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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어느 여인숙 내부 복도의 모습이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이 이른바 쪽방이다.
▲ 동대구역 근처 쪽방 내부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어느 여인숙 내부 복도의 모습이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이 이른바 쪽방이다.
ⓒ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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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9일은 촛불항쟁 1주년에 해당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촛불항쟁을 내 삶을 바꾸는 변화, 즉 '혁명'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적폐청산'으로 표현되는, '혁명과업'을 진행 하고 있는 시기라 볼 수 있다. 다만 혁명 일반이 지닌 '억압성'을 제거하고, 그것을 기존의 법과 제도에 의거해 진행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지난 겨울 촛불항쟁의 1차적 의의를 평가한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적폐정권' 9년 동안 권력자와 보수 기득권 네트워크의 사사로운 탐욕에 의해 붕괴됐던 국가시스템의 회복 기회를 마련한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사욕·부패·범죄는 민주주의와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이는 일반대중의 삶과 일상을 위협하였다.

기실 2008년 이후 한국의 역사는 항상 가해자가 승리한 불의의 시대였고, 강자의 시대였고, 죽음의 시대였고, 타락의 시대였다. 거짓과 공작의 시대였고, 궤변의 시대였고, 억압·무능의 시대였다. 한마디로 '부끄러움의 시대'였다.

단순 수치만 비교해 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해당 시기 부패지수, 언론자유 지수를 보라! 또 용산, 밀양, 강정, 쌍용차, 세월호, 메르스는 표면에 드러난 것일 뿐, 송파 세 모녀처럼 드러나지 않은 희생자 역시 더 많을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항쟁의 물음이 향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처럼 촛불항쟁과 정권교체의 일차적 의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라는 '내 삶의 위협요소'를 시민들이 스스로 제거한 데 있다. 이는 현재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촛불의 열망은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촛불의 열망은 단순히 정권교체와 국가시스템 재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많은 촛불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정권의 불의함과 더불어 지금 우리의 삶을 옥죄는 구조와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과 회의를 다들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을 상회하는 아르바이트·인턴·계약직·일용직 노동자들은 종일 고강도의 노동을 해도 법정 최저시급 기준 한 달 140만 원선의 급여가 고작이다. 또 청년층이 대다수인 1인 가구의 경우 자신의소득수준에서 매달 20∼30%에 달하는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한편,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800조원을 넘는 시대에 도시 한 켠 쪽방에 사는 노인들은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고 목욕·세탁·식사 등의 기본적 생활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환경 속에서 굶주림과 무더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한편, 도시의 또 다른 한 켠에는 호화판 고대광실을 연상케하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있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쪽방, 이 양자 간의 거리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흔히 "양극화" 운운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양극화'라는 언어로는 더 이상 포괄할 수 없을 정도다. 차라리 '부(富)'와 '빈(貧)'의 '별개의 세계'가 같은 한국사회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이런 정도의 불평등 사회가 하층민의 봉기 없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역사상 중세 이래 한반도의 인구는 완만하게나마 꾸준히 증가해왔다. 농업생산력이 증대해왔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경우 민본주의에 입각해 국가 차원의 재분배 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지금, 우리는 도리어 인구절벽과 인구축소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이겠는가? 한때 청년층의 처지를 보여주는 신조어로 크게 회자되었던 "헬조선"의 다른 말은, '한국사회 탈출을 향한 욕망'일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회'인 것이다. 광장으로 집결한 사람들은 이런 '지속 불가능한 현실'이 대체 왜 지속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현 단계 한국 사회경제체제는 박정희식의 '사회안전망 없는 성장지상주의와 재벌독점체제'에 세계사적 신자유주의, 즉 사회 구성 원리를 '시장'과 '경영'으로 획일화하는 '시장만능주의'가 결합된 형태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기업·노동자 계층에게만 적용되는 '불평등성'을 특징으로 하는 바, 그런 점에서 해외의 그것과 비교할 때 훨씬 악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선 당일, 광화문광장 건너편에서 단식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노동자의 현실이다."

생산수단과 자본의 재분배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자

그런 점에서 지금 '적폐청산'과 함께 중요한 과제는, 생산수단과 자본의 재분배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그의 뇌물죄 단죄도 중요하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전략과 산업재해 및 직업병 문제 은폐, 언론 장악, 간접고용 및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 (2017년 8월 25일 반올림 기자회견문 참조) 단죄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결국 자본의 재분배 시스템을 전환하려면, 재벌자본과 결탁한 언론을 바로잡고 재벌 대기업의 간접고용 관행을 근절하며 노동자의 건강권과 쟁의권을 보장하는 제도 정비야말로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새로운 대안 패러다임의 길을 논의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흔히 박근혜의 구속을 두고 박정희 시대의 종말을 운위하지만, 이는 기존의 관성과 낡은 패러다임을 대체하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한마디로, 촛불의 열망을 사회경제적으로 제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대안체제를 향한 패러다임의 재설정'이 필수적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각자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사회를 향해 '불온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지난 9년간 우리 사회에서 '불온하다고 여겨져 온 것'들에 대해 각자 물음을 던지고, '불온한 상상'을 통해 거대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존의 '낡은 보혁구도'의 틀에서 벗어나 지난 70년 동안 한국사회를 내리 짓눌러온 '냉전'과 '식민'의 문제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며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 나아가 '대안사회의 모색'으로 사유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묻자. 과연 경쟁체제는 필요한가? 진정 자본주의만이 살길인가? 경제성장이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가? 모두가 인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대안사회를 구상해야 할 것인가? 언제까지 발전, 성장을 위해 우리의 행복을 희생시킬 것인가? 과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도발적이고 불온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1960년 5월, 4월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과도정부 수반을 맡은 허정이 "혁명적 개혁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단행"하겠다고 선언하자 시인 김수영은 결연히 외쳤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한다"고. 과거의 쓰라린 경험은 역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뇌리 속 깊이 박혀있는 기성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과 논리를 씻어내자. 그리하여 긴 안목을 갖춘 뒤, 저마다의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 자율과 연대·공공부조와 공유의 원리로 구성된 '자율적 생활세계'와 같은 대안사회를 구상해보자.

아울러 적폐청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의, 양심, 공동선, 약자, 피해자가 승리하는 장면을 함께 바라보며, '나'와 '너'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고,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나가자. 지난 9년 동안 불온하게 여겨져 온 것들이 전혀 불온하지 않게 여겨질 때까지 말이다.


태그:#적폐청산, #촛불항쟁, #혁명, #김수영, #대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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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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