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군복만 봐도... 윤일병 엄마는 '그날'로 돌아간다
ⓒ 안정호

관련영상보기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쩡하다고 해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유공자 혹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 엄마는 직접 아들의 사체검안서를 들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사실 엄마는 보상금을 주겠다는 종이 쪼가리보다 훨씬 더 절실한 게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 투명한 정보공개, 진심어린 사과, 따뜻한 위로,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일상이 그들의 가슴에 콕콕 트라우마를 새겼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고 윤승주 일병이 봉안돼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을 방문한 뒤, 자리를 떠나는 엄마와 큰 누나.
 고 윤승주 일병이 봉안돼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을 방문한 뒤, 자리를 떠나는 엄마와 큰 누나.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1270일 전, 아들이 군대에서 죽었다. 엄마에겐 아들과 관련된 모든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014년 3월 어느 날, 생전의 아들은 군대에서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GP(Guard Post, 휴전선 감시초소)로 가고 싶어."

엄마는 되물었다.

"GP면 다들 안 가려고 하는 곳인데, 거길 왜 간다는 거야?"

아들은 다시 말했다.

"거기가 더 편할 것 같아."

엄마는 지금도 생각한다. '아들이 그렇게까지 신호를 보냈는데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구나...'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되뇐다. '나는 나를 용서하면 안 된다'고. '나는 더 힘들어야 한다'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얼마 후 이런 일도 있었다. 전화 온 아들의 목소리가 고무돼 있었다. 아들은 2014년 3월 28일 부대 체육 행사가 잡혔다며 그날 면회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아들의 목소리는 바뀌어 있었다. 낙심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아직 쫄병이라 면회가 어려울 거 같아."

엄마는 다음 주말인 4월 5일 면회를 약속하며 아들을 달랬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묻자 아들은 "이 세상에 있는 건 다 먹고 싶어"고 답했다. 엄마는 면회 전날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비롯해 이런저런 음식들로 차 트렁크를 가득 채워 놨다.

그런데 면회 전날 전화하겠다던 아들이 깜깜 무소식이었다. 엄마는 오후 2시께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중대장이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중대장은 곧장 아들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아들은 또 면회가 어렵다고 말했다. 훈련이 잡혀서 산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아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아들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한껏 낮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들 "엄마, 왜 그 번호로 전화했어?"
엄마 "왜? 그 번호로 전화하면 안 돼?"
아들 "그 번호는 정말 급할 때, 아주 비상일 때만 하는 거야."
엄마 "내일 면회 가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전화했지."
아들 "내일 면회 안 돼."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아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딸이 건낸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아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딸이 건낸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엄마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엄마는 이틀 후 병원에서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었고,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몸엔 생전 처음 보는 의료기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들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마에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의료기기를 다 달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2014년 4월 7일 오후 4시 20분께), 결국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면회를 할 수 없다는 아들의 말은 거짓이었다. 3월 28일, '쫄병'도 면회가 가능했다. 4월 5일, 산 속으로 간다는 훈련은 지어낸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위에서 시켜서 한 아들의 거짓말이었다.

"면회가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할 때, 아들의 몸은 이미 시퍼런 멍으로 가득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전투화 끈도 묶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뿐만 아니라 선임들이 먹을 갈비찜까지 잔뜩 준비했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있는 아들의 사진 앞에서, 엄마는 눈물을 쏟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커져요.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너무 편하게 생각했던 것, 군대를 너무 믿었던 것,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냥 넘긴 것…."

망설이던 엄마, 카메라 앞에 선 까닭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서울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있는 아들의 사진 앞에서자 눈물이 흘렀다.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서울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있는 아들의 사진 앞에서자 눈물이 흘렀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아들 고 윤승주 일병은 대학에서 '승주 엄마'로 불렸다. 남을 꼼꼼하게 잘 챙긴다고 해서 동기와 후배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간호학과에 입학한 아들은 2학년 때 과대표까지 맡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생활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왜 간호학과를 선택했는지 자주 물었다. 주사 맞는 것도 겁내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럴 때마다 "취업 잘 되잖아"라고 대강 둘러댔다. 아들이 죽은 후, 엄마는 아들의 성경책을 훑어보다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호스피스가 돼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싶다."

아들은 이런 마음으로 간호학과에 진학했고, 입대 후 의무병이 됐다. 하지만 같은 의무병들은 아들에게 폭행, 성추행, 가혹행위를 가했고 결국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엄마는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만큼, 군대가 저지른 조작과 기만에도 큰 상처를 받았다. 군대는 조작이 드러날 때마다 계속 말을 바꿨다. 당시 육군 28사단 검찰부는 아들의 사망 원인을 기도 폐쇄에 의한 뇌 손상으로 발표했다. 때려서 죽인 게 아니라 목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의 혐의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를 적용했다. 엄마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군 검찰은 수사기록을 꽁꽁 숨겼다.

그러던 중 군인권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수사기록 일부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만남을 거절했다. 아들의 일이 공개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렇잖아요. 피해자가 공개되면 그들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또 언론에 알려지면 행여 재판이 잘못될까봐..."

엄마는 딸과 사위의 설득으로 결국 군인권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들의 수사기록을 처음 마주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엄마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수사기록에) 너무도 심각한... 밥을 굶기고... (아들이) 살려 달라고 했는데도 그렇게... 하아, 그렇게 살려 달라고 했는데 무참하게... 저도 완전히 무너졌어요. 지금도 그 시간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그게 2014년 7월 29일의 일이었다. 결국 엄마는 이틀 뒤인 7월 마지막 날, 카메라 앞에 섰다. 대한민국이 분노에 휩싸였다. 사건은 상급부대인 3군사령부 검찰부로 넘어갔다. 사망 원인도 지속적 폭행으로 인한 좌멸증후군(근육조직이 붕괴해 생긴 유독물질이 혈액으로 쏟아져 장기에 이상을 일으키는 현상) 및 속발성 쇼크(외상으로 인한 대량 출혈로 순환 혈액량이 감소해 쇼크를 일으키는 현상)로 바뀌었다. 가해자들의 혐의 역시 살인으로 바뀌었다.

군대의 조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28사단 폭행사망사건 희생자 윤 일병의 친 누나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일병과 같은 내무실을 사용했던 김 아무개 일병이 윤 일병과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28사단 폭행사망사건 희생자 윤 일병의 친 누나가 2014년 8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일병과 같은 내무실을 사용했던 김 아무개 일병이 윤 일병과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28사단 폭행사망사건 희생자 윤 일병의 친 누나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일병과 같은 내무실을 사용했던 김 아무개 일병이 윤 일병과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28사단 폭행사망사건 희생자 윤 일병의 친 누나가 2014년 8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일병과 같은 내무실을 사용했던 김 아무개 일병이 윤 일병과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참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엄마가 언론 앞에 나서기 전까지, 군대는 엄마를 수시로 기만했다. 수사기록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엄마에게 "우리가 윤 일병 가족 편인데 왜 변호사를 선임하느냐"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대대장이 엄마에게 보낸 문자는 더욱 충격이었다. 조작을 일삼았던 군대는 엄마에게 "나(자신)를 용서하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용서는 힐링입니다"라며 훈수를 뒀다.

"하루하루가 힘드시죠. 요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그래서 용서란 것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용서란 무슨 의미일까요? 그건 죄를 지은 상대를 용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쪽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용서했는데 화가 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타인과 나를 동시에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대만 생각하고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표면만 본거죠. 화는 대상이 아닌 내 안에서 나는 것인데 말이죠. 죄인의 죄를 사하고 타인을 용서함과 동시에 내 삶을 깊은 수렁에서 끌어올려 내 인생을 한없이 소모해버리지 않고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단 겁니다. 현실의 고난 극복과 뜻 깊은 삶의 복귀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는 나를 위로하고 안식을 주는 힐링입니다.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와 진정한 가치를 위해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힘든 삶에 작은 안식이 생기시길 기원합니다."(당시 윤 일병의 대대장이었던 임○○ 소령의 문자)

아들을 죽게 한 가해자들은 죗값을 치르고 있다. 주범은 살인죄가 적용돼 징역 40년, 다른 가해자들은 상해치사죄가 적용돼 징역 7년 또는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엄마를 기만하고, 사건을 조작한 군대에선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지금도 트라우마가 엄마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이유다. 엄마는 당시 수사 책임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엄마의 '군대 밖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군복 입은 사람만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요. TV에 군인이 나오면 바로 돌려버리고요. 그 모습만 보면 2014년 4월, 아들이 죽은 그 날로 돌아가요. 그때 아들이 받은 고통이 그대로 내 고통이 되죠.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 그게 부모로서 제일 힘들어요."

자신을 속이고, 또 속이는 엄마


 고 윤승주 일병이 봉안된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엄마는 까치발을 한 채 아들을 매만졌다.
 고 윤승주 일병이 봉안된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엄마는 까치발을 한 채 아들을 매만졌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다시는 아들을 만질 수 없게 되었다.
 고 윤승주 일병의 엄마는 다시는 아들을 만질 수 없게 되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승주는 아직 군대에 있어... 아니야, 승주는 지금 외국에 나가 있어...'

엄마는 이렇게 가끔 자신을 속인다. 그러다가 무심코 아들이 있는 서울국립현충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줌 가루가 돼 있는 아들을 보며, 비로소 죽음을 실감한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번 자신을 속인다.

"저의 쓰러져가는 모습을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우리 아들 욕 먹이는 것 같아서, '저 사람 윤 일병 엄마야'라는 손가락질이 두려워서요. 그래서 일부러 오버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딸들이 '엄마 이상해'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혼자 있게 되면 아들 사진을 보며 미치는 거죠."

엄마는 아들의 할아버지·할머니도 속여야 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에도, 엄마는 시부모에게 "승주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요"라고 말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내가 죽겠더라고요. 울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미치는 거죠. 그래서 (시부모님께 아들의 죽음을) 겨우 말씀드렸어요."

"굉장히 꼬장꼬장할 정도로" 건강했던 시부모는 이후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1년 만에 모두 고인이 됐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인 남편은 뉴스를 보다가 과격한 욕을 하며 자주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고혈압 약 신세를 지게 됐다.

엄마가 특히 걱정하는 사람은 두 딸이다. 엄마 대신 국방부·법원을 쫓아다니는 사위는 하던 일을 그만뒀고, 첫째 딸은 일을 무리하게 늘렸다가 공황장애를 경험했다. 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둘째 딸의 방에선 매일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보다 엄마가 보기에 두 딸이 너무 많이 변했다.

"제가 '밖에 나가서 절대 싸우면 안 된다', '매사 양보해라'라고 항상 가르쳤거든요. 딸들도 잘 따랐고요. 그런데 두 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첫째 딸은 옛날 모습이 아닌 너무 공격적인 모습... 둘째 딸은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남자를 혐오해요. 남자들이 다 (동생을 죽인) 가해자들로 보이는 거예요. 결혼 안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니 그게 힘들더라고요."

엄마는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윤 일병 엄마예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과는 대개 사이가 멀어져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이방인 느낌이 들죠. 근데 (같은 처지의) 엄마들끼리 있으면 서로 울어줄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잖아요. 군 피해자를 위한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하고요. 그래야 엄마들의 상처가 조금은 옅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의 군대 밖 전쟁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기획 <군대·죽음·상처 트라우마센터 만들자>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자발적 구독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휴대폰 010-3270-3828로 전화주세요. 우리 사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오마이뉴스가 되겠습니다.


won좋은기사 후원하고 응원글 남겨주세요!응원글 보기arrow

220,000원 후원중좋은기사 원고료주기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