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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짓누르는 브래지어. 이제는 안녕, 바이 바이, 짜이찌엔!
 내 가슴을 짓누르는 브래지어. 이제는 안녕, 바이 바이,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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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브래지어를 차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기였고, 여자 아기였고, (당연히) 젖꼭지 있는 여자 아기였다. 이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두 가지 것과 친해지게 된다. 생리대와 브래지어. 40년 정도를 생리대와 함께, 청소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브래지어와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어느덧 스물둘이 된 아기는 가장 친했던 둘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발암물질 생리대야 안녕. 숨이 턱 막히는 언더와이어 브래지어야 안녕. 너희를 만난 지 10년이 된 오늘, 나는 너희를 미련없이 포기하련다.

유해물질 생리대 명단이 최초 보도된 이후, 여성들의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 포기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한 가격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8월 13일부터 26일까지 대안월경용품인 면 생리대와 생리컵 판매가 각각 1807%, 422% 증가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치열한 반성이 따라오지 않는 이상, 생리대는 우리 여성들의 일상에서 빠른 시일 안에 퇴장할 것으로 보인다.

생리대를 뒤따를 추방의 대상은 무엇일까? 마음속 1순위는 당연 '와이어 브래지어'다. 그러나 브래지어의 퇴출은 생리대의 퇴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확률이 높다. 생리대 퇴출 후에는 여타 유용한 대안용품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브래지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브래지어의 퇴출은 진짜 노브라(no-bra). 상의 바로 아래 젖꼭지가 있는 그 상태를 의미하고, 그 채로 거리를 활보하려면 굳센 결심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여성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세상 (거의) 모든 종류의 브래지어를 표류하다 내린 결론. 가슴은 죄가 없다. 죄가 없는 가슴은 감옥에 갇혔다. 아무리 예쁘고 화사하고 부드럽고 섹시한 감옥이더라도, 무고한 가슴은 억울하다는 것. 무죄의 가슴을 탈옥시키는 데 성공한, 지난 10년의 '브라연대기'를 소개한다.

우리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입었다

여성들은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한다. '가슴이 처지지 않고 예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란다. 오히려 가슴을 더 판판하게 짓누르는 것 같은데 말이다.

교복을 입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브래지어 이 녀석은 일상의 계륵이다. 얇고 꽉 끼는 하얀색 하복 블라우스는 이팔청춘의 상징임과 동시에 억압의 기제이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태(態)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성장기 가슴을 받쳐주는 브래지어와 브래지어를 티 나지 않게 가리기 위한 민소매를 겹겹이 입어야 한다.

가슴을 가리려고 브래지어를, 브래지어를 가리려고 민소매를 입는 이 웃지 못할 일은 그 얇은 블라우스를 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별수 없이 반복된다. 특히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는 학교를 떠날 수 없는 고교시절엔, 브래지어를 가슴에다가 박제해 놓은 채 답답하게 숨을 쉬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브래지어를 '필사적으로' 입었다. 어떤 친구들은 집 안에서도 브래지어를 입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아빠·오빠와 사는 한 친구는 잠을 잘 때도 브래지어를 착용한다고 했다. 깜짝 놀란 나는 "딱 하루만 벗고 자봐라"라고 말했고, 그날 밤 친구는 처음으로 브래지어의 후크를 푸른 채 잠에 들었다. 차마 브래지어 자체를 벗어던지진 못했다.

우리를 필사적으로 만든 건 내 가슴의 소유권을 앗아간 우리 사회였다. '가슴을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려면 브래지어가 필수'라는 식의 비과학을 믿게 만들었다. 브래지어에 들어간 와이어의 압박 때문에 가슴 질환이 꽤 많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가슴을 예쁘게 키워야 하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일상의 대부분은 가리고 사는 가슴을 왜 예쁘게 만들어야 하지?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남성들에게 여성의 가슴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섹슈얼리티를 생산하기에 가장 좋은 오브제였던 것이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가슴은 그 가슴대로, 노브라는 노브라대로 각종 상상력의 소재가 된다.

왕뽕 브래지어의 시대여

성인이 됐다. 브래지어를 박제 당한 상태로 갑갑한 세월을 보냈으면서, 그것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갑갑한 브래지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뽕브라'. 두툼한 패드가 장착되어있는 형태의 브래지어로, '영혼까지' 가슴을 모아주고 글래머러스한 태를 살려준다고 유혹하는 그것.

와이어에, 패드에, 옆구리 살을 짓누르는 갑갑한 밴드까지. 여름이면 브래지어 안에서 가슴이 아우성쳤다. 가슴골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란제리 장인국가 일본 브랜드 속옷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세일 기간이면 3~4개씩, 여행 가서 또 몇 개씩.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큰 억압들을 사 모았다. 미성년자에게 브래지어는 그저 가슴을 가리기 위한 '장비'였다. 교복 블라우스 아래로 드러나는 가슴 태가 '야해 보이면' 안 됐기 때문이다. 이 억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보고자, 타인의 시선 때문에 가려야 했던 가슴을 애써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그 도구로 뽕브라가 활용됐다. 더 무거운 억압이 도래했다.

여성의 주체성이 돋보이는 섹슈얼리티의 표출은 스스로에게 압도적인 희열을 선사한다. 그것은 남성의 권력적 시선에 약탈당했던 나의 몸을 내 것으로 되찾아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뽕브라를 활용한 가슴의 부각과 그를 통한 섹슈얼리티의 표출은 과연 주체적이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본래의 내 것보다 더 큰 가슴을 원한 적이 없고, 그것을 섹스 어필의 요소로 활용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욕망을 뒤로하고 사회의 욕망을 따라갔다. 사회가 바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게끔 감각이 조작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에겐 가슴이 있어. 그 가슴은 크고 예뻐야 해. 커야 하지만, 또 너무 드러내선 안돼. 내 정체성은 그렇게 인공적인 것들에 뒤덮여 버렸다. 몸을 긍정하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조종으로 택한 억압과 함께 하는 동안은 말이다.

브라렛은 패드와 와이어가 없는 천/레이스 원단의 브래지어로, 기존의 브래지어에 비해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 (ⓒ Geneva Vanderzeil, A Pair & A Spare)
 브라렛은 패드와 와이어가 없는 천/레이스 원단의 브래지어로, 기존의 브래지어에 비해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 (ⓒ Geneva Vanderzeil, A Pair & A Sp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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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 탈출 넘버원

뽕브라를 갈구하던 내가 노브라의 길을 걷게 된 건, 거창한 페미니즘 프락시스의 연장은 아니었다. 올해, 한 기업에서 인턴을 시작한 나는 매일 아침 지각과 사투를 벌였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 전날 코디해놓은 옷을 후딱 입고 집을 헐레벌떡 나선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떠한 허전함을 느꼈다. 헉, 브래지어를 안 했다.

두툼한 롱코트를 입은 덕에 무사히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화장실로 달려가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걱정과는 달리, 티는 거의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그날 이후로 회사엔 브래지어를 하고 간 적이 거의 없다.

노브라로 겨울을 무사히 보냈지만, 얇은 옷을 입어야 하는 여름이 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 그 자체보다는 '젖꼭지'를 가리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했다. 다양한 대책을 강구했고, 세 가지 해법을 찾아냈다.

하나, 브라렛이다. 브라렛은 패드와 와이어가 없는 천/레이스 원단의 브래지어로, 기존의 브래지어에 비해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 다양한 색상과 원단, 섹시한 디자인이 시각적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브라렛은 여전히 흉통과 갈비뼈를 감싸는 밴드를 포기하지 못했다. 내가 구입한 브라렛 2종은 가슴을 아주 부드럽게 감싸주지만 밴드와 후크의 압박감이 여전하다.

둘, 니플밴드다. 니플밴드는 유두를 가리는 스티커 형태의 밴드로, 해당 부위만 가볍게 가려줘 무척이나 간편하다. 일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드럭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니플밴드는 한 쌍에 800~1300원 선으로 꽤 비싸다. 또한 남성용과 여성용 제품의 가격이 달라, 니플밴드에도 '핑크택스'가 붙는다는 의혹이 있다.

셋, 실리콘 니플패드다. 앞서 언급한 니플밴드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실리콘으로 제작되었다. 수일 동안 활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지만, 그 기간은 1개월을 넘지 못한다. 실리콘의 접착력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접착제의 성분 때문에 민감한 피부엔 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다.

가슴은 가슴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지난 여름을 보냈다. 선선해진 바람이 반가워진 이유가 이전과는 다르다. 두툼한 긴 팔을 입는다는 것은 이제 브래지어를 안 해도 된다는 것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당당히 브래지어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나는 유의미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기온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내 모습은 여전히 시선 권력에 잡혀있다. 왜 나는 꼭 두툼한 옷을 입기를 기다리는가?

남성용 니플밴드도 잘 팔리는 것을 보니, 젖꼭지를 감추라는 요구가 남성들에까지 확대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의무 이행의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남성들은 단순히 옷 태를 좋게 하려고 가리는 것이라면, 여성들은 '안 가리면 안 되기' 때문에 가린다.

가슴을, 유두를 드러낸 여성이 직면하는 비난은 이루 말할 것 없다. 배우 설리의 SNS에 쏟아졌던 악플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노브라를 향한 시선과 비난을 감당해내면서 일상을 영위하기란, 여성으로서의 삶이 이미 너무도 벅차다.

가슴을 가슴으로 남겨두기 위해, 나는 브래지어 입는 법을 스스로 잊어버렸다. 와이어 브래지어는 이제 장롱으로, 왕뽕브라는 이제 서랍으로 간다. 맨 가슴이 지니는 건강함을, 윤기와 탄력을, 자연스러움을,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그 모든 것을 나는 긍정할 수 있게 됐다. 우리 모두의 브래지어와 결별할 시간이 찬찬히 오고야 말았다.

바야흐로, 브래지어와 결별할 시기다.
 바야흐로, 브래지어와 결별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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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와이어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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