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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응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사실을 전한 동시에 중국에 대한 개인 명의의 비난 글을 보도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것도 사상 최초이지만, 북한이 공식매체를 통해 중국을 비난한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다. 북은 22일 하루 동안, 미국에 대해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성명을 발표해 비난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선 공식 매체상의 개인 명의를 통해 비난한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한 개인필명의 글 <창피를 모르는 언론의 방자한 처사>에선, 최근 중국의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인민망>, <환구망> 등의 언론에서 북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단결을 운운하며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에 대해 중국이 "조선(북한)의 정상적인 인민생활을 겨냥하지 않았다", "중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것은 조선의 행운"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해 "이것은 조선반도(한반도) 핵문제의 본질과 조선의 핵보유로 하여 변화된 현 국제정치현실을 제대로 볼 줄도 들을 줄도 표현할 줄도 모르는 눈뜬 소경, 멀쩡한 롱아의 행태"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한편, "객관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고 내정간섭을 공공연히 일삼는 중국 언론의 경솔한 행위는 미국에 추종하여 조중(북중) 두 나라, 두 인민들 사이에 쐐기를 치는 행위"라 규정했다.

해당 글은 미국과의 대결이라는 정세를 근거로 북한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일개 보도매체로서 다른 주권국가의 노선을 공공연히 시비하며 푼수 없이 노는 것을 보면 지난 시기 독선과 편협으로 해서 자국인민들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지간히 잃은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계속 끌려 다녀야만 하는 저들의 궁색한 처지에 대한 변명이라 할지라도 우리 국가, 우리 인민의 존엄을 감히 건드린데 대해서는 스쳐 보낼 수 없다"라고 중국의 태도를 비난했다. 북이 중국을 이토록 강한 어조로 비난한 것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와 1990년대 초 북중 관계가 악화된 시기를 제외하면, 이례적 일이다.

또 해당 글은 지난 4월 미중정상회담 와중 진행된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공격 사실과 함께 현재 북중 국경에서 유엔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과 거래했던 중국인 기업가들이 도산한 사실을 들며 중국의 북핵문제 및 미국에 대한 태도를 거듭 비난했다.

이와 함께 해당 글은 1960년대 중국의 핵개발을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북한이 지지한 사실과 함께 1970년대 미중수교 역시 북한이 지지한 사실을 상기하며, 북한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중국의 "좋은 이웃"이었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중국이 그 누구에게로 갈 때 납작 엎드리고 갔다고 해서 조선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그걸 배우라고 강요할 필요는 더욱 없다"라며 북한식 독자 노선을 강조했다. 이어 중국을 두고 "덩치는 커도 넋이 없고 금전만 쫓는 이웃"이라며 "추연한 생각을 금치 못하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또 해당 글은 북한을 중국의 완충지대로 간주하는 중국 측의 인식에 대해서도 "조선을 한갓 강도의 침입을 막는 앞마당, 완충지로나 간주하고 옆집에 강도가 들어도 내 밥그릇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정치적 식객들의 사고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고 일갈했다.

또 해당 글은 다음 달 18일에 열리는 중국의 19차 당 대회를 염두에 둔 듯 "역사가 오래다고 하는 사회주의나라 당 기관지가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사회주의조선을 그처럼 악의에 차서 비난하는 것을 보면 혹시 조중 두 나라 인민을 배신한 이런 너절한 매문실적이라도 있어야 이제 있게 될 당대회장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간다"라고 밝혔다. 이로 볼 때 해당 글은 당 대회를 앞두고 있는 중국을 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명 발표 사실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북이 22일 하루 동안 이례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미국과 중국을 향해 동시에 메시지를 내놓은 점에 주목해야 북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그:#북한, #중국, #미국, #핵문제, #대북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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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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