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과거 한국 영화계에서 존재하던 징크스가 있었다. 소재가 일제강점기와 관련이 된 영화는 흥행 성적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사실 고증을 중요하게 하면,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감소한다. 일제 강점기는 한민족의 비극이자 치욕스러운 역사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문제는 있다. 사실 고증보단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우선시하게 되면,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2010년 이후로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도 흥행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2015년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이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후 <동주>(2015), <밀정>(2016), <박열><2017) 등 적지 않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했다.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귀향>(2015) 또한 3백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일제 강점기 징크스는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군함도>가 많은 논란을 낳으며, 흥행 성적에도 차질이 생겼다. 결국 손익분기점이었던 800만 명에 못 미친 650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군함도 강제 징용자들의 비극을 온전히 느끼고 싶던 관객들은 <군함도>의 연출에 불만족스러워했다. 과한 '국뽕'요소가 흠이었다. 물론 <군함도>의 접근방식이 절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추석을 앞두고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다.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에 선정되어 4년의 개발과정을 거쳐 지금의 영화가 됐다. 현재 <아이 캔 스피크>는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사진. ⓒ 리틀빅픽쳐스


<아이 캔 스피크>는 명진구라는 가상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주인공 민재(이제훈 분)는 명진구청에 전근 온 9급 공무원이다. 그리고 민재는 첫날부터 끝판왕을 만나게 된다. 끝판왕의 존재는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총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신청하는 나옥순(나문희 분) 할머니. 시장 재개발 관련 민원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 그러던 중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수업을 부탁하게 되고, 옥분의 간곡한 부탁 끝에 민재는 옥분의 영어 선생님이 된다. 수업을 진행할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 그리고 가족이 되어간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영화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한다. 전반부가 시장 재개발, 민원 관련 내용을 코믹하게 풀어냈다면, 후반부부터는 조금은 무겁게 진행된다. 왜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 했는지에 대한 것들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옥분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에서 열리는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아이 캔 스피크>의 스토리 전개방식은 김현석 감독의 전 작품이었던 <스카우트>(2007)와 많이 닮아있다. <스카우트>가 선동열을 대학야구부로 데려오기 위해 광주에서 생긴 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보여준 것처럼 <아이 캔 스피크>는 2007년의 있을 법한 일상모습 속에서 나옥분이란 인물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말이다.

하지만 연출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첫 번째, 전반부와 후반부의 스토리 진행이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던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스토리 진행에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두 번째, 재개발 관련 갈등.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무사안일 면피성 태도는 전반부에 매우 상세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위안부라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 앞에 존재했던 문제는 모두 봉합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부분이 미묘하게 용산 참사와 오버랩이 돼서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아쉬운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강점이 더 많은 영화다. 연출적으로 아쉬운 점을 상쇄시키는 배우들의 열연은 <아이 캔 스피크>의 가장 큰 강점이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물 흐르는 듯한 연기가 바탕이 되고, 특히 나문희의 연기는 영화에 방점을 찍는다. 또한, 지나친 신파를 지양함으로 더욱 진정성 있는 메시지 전달이 가능해졌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최초 증언이 있고 난 뒤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이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와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적지 않은 지역에서 소녀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욱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직 생존하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총 35명. 그분들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진정어린 사과를 받기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 속 옥분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잊어버리면 내가 지는 거니까."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메인 포스터.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메인 포스터. ⓒ 리틀빅피쳐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Critics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위안부 소녀상 이용수 할머니 아이 엠 스피크 나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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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글쓰기 동아리 Critics를 운영하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있습니다. 춘천 지역 일간지 춘천사람들과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차후 참 언론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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