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토트넘 홋스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팀 중 유일하게 홈(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 조별리그 홈경기, FA컵 4강전 등이 치러진 웸블리 스타디움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리그 홈 승률 덕분에 준우승이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올 시즌은 조금 다르다. 화이트 하트 레인 신축공사로 인해 웸블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탓인지 아직까지 리그 홈 승리가 없다. UCL 조별리그 1차전 도르트문트(3-1)전과 EFL컵 반슬리(1-0)전에서 홈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첼시(1-2), 번리(1-1), 스완지 시티(0-0)와 리그 맞대결에서는 웃지 못했다.

그런데 원정 승률이 놀랍다. 올 시즌 원정 5경기 전승이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개막전에서 2-0 승리를 거뒀고, 만만찮은 에버턴 원정에서는 3-0으로 완승했다. UCL 조별리그 2차전 아포엘(키프로스)전에서도 3-0 승리를 거두는 등 5경기 15골·2실점의 놀라운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 해리 케인이 있다. 케인은 도르트문트전 멀티골이 올 시즌 홈 득점의 전부지만, 원정 5경기에서 무려 9골을 몰아쳤다. 아포엘전 해트트릭, 멀티골만 세 차례 등 상승세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도르트문트전을 포함하면 멀티골만 네 차례다. 올 시즌에도 8월 무득점 징크스를 깨는 데 실패했단 점을 고려하면, 놀라움이 배가된다. 9월에 치러진 6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뽑아냈기 때문.

30일 오후 8시 30분(한국 시각) 허더즈필드 원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케인은 상대 수비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일찌감치(전반 8분) 선제골을 뽑아냈다. 전반 23분에는 스트라이커라 보기 어려운 날렵한 움직임과 예리한 슈팅력을 자랑하며 멀티골을 완성했다. 토트넘은 벤 데이비스의 골까지 더해 전반전에만 3득점을 뽑아내며, 일찍이 승부를 갈랐다.

8분 출전 손흥민, 조급할 필요도 느긋할 여유도 없는 상황

손흥민은 허더즈필드전에서 후반 40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이 기울어진 승부,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케인에게 박수를 선물하기 위한 교체였다. 손흥민은 날카로운 침투 패스로 무사 시소코의 네 번째 골이 터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잘나가는 팀 분위기에 위기감을 느낄 것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손흥민은 케인과 알리, 에릭센 등 기존 선수들에 비해 올 시즌을 준비할 기간이 짧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에서 부상을 당한 탓에 프리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손흥민은 개막전부터 교체 투입돼 예상보다 빠른 복귀전을 치렀지만, 정상적인 몸 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팔에 깁스를 한 탓에 몸싸움에 제약이 따랐고, 완벽한 경기 감각을 회복하는 데도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런데도 도르트문트전에서 손흥민이란 이름에 걸맞은 멋진 골을 터뜨렸고,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스완지 시티전 활약도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에는 풀타임 경기도 치러냈다. 손흥민은 아직 리그 풀타임은 없지만, 반슬리전과 아포엘 원정에서 90분을 뛰었다. 기대했던 득점포는 없었지만, 몸 상태가 정상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했다. 윙백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케인과 투톱으로 나서기도 하는 등 멀티 플레이어 성향도 보이고 있다.

특히, 손흥민 활용에 고민하는 포체티노 감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즌 토트넘이 스리백을 내세울 때 손흥민은 애매했다. 포백 전술의 왼쪽 측면 공격수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중앙 움직임이 많은 스리백에서는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케인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올 시즌은 다르다. 지난 시즌 21골 6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을 주 포메이션으로 자리 잡은 스리백에서도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수비적인 부담이 덜한 팀과 경기에서 윙백이나 투톱으로 활용하면서, 손흥민의 공격력을 폭발시키려 하고 있다. 포백일 경우에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손흥민은 주전 공격 3인방(에릭센-케인-알리)에 비해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가 떨어진다. 알리가 지난 시즌과 비교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8경기에 출전해 3골 1도움을 올리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케인, 에릭센과 흠잡을 데 없는 호흡을 자랑하는 점도 손흥민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다.

손흥민이 EPL을 넘어 세계 최고의 공격수 자리를 넘보는 케인,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는 에릭센을 넘어서기도 어렵다. 결국, 지난 시즌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포백으로 나설 때는 확고한 주전, 스리백일 경우에는 로테이션이란 공식을 이어가야 한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윙백으로 나설 때는 측면 지배력, 투톱에서는 결정력과 도우미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왼쪽 측면 공격수 위치에서는 자신이 최고란 것을 각인시켜줘야 한다. 손흥민은 급할 필요 없지만, 느긋할 여유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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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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