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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
 삶은 계란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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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버스 안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버스에 타기 조금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병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향년 59세, 이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장례를 치른 후 3일째 되던 날 삼우제를 지냈다. 아빠의 유품도 정리했다. 망자가 떠난 후에도 일상이 흐른다는 게 낯설고 어색했다. 여전히 혼란과 슬픔에 빠져있을 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친구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며칠 전 장례식에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닐 텐데 무척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많이 울었는지 퀭한 모습이었다. "일주일 사이에 이게 무슨 일이냐." 친구들이 안타깝고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지방에서 회사를 다니던 친구는 우리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날 오후 월차를 내고 올라왔다. 문상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본가에서 잠을 잔 후 다음 날 새벽, 첫 차를 타고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그저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단다. 엄마가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가셨다고. 그때만 해도 큰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왔을 때, 엄마는 이미 혼수상태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돌아가셨다. 사인은 급성 바이러스 감염이었다.

"너희 아빠 장례식 아니었으면 엄마랑 인사도 못 하고 보내드릴 뻔했다야."

그 애가 울먹였다.

삶은 계란 건네는 엄마에게 한 마지막 말

우리 아빠 장례식에 왔다가 본가로 간 그날 밤, 내일 아침 첫차를 타기 위해 알람을 맞춰 놓고 혹시 몰라 엄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그런데 엄마는 무슨 이유인지 아들을 제시간에 깨우지 않았고, 10여 분 늦게 일어난 친구는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차를 놓칠까 후다닥 뛰어나가야 할 형편이었다.

겨우 눈곱만 떼고 구두에 발을 구겨 넣는 친구에게 엄마가 "잠깐만! 이거 가져가" 하더란다. 엄마가 내민 건 비닐봉지에 담긴 삶은 계란 두 개. "계란은 무슨 계란이야. 늦었단 말이야." 친구는 잔뜩 짜증을 내고 돌아섰다.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혜진아, 너희 아빠랑 우리 엄마랑 하늘나라에서 친구하시면 되겠다."

그 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앞으로 다시는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없을 거라며 슬프게 울던 그 애.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에는 왜 이리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한 자락씩 숨어 있는 건지...

그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되었다. 삶은 계란을 볼 때마다 이 일이 떠오른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 생각해 본다. 먼 훗날의 일일 거라며 애써 생각을 미룬다. 하지만 내게도 그 순간들이 차례로 찾아올 테고 남은 사람은 '삶은 계란'을 품고 살아가겠지. 친구 어머니가 건네려던 그 계란은 참 따뜻했을 것 같다. 내가 남긴 계란도 그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단짠단짠 그림요리,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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