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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를 두고 각기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 유시민과 박형준이 tv프로그램 <썰전>에서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 한반도 내 '전쟁절대불가론'과 '전쟁준비론'을 핵심으로 하는 두 사람의 주장은 이렇다.

먼저 유시민 작가는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대한민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무슨 권리로 우리 국민의 생사가 달려 있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으로 폭주하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이를 중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는 오직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박형준 교수는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내 전쟁의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 지금의 상황에서 긴밀한 한미관계를 통해 북한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것만이 해결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강한 힘을 통해 북한의 의도를 꺾어놓는 수밖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말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동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온 우리도 서로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데 하물며 국가간에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결국은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모두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토론에서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극한대립이 보였다.

남한산성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남산산성>은 작가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636년 인조 14년, 국호를 청으로 바꾼 여진이 쳐들어오자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여진은 명과 군신 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에 자신들의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한다. 그들이 조선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러한 요구의 연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앞선 두 차례의 왜란으로 유린된 조선의 조정은 이제 다시 명과 후금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미국과 중국을 연상케 하는 전통의 우방 명과 신흥강국 후금과의 사이에서 조선은 외교적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광해군은 이른바 '중립외교'정책으로 난국을 돌파하려 한다. 명과 청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양측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외교정책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친명배금(親明拜金)'을 주장하던 세력에 의해 폐위되고 결국 조선은 또다시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 <남한산성>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던 주화파(主和派)의 수장 이조판서 최명길과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척화파(斥和派)의 수장 김상헌의 치열한 대립을 핵심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또다시 딜레마에 빠진 한국외교, 그 해결책을 역사에서 배워야

역사에는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만일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이 성공했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신흥강국 청과의 대립 자체는 불가피했겠지만, 그러나 그토록 쉽게 그들이 쳐들어올 명분을 제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화친의 관계로 갔을지언정, 굳이 두 차례에 걸친 호란(胡亂)으로 인해 또 다시 백성을 그토록 힘겹게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조선 조정의 외교적 실패와 그로 인한 전쟁은 백성들의 극심한 고통으로 이어졌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세력의 확장을 노리는 주변 4강, 그중에서도 이른바 G2로 떠오른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핵심적인 배경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16세기 이후으 조선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전통의 우방이자 초강대국 미국과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사이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사드배치와 관련해서 수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지만, 이 사안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는가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당연히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1세기는 우리 인류의 지난 수천 년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세계 각국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세 대결을 벌이겠지만, 이제는 지난 20세기 초와 같은 전면전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치명적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인류에게 이제 전면전은 곧 공멸을 의미한다. 그러니 미국은 군사적인 옵션을 핵심으로 그리고 중국은 경제적인 관계를 무기로 끊임없이 우리의 선택을 종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결국 광해군의 중립외교에서 그 지혜를 배워야 한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우리의 실익을 추구하는, 한마디로 영리한 외교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각성이다. 기득권에 눈이 어두워서 세력다툼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이 마치 조선 후기의 조정처럼 그저 대립하고 분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굴욕의 역사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썰전>에서 박형준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전쟁의 사례를 들며 미국의 북한 공습에 이은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말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굳이 전쟁을 불사하며 한반도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는 무엇인가?

이라크 침공은 중동의 원유에 대한 이권이 핵심이었다. 북한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 무기시장의 유지 그리고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중국과의 세력대결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것에 있다. 김정은 정권의 괴멸이 핵심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 4강으로의 전면적 분쟁 확산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박형준 교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전쟁가능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SNS를 통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거론하며 현 정부의 적폐청산작업을 비판한 MB의 글에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국민은 냉정하고 현명하다. 그들이 '양치기소년'이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남한산성,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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