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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배낭여행자가 되어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 말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전경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전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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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도착한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바라본 테이블 마운틴은 서쪽 바다로 지는 노을과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멋진 풍경 감상도 잠시. 금방 어두워진 밤하늘은 케이프타운의 온전한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테이블 마운틴을 찾아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도시는 아프리카 하면 으레 떠올릴 법한 후진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높이 솟아 오른 빌딩과 반듯한 건물, 잘 닦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풍경은 영미권 여느 대도시와 다름 없었습니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정확하게 운행하는 시내버스와 편리한 교통카드 시스템도 어느 선진 대도시에 뒤쳐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처럼 넓고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 눈이 시리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푸른 바다와 하늘, 해안선을 배경으로 펼쳐진 도시의 전경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케이프타운은 평온하고 여유롭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랜드 퍼레이드(Grand Parade)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시청과 광장의 노숙자들
 그랜드 퍼레이드(Grand Parade)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시청과 광장의 노숙자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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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는 가장 오래된 광장이며 시청이 위치하고 있는 그랜드 퍼레이드(Grand Parade)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27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넬슨 만델라가 처음으로 연설을 했던 장소이며, 1994년 대통령 당선 이후 연설을 했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길을 걸었습니다.

도시 구석구석의 모습은 멀리 산 위에서 바라보고 차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 골목에 한 명 정도씩은 만나게 되는 걸인들이었습니다. 케이프타운의 걸인들은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무척 적극적이었습니다. 거절의 의사를 표현해도 계속 따라오며 동냥을 하고, 빨간 신호등에 서 있는 차 앞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도착한 그랜드 퍼레이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만델라와 관련된 상징물이라든가 인종차별 철폐와 관련된 기념물 따위는 없었습니다. 대신 광장의 복판은 노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안방인양 누워있는 그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고풍스러운 시청과 현대적인 고층빌딩과는 너무나 상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오히려 그랜드 퍼레이드의 생생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만델라와 인연이 깊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훨씬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예를 거래하던 곳이며 공개 처벌이 행해지던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순간 남아공의 현실이 눈 앞에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악명 높았던 인종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흑인정부가 들어선지도 20년이 넘었지만, 남아공에는 여전히 많은 사회문제와 갈등이 존재합니다. 

백인과 흑인의 거주지역을 인위적으로 구분짓는 법은 사라졌지만, 4배가 넘는 흑백의 소득격차는 지금도 주거지역을 갈라 놓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적인 사회문화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완고한 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인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사법제도, 흑인들의 높은 실업률과 문맹률, 흑인 종족간의 갈등,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부패에 이르기까지. 남아공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해 보입니다.

 케이프 포인트의 등대에서 바라본 희망봉
 케이프 포인트의 등대에서 바라본 희망봉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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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외곽 케이프반도의 끝자락에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기억될 '희망봉'이 있었습니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항해가 디아스가 1488년 도착하여 '폭풍의 곶'이라 명명하였던 곳을, 포르투갈 국왕 후앙2세가 '미래의 희망'을 시사하는 의미에서 '희망봉'으로 이름 붙인 것에서 연유하는 명칭입니다. 9년 뒤 바스쿠 다 가마는 이 희망봉을 에둘러 인도 항로 개척에 성공하게 됩니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유럽의 패자(覇者)들에게는 팽창과 번영의 시작점일지 모르지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수탈과 핍박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시작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폭풍의 곶'이라는 명칭에 어울릴만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봉우리에 올라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남아공의 다이아몬드 재벌 세실 존 로즈에 대한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영국 태생으로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요양차 케이프타운에 왔다가 다이아몬드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총독까지 지내게 됩니다.

사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재산 일부는 옥스퍼드대학에 기증되어 장학금으로 쓰입니다. 빌 클린턴 전(前) 미국 대통령도 이 로즈장학금의 수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흑인들의 땅에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쌓은 부는 주로 영국, 미국의 백인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습니다. 과연 아프리카의 흑인들 중에서 이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는지 궁금했습니다.

로즈장학금 이야기는 조금 더 확장하여 보면 근대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함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흑인을 비롯한 제3세계 노동력의 착취 없이 기술혁신과 청교도 정신만으로 서구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절반의 희망과 성공 뒤에 숨겨진 절반의 절망과 희생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치범으로 7년간 로벤섬에서 복역했던 가이드 스팍스씨. 또박또박 웅변하듯 말하는 그의 설명에서는 진실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정치범으로 7년간 로벤섬에서 복역했던 가이드 스팍스씨. 또박또박 웅변하듯 말하는 그의 설명에서는 진실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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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상징에서 이제는 희망의 상징으로 바뀌어 기념되는 곳, 로벤섬에 갔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흑인 노예들의 임시 수용소로 쓰였고,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 운동가들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썼던 곳입니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분 남짓 걸려 도착하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버스에 올라타면 비교적 젊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로벤섬 일대의 주요 시설을 둘러보게 됩니다. 

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Maximum Security Prison'에 도착하면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리고, 가이드가 바뀌게 됩니다. 이 감옥에 대한 안내는 과거 로벤섬에 실제 수감되었던,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진 중년에서 노년의 가이드들이 직접 맡습니다. 본인이 실제 겪었던 참혹했던 투옥생활과 시대상황, 넬슨 만델라의 일화가 설명의 주를 이룹니다.

내가 속해 있던 그룹의 가이드는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정치범으로 7년간 복역했던 스팍스씨였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쪼개어 아주 천천히 힘있게, 마치 웅변을 하듯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언어권에서 온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본인이 걸었던 길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회한이 묻어나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간간이 던지는 유머와 마지막 배웅 인사의 미소에서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사람의 여유로움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한 시대의 아픔과 진실을 이런 방식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여겨졌습니다.

남아공의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보면 20년 동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만델라와 그의 동료 세대들은 충분히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성을 파괴시킨 인종차별제도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질서를 만들어 내었으며, 과거의 상처를 딛고 미래로 가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진실 규명과 화해를 추진했던 업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입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오랜 세월 쌓여 있던 적폐를 청산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의 투옥생활 중 18년을 로벤섬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그가 수감되었던 독방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의 투옥생활 중 18년을 로벤섬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그가 수감되었던 독방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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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벤섬을 돌아나오며 20년 전 당신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반(伴)을 의미합니다. 동반(同伴)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남아공은 반(半)과 반(伴)의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되었던 땅이요, 지금도 그 경계에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만델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며칠 혹은 몇 주의 시간으로 보면 비관적이지만, 몇 십년을 내다보면 낙관적일 수 있다."

만델라의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는 27년이라는 투옥생활의 분노를 지혜로 바꾸고, 도저히 타협과 화해의 길이 없을 듯이 보였던 흑백 갈등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었던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남아공 뿐만 아니라 경계에 선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진정한 의미의 '희망봉'은 바로 이러한 긴 호흡의 긍정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로벤섬에서 거친 파도 너머로 보이는 케이프타운과 테이블 마운틴은 역시나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케이프타운을 다시 찾게 된다면, 멀리서 뿐만 아니라 거리의 구석구석에서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돌아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로벤섬에서 바다 너머로 바라보는 테이블 마운틴과 케이프타운 시내
 로벤섬에서 바다 너머로 바라보는 테이블 마운틴과 케이프타운 시내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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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현재 세계일주 인문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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