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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갑니다. 대체복무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대체복무제도가 필요한지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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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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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은 군제대 및 소집해제 이후에도 8년의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바로 예비군 훈련입니다. 예비군 부대 편성 기간은 총 8년입니다. 연차에 따라 1년에 18시간에서 36시간씩 훈련을 받게 됩니다(통상 7~8년차는 훈련을 받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든 훈련이라고 그걸 안 받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으실 테지만, 전 눈 꼭 감고 갔다 오면 될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현역 입영을 거부하고 감옥에 갔어야 했습니다(어쩌면 감옥에 곧 가게 될 수도 있겠지요).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면 경찰서에 출석하고, 간혹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습니다. 건 당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1천만 원까지 벌금형을 받거나, 징역에 처하게 됩니다. 건 별로 벌금이 쌓이면 수 천만 원을 내야 하고, 벌금을 내고도 징역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미 재판받고 있는 훈련이 다시 부과돼 재판을 받고 돌아오는 날이면 다시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2014년부터 훈련을 거부한 결과 저는 5번의 약식기소를 받았고 2번의 정식재판 청구했으며, 8건의 기소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 시기가 겹치는 사건이 더러 있어 총 4건의 재판을 이어오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법원에 나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경계와 살의를 배워야 했던 군대

저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제가 믿는 성경에는 평화를 지지하는 구절도 있고, 전쟁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성경의 핵심은 샬롬, 즉 평화를 이 땅 위에 일구며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의무라는 점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평화는 모든 깨어진 관계가 충분하게 회복되는 상태입니다. 이 땅의 미움과 증오, 폭력과 박해가 용서와 화해, 사랑과 정의로 역전될 수 있도록 개인의 삶에서나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수고하며 애써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으며, 살고자 합니다.

군대에 가보니 전쟁을 위해 적에 대한 경계와 살의를 배워야 했습니다. 군대는 거대한 집단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비인격적인 상명하복의 질서로 제 몸을 길들였습니다. 그중에는 도저히 이해하기도 어려운, 오직 계급 관계를 구분하기 위한 비상식도 있었습니다.

가령, 계급에 따라 숟가락, 젓가락 쓰는 것, 건빵과 우유를 먹는 것까지 통제했습니다.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윗사람의 말이 법인 생활을 익혀야 했습니다.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여성은 남성들의 성적 유희와 만족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으며, 성 경험은 남자다움의 지표였고, 오히려 그것이 장려되고 자랑이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입대 전에는 내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이든 내가 가진 신념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대한 군체제와 이미 만연한 군사주의 분위기에 비하면 먼지 티끌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진 신념대로 사는 것이 이미 형성된 질서를 어지럽히는 별스런 짓이자 동료들을 괴롭히는 고문관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군대와 군사주의 속에서 저는 저항하기보단 길들이기 쉬운 나약한 존재였을 뿐입니다.

예비군 훈련 거부하면 꼭 처벌받아야 할까요?

저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격 실력도 형편없어서 훈련 교육관이 세금을 좀먹는 존재라고 제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훈련소에서 수류탄을 던질 때, 손이 덜덜 떨리는 겁쟁이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단지 적이기 때문에 죽여야 하고, 죽일 수 있고, 죽여도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제게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데,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순 없을까, 꼭 무기만이 안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가, 그것만이 의무로 강제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힘과 무력을 통한 위태로운 평화, 폭력과 증오의 대립, 일단 벌어지면 모든 삶을 파괴하는 전쟁, 이를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유지되는 군대. 이뿐만 아니라 군대는 이미 너무 많은 남자를 군사주의 질서와 문화로 길들이고 있습니다. 군대 다녀와도 사람(남자) 되는 것 아니고, 꼭 윽박질러야만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윗사람의 지시가 옳지 않으면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군대와 사회의 유사성은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평화는 외부의 침입 때문에 깨질 수도 있지만, 내부의 군사주의 문화로 침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평화와 연결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서 전쟁과 군사 행위 일체를 거부하고, 제 몸을 군사주의 문화로 길들이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면 꼭 처벌받아야 할까요? 현재의 병역법과 예비군법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식의 삶과 생각은 처벌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대화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임에도 국가는 어떤 이유에선지 반복해서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대체복무란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병역거부자를 염두에 둔 대체복무도입은 평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다른 삶의 가능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병역거부자와 대체복무 이야기만 나오면 공격적이고, 날 선 반응들이 먼저 나옵니다. 어떤 논의도 진행될 수 없는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날 선 반응을 통해 우려하고 있는 점들은 역설적으로 대체복무제가 일정 정도 해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령, 병역을 선택하지 않을 양심을 허락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군대의 쇄신을 결과합니다. 대체복무보다 더 가치 있고 매력적인 군대를 만들면 몇몇 분들이 우려하는 병역 이탈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복무제도는 군대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대체복무제라는 수단은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입장이나 찬성하는 입장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이 싫어서 반대하기엔 꽤 아까운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평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로 사회를 풍성하게 만들고,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군사주의 문화와 질서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 도입에 힘 실어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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