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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이 그토록 아껴두었던 것들을 폐기처분하면서 깨닫는 것은 '죽을 때 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다. 내가 살아있지 않은 한 쓸모없어질 것들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언젠가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라서, 비싸게 산 물건이라서 필요하지도 않은데 끼고 사는 물건들은 삶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청림출판, 187쪽)

유품정리사 김새별이 그의 책에서 남긴 말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사연 많은 유품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삶, 그게 유품정리사의 삶입니다. 그래서 김새별은 일종의 자기 달관에 이른 모양입니다. 더 이상 물건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새별 같은 유품정리사는 남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치우며 인생의 참뜻을 발견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며 행복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이가 있습니다. 80이 넘은 할머니 스웨덴의 마르가레타 망누손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데스클리닝', 선택 아닌 필수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 황소연 옮김 / 시공사 펴냄 / 2017. 9 / 190쪽 / 1만2500 원)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 황소연 옮김 / 시공사 펴냄 / 2017. 9 / 190쪽 / 1만2500 원)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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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추억의 물건들을 처리하는 법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가 내일 죽는다면>에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유품정리사 같은 남이 어떤 죽은 이의 물건을 처분하는 일은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김새별은 자살이라든가 사고로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죽기 전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처분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겠습니까. 그의 삶이 물건과 함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결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꼭 해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실한 정리정돈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습니다. 당신을 대신해 누군가가 당신의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49쪽)

실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는 홀로 김포에 사시고, 우리 내외는 세종(그때 연기군)에 살았습니다. 몸이 안 좋아지면서 몇 달은 우리와 함께 지내다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홀로 사시던 집의 물건을 처분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사시던 누님께 그 일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는데, 누님은 뭐 그리 쓸데없는 걸 많이 쌓아놓았는지 모르겠다며, 정리하다가 몸살이 다 났다고 했습니다. 제가 봐도 어머니 생전에는 온갖 물건들로 집안이 빼곡했습니다. 전혀 사용해 본 적도 없는 물건들이 사후 쓰레기가 된 것은 당연하고요.

그때 얻은 교훈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그때그때 버리자고요.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은 좀 다른 의견이라 그걸 가지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라 그냥 놔두고 사는 형편입니다. 내 것은 확실히 잘 버립니다. 그 중 으뜸이 책이죠. 특히 사전류, 싹 버렸습니다.

"나는 죽음을 대비한 청소,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을 합니다. (중략) 이 말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는 일'을 말합니다. (중략) 나는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청산할지 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6,7쪽)

저자는 데스클리닝이 '절대 슬프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남기고 간 물건을 어느 누가(가족일 게 분명하다) 치우느라 불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저자는 가족에겐 미리 자신이 데스클리닝을 하고 있다고 알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미리 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저자는 누구나 죽는 것이 사실이라면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일환으로 하는 데스클리닝은 차라리 '죽음에 대한 대화'로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충고합니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말라고.

데스클리닝 만큼은 가족이 도움이 안 된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 이유는 어느 물건을 누가 가지고, 어느 물건을 없애고 어느 물건을 남기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부부간에도 이게 안 맞는데 여러 가족이 모인다면 더 안 되겠지요. 저자는 남편이 먼저 죽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남겨 놓은 물건이 죽은 자를 욕되게 할 수도

저자는 자신이 한 데스클리닝을 추천하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며 조언합니다. 먼저 큰 물건부터, 쉬운 것부터 처분하라고 합니다. 사진은 맨 나중에 하랍니다. 큰 물건 몇 개 들어내고 나면 용기가 생기고, 쉬운 것부터 처리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보관 중인 사진과 편지는 가구나 다른 물건의 운명이 결정될 때까지 보류하십시오. 데스클리닝에서는 크기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크기가 큰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작은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사진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어려 있기 때문에 감정이 작업을 방해하기 십상입니다." (27쪽)

저자는 여자가 데스클리닝을 잘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남녀를 떠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면 죽고 나서 치욕이 될 수 있음은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죽고 나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좋은 것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할아버지 옷장에 여성의 속옷이 나오기도 하고, 할머니 서랍에서 성인용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중략)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자기 물건을 데스클리닝하면 그 행위 자체가 훗날 우리를 대신해 데스클리닝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121쪽)

오늘날은 물건 뿐 아니라 컴퓨터도 말끔히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신문 기사나 포털의 글은 영원히 남는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산자가 필요할 때 지울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물건뿐 아니라 글이나 예술작품 등도 데스클리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비만능주의에 찌들어 사는 우리에게 데스클리닝은 산뜻한 삶에의 충고입니다. 죽음이 임박하지 않았어도 적게 가지고 적당히 쓰는 일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 황소연 옮김 / 시공사 펴냄 / 2017. 9 / 190쪽 / 1만2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내가 내일 죽는다면 -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황소연 옮김, 시공사(2017)


태그:#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데스클리닝, #죽기 전에 정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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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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