동차별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동자 차별은 (경제적 보상 및 사회적으로 낮은 인정과 같은) 현실적 문제 외에도 학교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담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툭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교과서도 한번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신라사를 배울 때 김춘추 김유신 같은 정치꾼의 이름은 술술 외워도 '민족의 자랑'인 에밀레종의 주조를 총관했던 8세기 후반의 뛰어난 주종(鑄鐘) 기술자 대(大)박사 박종일의 이름 석자를 배운 사람이 있는가? 고대에 '박사'라는 말은 학자뿐만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뛰어난 장인도 지칭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은가?" (2005.9.13.일자 한겨레 신문칼럼)

결국 고교 졸업생,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 즉 기술자와 기능공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우리의 현재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아져야 대학진학 열기가 줄어들 것이다. 고교생 10명 중 6~7명은 "대학요? 힘들게 대학을 왜 가요? 기술만 갖고도 사회에서 대우받고 노후보장도 되는 걸요." 이렇게 응답할 때가 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 학교에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여 교사들이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고, 학교를 장악하는 형태의 비민주적이고 제왕적인 교장임용제도를 바로잡아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는 풍토를 만들며, 교사들이 교육과정 및 교재구성 그리고 평가의 자율성을 보장받을 때 비로소 교실에서는 토론-발표수업이 살아나면서 학점제 및 수능 절대평가 문제 등 제반 교육문제들이 한결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노동차별/직업차별의 극복은 중등교육을 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교육개혁 그 자체를 성공시키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는 곧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태그:#직업차별, #노동차별, #학벌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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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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