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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새 기숙사 건물
ⓒ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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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학교 기숙사에 두고 온지 이제 2주가 지났다.

아이가 기숙사로 떠나기 며칠 전 나보다 먼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가 SNS로 "마음에 구멍이 크게 날거야 "라며 우려를 보였을 때 나의 대답은 무미건조하고 간단했다. "무슨 구멍까지야..."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학교에 자기 미래를 설계하러 가는 건데, 그리고 거기엔 좋은 친구들과 교수님들과 멋진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는데 뭐...조금 서운하긴 해도 '이별'이나 '헤어짐' 이런 단어들을 쓰기에 걸 맞는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처음 접해본 캐나다 대학교 기숙사 입실 풍경

아침8시부터 기숙사 입실이 시작되니 이왕이면 일찍 도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새벽부터 서둘렀다. 8시 조금 넘어 도착한 학교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도착한 차들이 기숙사 건물을 둘러싸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신분증을 목에 건 선배들이 차를 안내하며 신입생 가족들을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기숙사 입구에 도착하자 선배들 4~5명이 우리 차로 다가와 차에 실린 짐들을 모두 끌어 내리고 바로 배정된 방으로 옮겨 주었다. 대부분 전공별로 같은 색깔의 티셔츠를 맞춰 입고 활기차면서도 친절하게 돕는 모습은 처음 학교에 들어와 어리둥절해 있는 신입생과 부모들에게 잠시나마 안도와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매년 9월초가 되면 캐나다 대학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따듯하고 인간미 넘치는 광경이다.

짐을 풀어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서 바로 옆방을 배정받은 같은 학교 출신의 아들 친구 가족과 함께 '이별의 점심'을 먹었다. 우리 부부도 그렇고 친구 부모도 내심 어떻게 헤어지나 하는 걱정에 입맛이 덜한듯했다. 아이들도  '오늘부터는 집에서 떠나 혼자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문득문득 느껴지는지 엄마 아빠를 간간히 쳐다 보거나 잠시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그것도 잠시, 후각을 자극하는 음식의 향에 금방 신이 난 표정의 아이들은 몇 차례씩 접시를 비우며 뷔페식 점심을 맘껏 즐기기에 바빴다.

기숙사 식당 기숙사 식당
 기숙사 식당
ⓒ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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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을 스치는 잔설의 한기와 함께 무언가 미래에 대한 결기를 다지곤 하던 한국과 같은 '3월의 입학식'은 캐나다에는 없다. 체육관에서 열리는 오리엔테이션이 그나마 공식행사라면 행사인데, 학교생활과 관련된 실용적인 설명회에 가까워서 한국에서와 같이 일장훈시와 함께하는 비장한 '출정식'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오리엔테이션에 가야 한다며 헤어지기 전 엄마와 나를 번갈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이던 아들 녀석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음을 보여주려는 듯 표정을 관리하는 빛이 역력했다. 나도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 다른 생각을 하며 대범한(?) 아빠의 미소를 아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모든 일은 내가 생각한대로 큰 탈없이 진행되었고,  나는 '구멍 나지 않은 '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갑자기 넓어진 집안,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런데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무엇 때문인지 2층에 있는 아들 방으로 바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아들의 빈자리가 싸아하게 밀려와 내 마음 한가운데에 오롯이 둥지를 틀었다. 매트리스만 남은 침대, 아직은 겨울 옷들이 남아 있지만 듬성듬성 비어 있는 옷장, 지난 여름 한국여행 때 사와서 읽던 책들...문을 살며시 닫고 나오는데 작은 우리 집이 휑뎅그렁 넓어 보였다.

어찌 해볼 수 없는 그 황량함의 늪을 헤치며 뭔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가슴속 깊은 곳까지 밀려 들어왔다.

태어나서 함께한 18년여 세월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헤어져 그리워 하는 것은 단지 아들뿐만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린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과 이별한 거다. 돌아올 수 없는 아이의 어린 모습과, 그렇게 함께 사라져간 우리 삶의 일부와 헤어진 거다. 아이는 학기가 끝나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비단처럼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버린 시간을 함께 데려올 수는 없는 거니까.

아들의 흔적인 소리도 함께 사라져 버려

 아들
 아이의 텅빈 책상
ⓒ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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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영상통화에, 이메일에, SNS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닌 것 같다. 아이가 집에 있지 않음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아이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아이가 만들어 내던 '소리'의 상실이었다.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어릴 땐 아빠가 다른 사람과 조금 큰 소리로 언쟁하는 것만 보고도 눈물바람을 할만큼 천성이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가 없는 집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지하 서재와 2층 침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 양치질 소리, 기침하는 소리, 가끔씩 친구들과 게임하며 질러대던 괴성,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문이 열릴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장난스레 눌러대던 초인종...그 아이가 만들어 내던 소리가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사라진 그 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도.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의 피아노 소리였다. 피아노 치기를 즐겨 해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아빠 엄마에게 유명한 연주 동영상을 보여주며 설명까지 곁들이던 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이제 언제나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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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대회 우승 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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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소리가 사라진 우리 집은 거대한 침묵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나보다 더 상실감에 빠진 아내는 아이가 자기 없을 때 들으라고 다운받아 놓은 '쇼팽의 발라드1번'을 틀어놓고 말없이 듣고 있다. 아이가 그 곡을 연주해 받아온 조그만 피아노 컨테스트 우승 트로피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집안을 감싸면 비로소 그 음악의 연주자는 아들이 되고 아내는 그렇게나마 아들과 함께 있음을 느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아내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나는 조용히 서재로 내려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곤  토론토의 명물 CN타워가 올라가있던 데스크탑의 배경화면을 설악산에서 찍은 아들 녀석의 사진으로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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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9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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