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갑니다. 대체복무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대체복무제도가 필요한지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평화운동 단체 Union Pacifiste의 활동가이자 그 자신도 병역거부를 했던 모리스와 대화중인 이예다
 평화운동 단체 Union Pacifiste의 활동가이자 그 자신도 병역거부를 했던 모리스와 대화중인 이예다
ⓒ 전쟁없는 세상

관련사진보기


2012년 7월 병역거부를 선택한 나는 수감생활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고, 2013년 5월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이곳 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다.

프랑스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아 생기는 차별과 수감을 포함한 여러 박해 때문이었다. 난민 인정 후의 이야기는 언론 등을 통해 말할 기회가 꽤 있었으니 이번엔 난민 신청 전의 고민부터 신청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자라다 보면 주변 사람들, 미디어,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군대에 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친척, 가족들에게 "예다도 크면 군대 가야할 텐데", "슬퍼서 어떻게 군대 보내나" 같은 말들을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군대에 왜 가야해요?'라고 물었는데,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한다는명쾌하지 못한 답들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가 10살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십 대 때만 해도 이 주제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군대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이해가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근데 스무살쯤, 징집될 나이가 되면 어찌된 게 모두들 뭘 위해 군대에 가는 건지 고민도 없이, 어째서 자신들이 강제 징집 당하는지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위한 학업이나 일을 멈추거나 아니면 군입대를 염두에 두고 아예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모두 당연하게 입대하기 시작했다.

아마 고민할 기회나 시간도 없는 데다가 모두 그렇게 하니까, 한국에서는 당연한 거니까, 군대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강압적으로 주어진 의무에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내가 징집될 시기가 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병역거부의 개념을 접하기 전에도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고 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를 이해하는 한 친구로부터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받았고 그 책을 통해 병역거부의 개념과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병역거부 후 감옥에 갈 것인가, 난민신청을 할 것인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표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표지
ⓒ 철수와 영희

관련사진보기


책에는 사람을 죽이는 집단에 참여할 수 없어 감옥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과한 살생에 반대하고 그것을 내 삶에서 실천 중인데, 의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총을 들게 하는 것이 폭력적이라고 여겨졌다.

병역거부의 개념을 알고 한국 군대와 병역거부의 역사를 알고 나니,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겨졌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병역거부자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기울이면 그들과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고 상처를 받는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누가 감옥에 가는 것을,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을 감옥에 가게끔 두는 것을 달가워하겠는가.

나와 내 가족들도 나의 병역거부 결정을 시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피해자다. 엄마는 '왜 너여야 하냐'고 울기도 하셨다. 나나 엄마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병역을 거부하며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있는 힘껏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진보 주간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 아마미야 카린 씨가 주축이 되어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이 이예다 씨를 일본에 초청했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가 없어지고 군대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국의 병역거부에 관심이 많다.
 일본의 진보 주간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 아마미야 카린 씨가 주축이 되어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이 이예다 씨를 일본에 초청했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가 없어지고 군대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국의 병역거부에 관심이 많다.
ⓒ 안악희

관련사진보기


당시에 고민을 하던 것이 있다면 '군대 갈 것이냐 병역거부할 것이냐'가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갈 것이냐, 난민 신청을 할 것이냐'였다.

한국 정부에 대한 2017년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의 권고

1. 위원회는 군복무에 대한 민간 대체복무가 부재한 상황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지속적으로 형사 처벌을  받는 것에 우려한다. 또한 위원회는 병역거부자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될 수 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이 사실에 주목한다. (제18조)
2. 대한민국 정부는:
(a)병역을 면제받을 권리를 행사한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병역거부자  전부를 즉시 석방할 것
(b)병역거부자들의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적절한 배상을 제공하며, 이들의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
(c)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되도록 하며 병역거부자에게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할 것

병역거부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가 UN회원국에 적용되는 인권기준, 국제인권기준 등에 병역거부권이 기본인권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김경환씨가 병역거부 및 성소수자 억압을 사유로 캐나다에서 난민 인정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고,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을 사유로 충분히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나 자신이 난민으로 인정받고 그 사실을 한국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면 군의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병역거부하면 감옥 간다고? 노쓰코리아에서 오셨어요?

2015년 독일에서 열린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 참석 중인 이예다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예다 씨는 망명 이후에도 한국의 병역거부에 대한 발언과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5년 독일에서 열린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 참석 중인 이예다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예다 씨는 망명 이후에도 한국의 병역거부에 대한 발언과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 이예다

관련사진보기


병역거부권을 사유로 난민 인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나라에 가든 언어, 친구, 체류증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한국 사람 중에 병역거부 사유만으로 난민으로 인정된 케이스가 없어서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었고 인정이 된다고 해도 인정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난 금방 이민자가 되었지만 이 곳에서 집도, 서류도, 노동권도 없이 지내는 시간이 어쩌면 더 길었을 수도 있었다.

난민 신청을 하는 동안에도 떠나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무서웠지만,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후 이 문제를 언론에 알린다면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날을 앞당기는 것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난민 신청을 하면서 나의 결정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한국에 강제적인 병역의무가 존재하고 이것을 거부하면 감옥을 간다는 얘기를 해주면 프랑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거기는 인권이 지켜지는 민주주의 국가 아니었냐며. 심지어는 북한에서 온 거 아니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난민 인정 이후, 병역거부권에 관련한 여러 이벤트에 참여하며 독일, 스위스, 일본에서 여러 나라의 병역거부자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5천만 인구가 있는 한국안에서는 병역거부가 죄로 취급되지만 한반도 밖 70억 인구 대다수는 병역거부가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이쯤되면 '병역의무'라면서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게 우물안 개구리로 생각될 때도 있다.

다들 생각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다른 병역거부자들도 병역거부로 수감되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길 바라면서 수감생활을 결심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국방의 의무만을 되풀이하는 동안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고통을 받는 사람,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 그리고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의무라는 이름으로 병역을 강요하지 말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

관련 기사
차라리 감옥에 갔어야 했습니다
'훈련소로 입대하라', 전 법정에 서는 걸 택했습니다


태그:#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이예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예다, 프랑스 거주.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신청을 해 이민자로 거주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