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수로 최다이닝을 소화한 두산 허경민

수비수로 최다이닝을 소화한 두산 허경민 ⓒ 두산 베어스


두산이 원정 3연승 행진을 달리며 KIA와의 승차를 2.5경기로 줄였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는 1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홈런 3방을 포함해 12안타를 터트리며 8-3으로 승리했다. 4회 솔로 홈런을 터트린 오재일이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고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유희관은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까다로운 타자를 걸러 보내고 상대적으로 쉬운 타자를 선택하는 고의사구는 야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작전이다. 하지만 때로는 만만하다고 생각한 타자에게 의외의 한 방을 얻어맞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기도 한다. 19일 두산전에서 양의지를 거르고 허경민을 선택했다가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승기를 내준 롯데의 경우처럼 말이다.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가을사나이'

흔히 야구에서 한 선수가 일류가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근 3년의 활약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 1, 2년은 상대의 느슨한 견제와 기량발전 속도에 따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만 상대의 집중견제가 시작되고 발전속도가 정체되면 성적도 하락하게 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3년 연속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는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일류 선수로 구분해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산의 핫코너를 책임지는 허경민은 바로 그 '3년의 법칙'에 걸린 대표적인 선수다. 광주일고 시절 청소년 대표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던 허경민은 2009년 프로 입단 후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오지환(LG트윈스), 안치홍(KIA 타이거즈) 등 동기들이 프로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6년 동안 백업 신세를 면치 못했다. 허경민이 백업을 전전하던 사이 두산의 유격수 계보는 손시헌(NC 다이노스)에서 김재호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발전속도가 느린 유망주에 머물던 허경민은 2015년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과 이원석(삼성 라이온즈)의 입대로 공석이 된 주전 3루 자리를 차지했다. 정규리그 117경기에 출전한 허경민은 타율 .317 128안타 1홈런41타점64득점8도루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프로 7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것도 모자라 3할 타자에 등극한 것이다.

허경민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이 진짜였다. 허경민은 2015년 포스트시즌 14경기에 출전해 타율 .426 1홈런12타점12득점으로 대폭발했다. 특히 허경민이 그 해 포스트 시즌에서 기록한 23개의 안타는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다. 그럼에는 허경민은 시리즈MVP는커녕 데일리MVP도 한 번 받지 못했다(전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의형제 맺자고 찾아올 기세).

프로 입단 7년 만에 두산의 주전3루수에 등극한 허경민은 작년 시즌에도 뛰어난  활약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했다. 작년 시즌 두산 선수 중 유일하게 전 경기에 출전한 허경민은 타율 .286 154안타7홈런81타점96득점을 기록하며 1번타자 같은 8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353 5타점을 기록하며 '가을사나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두산 핫코너의 수비요정, 생애 첫 만루홈런으로 가을수확 준비

2015년 백업내야수로 시즌을 시작한 허경민의 연봉은 9800만 원이었다. 하지만 허경민은 지난 2년 동안의 놀라운 활약에 힘입어 3억 원에 올 시즌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2년 사이 연봉이 3배 이상 인상된 것이다. 게다가 2015년 프리미어12에 이어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 경험도 쌓았다. 이제 허경민은 명실상부 KBO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3년의 법칙'은 올 시즌 주전 3년 차를 맞는 허경민에게도 심술을 부렸다. 5월까지 2할대 후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평년 성적을 유지하던 허경민은 6월 타율 .182, 7월 .210으로 부진하며 시즌 타율이 .248까지 추락했다. 박건우와 오재일 등 초반 부진했던 선수들이 시즌을 거듭할수록 타격감을 회복한 것과는 달리 허경민은 오히려 더욱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타격 슬럼프가 장기화됐다.

하지만 허경민은 6월 중순 허리 통증으로 열흘 간 2군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시즌 내내 1군을 지키고 있다. 단순히 엔트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올 시즌 101경기에서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만큼 두산 라인업에서 김태형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내야수가 바로 허경민이라는 뜻이다. 타격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는 뛰어난 수비력 때문이다. 일부 두산팬들은 수비에서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는 허경민을 두고 '지명수비'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타격에서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던 허경민이 19일 롯데전에서는 모처럼 방망이로 두산의 승리를 이끌었다. 두산은 4-1로 앞선 5회 2사 2,3루의 득점 기회를 맞았고 롯데 베터리는 전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기록한 양의지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며 허경민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허경민은 이를 사직구장의 좌측 외야 관중석 중단을 때리는 대형 만루홈런으로 응징했다. 허경민의 생애 첫 그랜드슬램이었다.

허경민은 이날 멀티히트를 포함해 4타점을 쓸어 담으며 맹활약했지만 여전히 허경민의 시즌 타율은 .263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보면 2017년은 '부진한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허경민이 시즌이 끝나가는 9월 중순에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타격감을 끌어 올렸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다. 허경민은 가을, 특히 단기전이 되면 전혀 다른 타자로 돌변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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