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TV 드라마는 무수히 많습니다. 최근에 <언더 더 돔>과 <11/22/63>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방영 중입니다. 몇 주 전에 개봉한 영화 <다크 타워>도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그것>은 스티븐 킹이 1986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번역본 기준으로 약 1800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팬들 사이에서 스티븐 킹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영화 <그것>의 한 장면. 빨간 풍선을 든 광대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는 페니와이즈는 아이들의 마음 속 공포를 이용해 홀리고 살해한다.

영화 <그것>의 한 장면. 빨간 풍선을 든 광대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는 페니와이즈는 아이들의 마음 속 공포를 이용해 홀리고 살해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미국 메인주의 데리라는 동네에 사는 열 살 소년 빌(제이든 리버허)은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동생 조지에게 종이배를 만들어 줍니다. 조지는 도로변에 흐르는 빗물에 종이배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며 신나게 놀다가 그만 배를 하수구에 빠뜨립니다. 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 하수구를 들여다본 조지는 피에로 모습을 한 괴물에게 잔혹하게 공격당한 후 실종됩니다.

이듬해 여름 방학, 여전히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빌은 늘 악동들의 표적이 되는 다른 친구 여섯 명과 끈끈한 우정을 쌓습니다. 이들은 그간 데리에서 27년을 주기로 끔찍한 참사와 어린이들의 연쇄 실종 사건이 일어났으며, 조지의 죽음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원작 소설이 방대한 분량이고, 주인공들이 30대 후반으로 성장한 현재와 열한 살 어린 시절의 과거를 오가는 구성이기 때문에 2시간 내외의 영화 한 편에 모든 것을 다 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번에 개봉한 <그것>은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다룬 1부입니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겪는 일들은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2부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생생한 공포 체험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공포 체험의 묘사가 뛰어납니다. 원작에 기반을 둔 것도 있고, 영화에서 새롭게 집어넣은 설정도 있는데 양쪽 다 충분히 효과적입니다. 스티븐 킹이 원작에서 보여 주었듯, 아이들의 공포는 결국 부모에 대한 인정 욕구와 애증, 그리고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서 나온다는 점을 제대로 형상화했습니다.

여기에는 촬영과 특수 효과, 낯선 아역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인 정정훈 촬영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포의 강도를 높입니다. 스탠리가 기울어진 액자에 담긴 귀신을 만날 때나 에디가 한센병 환자를 만나 기겁하는 장면처럼 특수 효과가 없이도 충분히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요.

순수한 악의 표상인 페니와이즈의 여러 가지 끔찍한 모습을 디자인하고 구현한 CG와 특수효과에서는 다른 호러물들과 차별화된 이 영화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명의 아역 배우들 역시 생각 이상의 안정된 연기로 영화 속 인물이 느끼는 공포를 아주 생생하게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성장과 연대는 생각만큼 두드러지지 않은 편입니다. 원작의 훌륭한 에피소드들이 빠지거나 하나로 합쳐진 탓도 있고, 어른이 된 이후의 모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원작에서만큼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원작에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무슨 일이든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제가 어린 시절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깔렸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무엇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희열이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중반 이후 아이들의 대사를 통해 주제를 직접 제시하기 때문에 약간 뜬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말에서 페니와이즈를 물리치는 장면도 함께 힘을 모은다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집단 린치처럼 연출돼 있어서 카타르시스가 덜합니다.

'루저 클럽'의 유일한 흑인 마이크의 역할이 축소되고 벤에게 그 역할이 돌아간 것도 아쉽습니다. 원작에서 마이크의 역할은 주기적으로 부활하는 페니와이즈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알려 주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데리에 남아 그 부활 여부를 확인한 후 친구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것이었죠. 스티븐 킹은 그간 데리에서 벌어졌던 참사들이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고 그 증언자로서 마이크를 설정해 두었던 것인데,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까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1990년에 2부작 TV 드라마로 제작된 <피의 피에로>(It)와 비교해 보면 아쉬움은 좀 더 커집니다. 특수 효과가 매우 어설프고 TV용이라 표현의 한계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원작의 구성을 유지하면서 인물들 사이의 감정 교류를 이 영화보다는 잘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애초 기획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로 1편을 만들고 나서 시장 반응을 본 후 2편 제작에 착수할 생각이었던 것 같으니까요. 홍보 과정에서 이번 영화가 2부작의 1부라는 것을 충분히 밝히지 않은 점,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어른이 된 모습 없이 어린 시절만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추구한 점을 보면 그런 짐작이 가능합니다.

 영화 <그것>의 한 장면. 7명의 '루저 클럽' 친구들은 아이들을 살해하는 페니와이즈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영화 <그것>의 한 장면. 7명의 '루저 클럽' 친구들은 아이들을 살해하는 페니와이즈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치유와 성장, 2부에서 계속된다

최근 들어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미국의 저예산 공포 영화들은 악령 같은 끔찍한 외부의 존재가 인간에게 가하는 테러 자체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악령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가슴 졸이게 하는 장면들과 스릴 넘치는 대결 장면을 넣어, 마치 테마파크의 놀이 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쏘우> 시리즈와 <인시디어스>-<컨저링> 시리즈를 만들어 온 감독 겸 제작자 제임스 완은 이런 경향의 대표 주자입니다.

이 영화 <그것>은 이런 최신 경향과는 결이 조금 다른 영화입니다. 절대악이 존재하고 그와 대결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인 것은 같지만, 인물이 겪는 끔찍한 일들은 결국 내면의 공포가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짚어내는 것이 다릅니다.

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빌, 유대인으로서 사는 삶이 주는 부담을 가진 스탠리, 자신을 과보호하는 어머니에 대해 애증을 지닌 에디, 아버지의 성추행이 자기의 신체적 성숙에서 비롯되었다는 죄의식을 가진 베벌리 등은 모두 '그것'의 먹잇감이 될 뻔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그것'과 맞서 싸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신의 심리적 결함을 극복하려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심리적 문제를 혼자 해결해 보려다 아예 생활이 망가지거나 목숨까지 잃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겨내기가 정말 힘듭니다.

또한, 내면의 상처는 한두 번 이겨내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한참 더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상처는 언제든 되살아나서 우리의 삶을 망치려 듭니다. 원작에서 주인공들이 27년 후에 데리로 돌아와 다시 한번 페니와이즈와 벌이는 대결은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그 운명을 건 사투는 2019년에 공개될 2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그것>의 포스터. 방대한 원작을 비교적 잘 각색한 편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영화 <그것>의 포스터. 방대한 원작을 비교적 잘 각색한 편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것 제이슨 리버허 빌 스카스가드 소피아 릴리스 안드레스 무시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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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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