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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지대를 다녀왔다.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을 제대로 분석해보자는 일종의 '학술 탐사'였다. 현장에서 마주한 북한은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의 답답함과 무척 닮아 있었다.

사회 인프라가 미비한 탓에 북한 주민들은 개울가에서 기른 물로 빨래를 했고, 생활용수에 보탰다. 대중 목욕탕도 없던 것일까. 눈에 띄는 건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속옷 차림에 몸을 씻는 모습이었다. 순간 문화 충격을 받았다. 10여 년 전 친구들과 신나게 운동을 한 뒤 등목을 즐기던 기자의 초등학생 시절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북한 혜산시에 있는 가옥들.
 북한 혜산시에 있는 가옥들.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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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탈북자에게 물었더니 저런 모습이 일상이라고 한다. 놀라운 건 강가에서 목욕할 때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탈북하는 주민이 간혹 있기 때문이란다. 친척 중 탈북자가 있거나, 여성 등은 강 근처도 갈 수 없다. 고르고 골라 '혜택 받은 자'들만 신분증을 제출한 뒤 한정된 시간에 '목욕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민들의 모습을 훔쳐보다 고개를 돌렸더니 중국 땅에 세워진 거대한 빌딩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불과 100m 사이 두 나라의 문명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한 나라는 생리 문제조차 자유롭게 해결할 수 없고, 바로 옆 나라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왜 '북한은 실패했을까'.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길 질문은 쏟아졌고, 답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접한 두 권의 책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힌트가 됐다. <지리의 힘>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두 책은 한 나라가 흥망성쇠하는 결정적 요인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각자 상반된 주장을 펼치지만 독자 입장에선 다양한 시각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기회를 얻었다.

북위 '38도선'이 남북을 갈랐다

우선 팀 미샬이 쓴 <지리의 힘>을 살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됐지만 저자는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 영토를 꼽았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땅'에 주목했고, 한국과 일본,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지정학적으로 풀었다. 전쟁과 권력, 정치, 사회적 발전은 모두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지리적 요인으로 국제적 현안을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산과 천연 장애물, 하천망 등의 물리적 지형뿐만 사람과 문화, 자원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정치, 군사, 종교 등을 포괄하는 인류 발전에 막대한 충격을 줬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팀 마샬은 "세대가 바뀌어도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낸 물리적 장애물, 우기에서 비롯된 난관들, 천연자원이나 식량 자원에 대한 제한적인 접근 등은 피할 수가 없다"며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고 설명했다.

북한 역시 지정학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1945년 광복 이후 남북한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되고 말았다. 남한에는 미국, 북한은 소련의 관리를 받는 정권이 세워졌다. 당시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지리적 요소가 분단의 씨앗이 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3년 간 전쟁까지 치렀지만 남북한은 오늘날까지 '분단'상태다. 휴전선을 경계로 두 나라는 상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특히 북한은 지리를 군사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248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 인근 고지대에는 수 천 기의 장사정포가 온 종일 서울을 향하고 있다.

대부분 산악지대에 갱도화돼 낮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물자는 벙커와 지하 저장 시설 등에 관리하며 완벽한 경계태세를 갖췄다. 김정은의 명령만 떨어지면 한 순간에 전쟁이 날 분위기다. 수 만발의 포탄 중 단 한 발이라도 남한에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반도가 북위 38도선 인근에 없었다면, 혹은 휴전선 부근 산악지대가 평평했다면 남북한의 정치와 안보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지리적 요소가 남북한의 정치적 변화를 일이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흥망성쇠는 '정치제도'가 좌우한다

그러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스는 지리적 특성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국제분쟁을 이해하는 데 지리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일갈할 정도였다. 가령, 아프리카와 서아시아는 수십 년 째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포용적인 정치·경제제도가 발전과 번영을 불러온 반면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빈곤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포용적인 제도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와 유인을 제공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산주의 빨치산 부대를 이끌었던 김일성은 소련의 관리하에 1947년부터 북한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이른바 '주체사상'으로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교육을 시켰다. 경제시스템은 중앙계획으로 운용했다. 김일성과 극소수 지배 엘리층을 제외하곤 사유재산도 불법화했다. 그 결과 산업 생산성이 증가하지 못했고, 기업의 투자는 현격히 떨어졌다.

저자는 교육제도에 있어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생활고를 겪는 북한 청소년에게 교육은 사치에 불과하다. 창의력이 떨어져 자기만의 재능을 살린 직업을 구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남한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장학금이라는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저자는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발목을 잡는 정치제도를 기반으로 한 착취적 경제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제도의 선택과 정치가 국가의 성패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열쇠다"고 주장했다.

진영논리 벗어나 실천적 대안 필요할 때

북한과 대비되는 중국 연길 시내의 모습.
 북한과 대비되는 중국 연길 시내의 모습.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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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로 나타났다. 국민총소득(명목GNI)은 36조4천억원으로, 남한 1639조1천억원의 45분의 1정도로 추정된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46만으로 남한 3198만의 22분의 1이다. 1970년대 이후 남한은 고속성장을 거듭하다 1990년대 말 잠시 경제위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세계 경제 순위 10위 권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수십 년 째 세계 최악의 '빈곤국'으로 분류된다.

책에서 살펴 본 지리와 정치제도는 남북한의 발전요인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격차를 줄이는 건 쉽지 않다. 접경지대에서 본 북한 주민의 모습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로도 해석할 수 없었다. 그들이 실패를 딛고 성장하기 위해선 보다 실천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이 필요할 때다.


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사이(2016)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2012)


태그:#북한실패, #지리의힘, #국가는왜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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