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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역화 작업으로 지어진 현충사의 모습
▲ 현충사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역화 작업으로 지어진 현충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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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승전 420주년을 맞이해 충무공기념사업회(대표 최순선)가 14일 오전 '박정희 대통령 현충사 성역화 오류정정에 대한 진정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진정의 핵심 내용은 "2017년 12월 31일까지 박정희 대통령 관련 적폐(박정희 친필 현판, 경내 내 금송 식수)를 해결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안을 문화재청이 마련하지 않는다면 <난중일기>를 비롯한 주요 유물의 소유주로서 2018년 1월 1일부터 유물 전시를 중단할 계획"이다.

현충사에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2005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현충사를 두고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가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문화재 조경의 전문가인 정재훈 전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석좌교수는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현충사 성역화 작업' 당시는) 한국전통조경을 연구한 사람도 없고 설계하고 시공하는 사람도 없는 시기라 일본 조경 양식으로 조성되고 일본 정원에 서는 석등까지 배치됐다"라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지시해 근 20년간에 약 20억 원을 들여 왜식 조경을 고쳤으나 아직도 완전하지는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술대회 자료집, <사적지 조경의 현황과 과제>, 2008년 중)

밀려난 숙종 현판, 들어선 박정희 현판

1707년 숙종이 사액한 현판의 모습
▲ 현충사 현판 1707년 숙종이 사액한 현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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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으로 1967년 걸렸다.
▲ 현충사 현판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으로 1967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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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에 왜식 조경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색채가 물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진행한 '현충사 성역화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으로 원래 있었던 현충사 건물을 같은 경내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로 지은 현충사가 세워졌다. 이때 1707년 숙종이 사액한 현판도 원래 현충사 건물과 함께 옮겨졌다. 새로 지어진 현충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이 걸렸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숙종 현판으로 교체하는 것에 공감한다"라면서도 "하지만 현재 현판 규격이 작아 현충사에 걸 경우,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충사 앞에 서 있는 '박정희 식수 금송'

일본 특산종인 '금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었다는 이유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왜식조경 교정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식수 '금송' 일본 특산종인 '금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었다는 이유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왜식조경 교정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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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양식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올해 전통 양식으로 고쳤다.
▲ 현충사 연못 일본 양식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올해 전통 양식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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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역화 작업 당시 욕심을 내다 보니 불단이나 어좌 위에 있어야 하는 '닫집'을 현충사에 설치했고, 궁궐에 놓여 있는 '정'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임금을 섬기고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에 왕과 같은 대우를 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이순신 장군을 역적으로 모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정'은 최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의해 철거됐지만, '닫집'은 여전히 남아있다.

현충사의 일본식 조경도 문제다. 현충사 앞에 일본 신사에 심는 대표적인 나무인 '금송'을 심어놨으며, 경내에 일본식 연못도 설치됐다. 일본식 연못을 전통 양식으로 바꾸는 공사가 올해 마무리됐지만, 금송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했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으로 인해 없어진 현충사는 1932년 민족지사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지어졌다. 1932년 지은 현충사와 1966년 시작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역화 작업으로 지어진 현충사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정권 때 세워진 현충사는 '본전'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 최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의해 '본전'이라는 호칭은 폐기됐다. 1932년에 지어진 현충사는 '구 현충사'로 불린다.

충무공 이순신 15대 종부 최순선씨는 "지금의 현충사는 얼빠진 모습"이라면서 "이순신 장군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곳에 더 이상 <난중일기>를 전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향후 문화재청의 입장에 따라 <난중일기>가 수장고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 전시중이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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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충사, #난중일기, #왜식조경, #박정희현판, #숙종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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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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