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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도쪽 해상에서 바라본 왜목 왜메기라고 부르던 잘록한 지형(출처 '왜목을 아시나요?' 2013년발행)
▲ 국화도쪽 해상에서 바라본 왜목 왜메기라고 부르던 잘록한 지형(출처 '왜목을 아시나요?' 2013년발행)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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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목마을 상징조형물 1차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업체의 작품 모티브인 '왜가리'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왜목과 왜가리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왜목 상징 조형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항만수산과에서는 왜목에 왜가리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1차 협상대상자 변경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당진시는 왜목 상징 조형물 설치의 1차 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지난 9월 14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시 당진시는 "우선협상대상작품으로 선정된 '새빛왜목'은 창공을 향해 비상을 꿈꾸는 왜가리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왜가리의 목처럼 길게 뻗었다하여 유래된 왜목마을의 지형특성과 마을의 정서가 잘 묻어난 작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당진시, 왜목마을 상징조형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하지만 왜목의 지명 유래에 대해 알고 있는 향토사학자들은 왜목과 왜가리를 연결해 상징조형물까지 설치하는 것에 대해 우려 하고 있다.

왜목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2000년대 왜목해수욕장 조성 사업을 추진한 바 있는 조선형 씨는 "밀레니엄 행사 당시 왜목과 왜가리를 연계한 잘못된 기사가 중앙일간지에 나가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이후 당진시(당시 당진군) 공식 자료에도 동일한 잘못을 저질러 정정요구를 한 바 있다. 내가 직접 작성한 왜목마을 명칭에 대한 연구를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역과 상관없는 엉뚱한 왜가리를 본뜬 상징물이 왜목마을에 세워진다면 후대 역사에 엄청난 혼란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사태다"라고 분개했다.

조선형 씨는 '왜목'이라는 이름을 처음 작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씨는 "80년에 어선 출·입항 신고소를 왜메기(현재 왜목마을의 주민들이 부른 옛 이름)에 설치했다. 그 때 내가 세련되게 '왜목'으로 하자고 제안해 만장일치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11년 후인 1991년 태안 해양경찰서 경찰관 1명이 배치되고 진골(현재 왜목마을의 일부)로 자리를 옮길 때 '왜목선박출입항통제소'라는 현판을 걸면서 '왜목'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됐다"고 말했다.

조선형 씨는 왜메기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도 세 가지 설을 소개했다. △외길목의 외목설 △'왜터지다'(바닷가 논둑이 홍수시기에 한꺼번에 터져나가는 현상)의 왜목 △와목(臥木, 한양조씨 족보 기재)의 이두 표기설 등이 그 세 가지다.

1990년도에 발행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왜목'이 아닌 '외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 1990년도에 발행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왜목'이 아닌 '외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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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형 씨는 이중 와목을 가장 유력한 설로 주장했다. '왜목' 중 앞 글자 왜는 臥(누울 와)가 사투리 발음으로 변형되었고 '목'은 훈차가 아닌 음차를 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왜목 앞에 국화도가 있다. 중국과 교역을 했던 무역선이나 세곡선의 피항지 역할을 국화도가 했다. 국화도에 머물던 선원들이 왜목을 바라볼 때 임신한 여성이 누워있는 듯한 형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석문산이 얼굴, 왜목마을의 위치가 사람의 목처럼 보일 수 있는 지형이다"라고 말했다.

당진과 내포지역의 지명연구를 하면서 '당진신문'에도 당진지역 지명과 관련한 연재를 기고하는 신한대 김추윤 도서관장은 "왜가리는 왜목마을과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김 관장은 "왜목은 원래 '외목'이다. 지금은 간척 사업으로 주변 바다가 모두 메워졌지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면 당진시나 석문면에서 바라볼 때 반도형으로 길게 나와 있는 형태였다. 이는 '좁다란 (길)목'이란 의미의 '외목' 어원의 유력한 증거다"라고 말했다.

석문중학교의 교장이면서 석문향토사학자인 신양웅 선생은 "간척이 되기 전 그 지역 모양이 외다리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외목'이라고 불렸다. 국토지리원의 옛 지도에도 '외목'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라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즉 김추윤 선생의 외길목 설을 가장 유력한 설로 보는 것이다.

실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한 1990년에도 지도에는 '왜목'이 아닌 '외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세 연구자의 증언이 구체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를 보더라도 왜목은 왜가리와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참여업체가 제작한 모형.
 참여업체가 제작한 모형.
ⓒ 당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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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문면지, 당진시의 공식자료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자료에는 왜가리와 관련된 설이 게재되어 있다. 특히 석문면지는 1991년과 2015년 발행본 모두 왜가리 유래를 일부 학설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당진시 항만수산과 담당팀장은 "왜가리가 왜목마을의 어원 중 하나라는 것은 당진시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고 석문면지에도 나와 있다. 그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991년과 2015년 석문면지 제작에 관여한 이가 바로 앞 서 왜가리 유래설을 부인한 신양웅 선생이다. 면지에 석문 지명 유래 부분을 직접 작성한 신양웅 선생은 "주민들 사이에서 왜가리 유래설이 있다는 것을 적은 것 뿐이다"라고 말하며 왜가리 유래설을 일축했다.

당진시 항만수산과가 주요 반박 근거로 내 놓은 '석문면지 기재'에 대해 정작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은 왜가리설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만수산과는 "여러 지명 어원 중 하나일 뿐이라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원안대로 진행할 뜻을 보였다.

왜목의 상징 조형물 설치 사업을 진행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왜가리 논란이 일어나면서 사업 진행이 더 늦춰져 사업자체가 무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왜가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1차 협상 대상자일 뿐이다. 더욱이 아직 협상위원조차 꾸려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시간적 여유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당진시가 과연 이번 논란을 이전처럼 힘으로 밀어 부칠지 혹은 현명하게 풀어 갈 수 있을지 당진시의 해법이 주목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당진신문에도 관련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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