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소설가 박민규, 사진가 노순택, 영화감독 이송희일, 미술가 이하, 연극연출가 전인철, 영화감독 변영주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18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한 '블랙리스트를 말하다' 이야기마당에서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들을 말하고 있다.

(좌로부터) 소설가 박민규, 사진가 노순택, 영화감독 이송희일, 미술가 이하, 연극연출가 전인철, 영화감독 변영주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18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한 '블랙리스트를 말하다' 이야기마당에서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들을 말하고 있다. ⓒ 하성태


"영화 속 대사가 기억납니다. '대중은 개돼지…'라는 대사, 맞나요? 기본적으로 이것은 찍소리도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개돼지도 아니죠. 문화예술인들을 나아가서는, 국민들을 개돼지도 아닌 쥐 떼라고 생각한 거 아닌가, 그런 기분이 듭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생각했던 건지…. 정말 오랜 시간, 오랜 시간을 두고 끝까지, 이 (블랙리스트) 일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지시로, 누가 시행했는지를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개돼지'도 아닌 '쥐 떼'…. 소설가 박민규는 참담한 듯 중간중간 말을 멈췄다. 지난 2014년 박민규는 동료 소설가 황정은, 진은영 등 작가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 묶음인 <눈먼 자들의 국가>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문학동네 역시 같은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박민규와 같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가들의 제보를 받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한 진상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아래 진상조사위).

지난 7월 31일 출범한 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그간의 활동을 중간 정리하는 대국민 활동 보고 및 이야기 마당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1차 대국민보고를 열었다. 이날 행사가 열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역시 이명박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영화계 피해 사례로 꼽힌다.

조영선 소위원장의 1차 조사 보고 직후 박민규 작가와 같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각종 피해와 불이익을 받은 문화예술인들이 피해 사례를 증언하는 '블랙리스트를 말하다'가 이어졌다. 변영주 감독의 사회로 사진가 노순택, 영화감독 이송희일, 미술가 이하, 연극연출가 전인철, 소설가 박민규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 여기도 빨갱이가 많네."

박근혜 정부 시절, 한 영화제에 참석한 한 문체부 직원이 했다는 농담이다. 변영주 감독은 이 일화를 전하며 "농담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영화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며 "블랙리스트를 봤을 때, 분노 이전에 어이가 없었다. 지난 9년이 반민주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무능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한 분이 감방에 가 있는데, 나머지 한 분도 어서 옆방으로 보내드려야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예술은 좌파들의 놀이다. 좋은 작품을 하는 사람들은 좌파다. 이들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좋은 작업을 못 한다. 좌파들의 놀이터인 문화를 '좌파', '우파'하는 게 얼마나 웃기냐. 좋지 않은 정권이니 있지도 않은 우파를 살리려고 한 거다.

어제 <공범자들> 봤는데 치가 떨리더라. 가끔 대통령이 아직도 박근혜인 꿈을 꾼다. 깜짝 놀라고 한다. 생각해 봐라. 탄핵이 안 됐다면 지금도 그가 대통령이었을 거다. 정말 끔찍하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하셨다." (미술가 이하)

"예술은 좌파들의 놀이다"

 조영선 진상조사소위원장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1차 조사보고를 하고 있다.

조영선 진상조사소위원장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1차 조사보고를 하고 있다. ⓒ 하성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그림으로 화제와 (전 정권들의) 관심을 받은 이하 작가. 그는 '블랙리스트 3관왕'이라는 그는 "재판을 제법 많이 받았다. 이명박이랑 박근혜가 내게 엿을 좀 먹였다"며 "그림을 그리거나 붙여서 6건의 기소를 당했고, 재판은 3건을 받았는데 다 대법원까지 갔다. 법정에 총 서른 번 정도 갔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가는 "제 작품을 전시해 준 전시장이 전시 직후 느닷없이 공모에서 떨어지고 그런 일들이 많았다"며 "또 '김영한 비망록'에 제 이름이 총 세 번 나온다. 그게 김기춘의 지시사항을 적은 거였는데, 제 본명이 적혀있고 무슨 혐의로 처벌하라고 적시돼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혐의 그대로 적용됐더라. 나름 신선한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진상조사위는 신학철 공동위원장과 이원재 제도개선 소위원장, 조영선 진상조사 소위원장, 고영재 소통기획 단장들이 인사말과 함께 간략하게 1차 활동보고 시간을 가졌다. 조영선 소위원장은 "블랙리스트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박근혜 등 정치 권력이 문화부 등 행정 권력을 이용해 사적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불이익 주거나 배제했던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조 위원장은 "왜냐하면, 정상적인 기금 지원이나 예술 행사는 절차에 따라 행정프로세스가 있는데, 그를 배제하고, 국정원과 청와대의 지침에 의해 문체부에 지시에 내리고 문체부가 하위 위원회들을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위원장은 "적극적인 신고"를 강조 또 강조했다.

"피해 단체 인원이 100명이면 100명 다 신고해 달라. 다각적인 차원에서 조사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제보, 자료 협력을 넘어서 공조 차원의 조사를 위해 많은 문화예술인과 기관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적극적인 제보가 필요할 때

 진상조사위는 향후 각종 '문화예술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진상조사위는 향후 각종 '문화예술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하성태


1. 서울연극협회 배제 사건은 청와대(B) 지시에 따라 일어난 사건이다.

2. 블랙리스트 사태는 단순히 특정 예술인·단체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문체부·예술위 등 국가공식 기구가 조직적으로 관여된 국가범죄이다.

3. 지원 배제를 넘어 시민 자치의 원리로 운영되는 시민사회 영역에 국가 권력에 개입하여 민간단체인 한국연극혀회 선거에까지 직접 개인, 정부 우호 세력을 만들고자 하였다.

4. 블랙리스트 사태는 연극 분야를 비롯하여 문화예술, 콘텐츠, 미디어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5. 청와대 지시로 실행된 서울연극제 대관 배제 및 아르코 대극장 폐쇄 사건은 조윤선 정무수석이 재작하던 시기(2014년 6월~2015년 5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아마도 진상조사위가 요약한 이 '서울연극협회 배제 사건으로 보는 블랙리스트 의미'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어떻게 실행됐는지 한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잘 알려진 대로 블랙리스트는 청와대가 관여한 '국가범죄'다.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청와대' 뿐만 아니라 '이명박 청와대'까지 진사조사 범위를 넓힐 것을 시사했다. 최근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MB 블랙리스트' 명단과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진상조사위의 활동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향후 각종 '문화예술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19일 오후 2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제1차 문화재정토론회'를 개최하며 21일부터 28일까지 문학·연극·영화 등 분야별 현장토론회를 연다.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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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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