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행사 중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3일 저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행사 중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타자' 이승엽이 23년에 걸친 위대한 야구인생의 대장정을 아름답게 마감했다. 3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넥센의 경기는 2017시즌 최종전이자 이승엽의 마지막 은퇴경기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전설과의 작별무대를 빛내기 위하여 만원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이승엽은 연타석 홈런포를 터뜨리며 자신의 고별무대 피날레를 스스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비록 올시즌 9위에 그치며 부진했던 삼성이지만 최종전에서는 선수단이 집중력을 발휘하여 10-9로 짜릿한 진땀승을 거두며 이승엽의 마지막 고별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승엽은 경기후 성대한 은퇴식을 통하여 정든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승엽의 야구인생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당시만 해도 투수 유망주였으나 일찌감치 그의 타격 재능을 알아본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코치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프로 입단과 동시에 왼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 당분간 투구가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도 타자 전향에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이는 이승엽 본인과 한국야구의 역사까지 바꾼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승엽은 데뷔 시즌 13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알렸고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하며 데뷔 3년차인 1997시즌 32홈런으로 데뷔 첫 홈런왕에 오르며 본격적인 '이승엽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승엽은 이후 2003년까지 총 5번이나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자타공인 KBO리그 최고의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최전성기인 2003년에는 56홈런을 치며 당시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자 지금도 깨지지않고 있는 KBO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수립했다.

KBO 무대를 평정한 이승엽은 전성기에 해외로 눈을 돌렸다. 당초 메이저리그 진출을 먼저 염두에 뒀지만 당시만 해도 KBO리그의 위상이 그리 높지않았던 데다, 특히 타자들의 미국 진출은 높은 장벽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결국 이승엽은 일본 무대로 눈을 돌렸다. 2004년 지바 롯데 입단을 시작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쳐 오릭스 버팔로스에 이르기까지 8시즌 간 3개의 일본 프로팀을 거쳤다.

일본 시절은 이승엽의 야구인생에서 명과 암이 가장 극명하게 교차하던 시기였다. 이승엽은 일본무대에서도 3년연속 30홈런(2005~2007) 이상을 기록하는 등 정상급 타자로 군림했다. 특히 2006년에는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불리우는 요미우리의 주전 4번타자 자리를 꿰차며 타율 .323, 41홈런 108타점으로 일본무대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부상과 슬럼프게 겹치며 내리막길을 걸었고 요미우리에서의 말년에는 2군을 전전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항상 꽃길만을 걸어왔던 이승엽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팬들이나 야구인들은 이승엽이 일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잘한 시즌보다 그렇지못한 시즌이 더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승엽은 8년간 15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무대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거포로서의 족적을 남겼다.

2012년 친정팀 삼성으로 복귀하며 KBO 무대로 돌아온 이승엽은 어느덧 전성기를 지난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승KBO 2기 시절 6시즌간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넘겼고 그중 5번이나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이승엽은 2013년 6월 20일 문학 SK전에서 선배 양준혁(351홈런)이 보유하고 있던 KBO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352호)을 경신하며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일본 진출로 인한 8년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대기록이었다.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 역대 최초로 한·일 통산 600홈런 고지를 밟기도 했다.

이승엽은 3일 넥센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순간까지 KBO리그에서 개인 통산 1천906경기 타율 0.302(7,132타수 2.156안타), 467홈런, 1천498타점, 1천355득점을 기록했다. 홈런, 타점, 득점, 2루타 부문 통산 1위다. 이 부문 2위는 모두 이미 은퇴한 양준혁이고, 현역 선수들과 이승엽의 격차는 '넘사벽'이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한·일통산 홈런도 626개도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이 될 전망이다.

더구나 이승엽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숫자로만 설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승엽은 단지 홈런왕을 넘어서 한국야구사에 가장 위대한 '클러치히터'이기도 했다. 이승엽은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동점홈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일본전 8회 역전 홈런, 2008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전 한일전 8회 결승홈런, 결승 쿠바전 투런 홈런 등 수많은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고비마다 팀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승엽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WBC-아시안게임-올림픽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4번타자로 10여년 넘게 헌신하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이승엽이 KBO 무대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타자'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계기도 바로 태극마크를 달고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 덕분이었다.

또한 뛰어난 야구실력 못지않게 이승엽이 더 국민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흠잡을 데 없는 '인성' 때문이었다. 보통 이승엽 정도되는 슈퍼스타들은 강한 자존심과 승부욕으로 인하여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승엽은 야구인생 내내 슈퍼스타 특유의 이기주의나 나르시즘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무명의 장내 아나운서였던 김제동과의 오랜 우정이나, 어린 후배 투수들에게 홈런을 때려내고 오히려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르게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경기장 안팎에서 팬들을 대하는 따뜻한 매너 등 이승엽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20년이 넘는 세월에도 항상 미담 일색이다.

흔히 구수한 사투리나 선해보이는 인상만 보고 이승엽을 그저 순박한 선수로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보면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흔한 사건사고나 잡음 한 번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만큼 이승엽의 단호하고 철두철미한 일면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승엽은 타자 전향, 타격폼 수정, 해외진출, 국내 복귀, 은퇴에 이르기까지 야구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요한 결단은 항상 스스로 내렸고 한번 결정을 내리면 뒤를 돌아보지않는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음주, 도박, 승부조작, 스캔들, SNS 등 잘나가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이승엽은 은퇴하는 순간까지 모범적인 야구선수의 전형으로만 남았다. 프로라면 당연히 자신이 누리는 권리만큼이나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초심을 이승엽은 끝까지 잃지 않았다. 야구로 인하여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음에도 정작 무절제한 처신으로 몰락하는 스타들을 보며 실망감을 느껴야했던 팬들은, 이승엽을 통하여 진정한 스포츠스타란 어떤 것인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승엽은 자신의 은퇴 과정까지도 한국 스포츠 문화에 하나의 모범으로 남겼다. 선수생활 말년에 접어든 노장 선수들이 구단과 갈등을 빚거나 기량이 떨어져 초라한 모습으로 사라지는 것과 달리, 이승엽은 최고의 자리에서 자신이 떠날 순간을 스스로 결정했고 마지막까지 흔들림없이 그 약속을 지켰다. 야구인생의 마지막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도 여전히 '국민타자'의 위엄을 잃지않은 이승엽의 모습은 진정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의 완벽한 예시이기도 했다.

은퇴를 앞두고 10개구단 전국 원정 경기를 순회하며 성황리에 이뤄진 '은퇴투어'는 오직 이승엽이기에 가능했던 이벤트이자, '스포츠 영웅'을 예우하는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않은 한국야구계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억될 장면이기도 했다. 이승엽이라는 선수가 그만큼 삼성의 전설을 넘어서 한국야구 공통의 레전드로서 그 가치를 존중받았다는 증명이었다.

야구선수로서 이승엽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이 본인에게나 야구팬들에게나 정말 실감이 나려면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베이브 루스나 마이클 조던, 무하마드 알리같은 전설들을 추억하며 스포츠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을 공유하듯이, 먼훗날 한국 야구팬들에게 있어서는 '우리는 이승엽의 시대를 직접 겪으며 함께했다'는 것을 행복한 추억으로 떠올리게 될 순간이 돌아오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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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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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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