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감독> 포스터.

영화 <김감독> 포스터. ⓒ 김미경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세계 영화인의 축제, 바로 프랑스 칸 영화제다. 올해로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한 이번 영화제에는 국내 언론의 기대를 모았던 <옥자> <악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비롯해 칸이 사랑한 남자, 홍상수 감독의 <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 등 총 다섯 편이 국내 초청작으로 경쟁에 임했다. 하지만 정말 이 다섯 편의 작품만이 칸의 초대장을 받았던 걸까.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는 영화 팬이 있다면, 알려주고 싶다. 비경쟁 단편 영화부문에 초청된 국내 작품이 더 있었다고. 그리고 그 가운데 유일한 스크리닝작 <김감독>을 주목해보자고. 이 영화가 안겨준 뜨거운 울림이 채 식지 않은 8월 마지막 주말,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김미경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꿈이 이루어지다

 영화 <김감독> 촬영 중인 김미경 감독.

영화 <김감독> 촬영 중인 김미경 감독. ⓒ 김미경


- 영화 <김감독>이 제70회 칸 영화제 비경쟁 쇼트 필름코너(short film corner)에 초청되었다. 영화제 출품 배경이라면 아마도 영화인으로서는 당연한 꿈이기에 도전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칸 영화제에는 정말 많은 코너가 존재한다. 그중 한 코너가 바로 쇼트 필름코너(short film corner)다. 칸 영화제에 많은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단편 경쟁부문은 15분 이내의 러닝타임 작품만 출품할 수 있다. 나는 25분이 조금 넘는 작품이었기에 여기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칸 영화제 기간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스태프들과 입버릇처럼 주고받은 대화 주제가 있다. '우리는 칸에 갈 거야'였다. '야외상영'이라도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제작 기간부터 싹텄고, 그 너스레 같았던 우리들의 발언은 영화 <김감독> 중에도 등장했다. "감독님, 칸 가시면 저 꼭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성일 배우의 대사가 그것이다. 영화 제작 기간이 곧 칸 영화제 준비 기간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6월부터 프리작업을 시작했고 9월에 3회분 촬영이 진행됐다. 편집, 후반 색 보정, 사운드믹싱까지 다 해서 완성본이 나온 건 2017년 2월. 그러니까 반년 이상을 여기에만 매달렸다. 칸이라는 꿈을 꾸며 만들었기에 출품작 모집 기간에 맞춰 지원했다."

- 모든 영화인의 꿈인 칸 영화제 참석이 확정된 순간, 그 심정이 궁금하다.
"제작 PD와 함께 있을 때 확정 연락을 받았다. 메일로 답변이 왔는데 'Congratulations!' 이런 문구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 줄에 '칸에서 만나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해석 잘못한 거 아니야?'하고 PD와 서로 쳐다보고. 그래서 지인 중에 프랑스어를 잘 하는 분에게 따로 부탁했다. 메일 번역은 물론, 칸 영화제 측에 문의해 확인해달라고. 잠시 후 연락이 왔는데 '축하해, 미경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작년에 부친상을 당했던 터라 더 서글픈 마음이 쏟아지듯 밀려왔던 것 같다. 아버지는 늘 내게 120%의 능력이 있다고 응원해주셨고,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데도 큰 영향을 주셨던 분이기에 아버지가 칸 영화제라는 행운을 선물해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행복하고 감사한 밤을 보냈다."

- 영화제에 초청받았다고 해서 필름 하나만 달랑 챙겨가는 건 아니었지 않나. 감독 혹은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을 텐데, 어떤 준비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칸 영화제 참석 확정이 된 이후부터 지속해서 칸 측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스크리닝(Screening) 신청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비용이 들더라도 무조건 상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저 참석에 그치기보단 단 한 번이라도 상영관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것이 훌륭한 기회를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각으로 저녁 6시 정각에 맞춰 신청 이메일이 도착하기에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상영 1회당 필요한 금액은 120유로. 나는 총 3번의 상영 신청을 했다. 하지만 허가는 단 한 차례 상영에만 떨어졌다. 아쉽긴 했지만 골든타임인 오후 6시 25분에 상영할 수 있어서 그나마 행운이라 생각했다.

상영 스케줄이 확정된 이후부터 본격적인 홍보 준비에 들어갔다. 관객 및 영화관계자들에게 나눠줄 내 명함과 영화 팸플릿을 제작했고, DVD도 만들었다. DVD 제작비용이 예상보다 높아 결국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직접 파일을 굽고, 인쇄한 커버 용지를 케이스에 넣고, 스티커도 제작해서 붙이면서 가내수공업 현장을 방불케 했다. (웃음) 포스터의 경우에도 영문으로 재작업을 맡겼다."

경험 그리고 관찰

 영화 <김감독>의 한 장면. <김감독>은 김미경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그가 관찰한 이야기이다.

영화 <김감독>의 한 장면. <김감독>은 김미경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그가 관찰한 이야기이다. ⓒ 김미경


- <김감독>이라는 작품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뤘단 느낌이 강했다. 극 중 주인공 이름이라든지, 직업, 가족관계 모두 실제 감독의 상황과 동일하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전적인 영화를 통해 대단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목적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전달하고픈 메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작품으로 말하는 건 그럭저럭 자신이 있는데 세세한 의도를 말로 전달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기자처럼 글 쓰는 일을 안 하는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대학교 졸업 후 드라마 스태프로 일을 시작했다. 바쁜 촬영 스케줄 틈틈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는 하면서, 왜 못 만들고 있을까'하고. 주제를 자꾸 밖에서 찾으려 드니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라면 가장 자신 있으니깐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영화감독인 딸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고.

내 이야기로 영화를 제작하려 하니까 진행이 그리 더디진 않았다. 아마 작품화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혼자 힘으론 할 수 없었을 일들이 간절한 마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과 마음들의 도움을 끌어냈다. 나와 같은 청춘 영화인들이 이러한 열망을 통해 희망을 만나길 바란다."

- 영화에서 주인공 '미경'은 '좋은 영화는 사람이 보이고 마음이 보이는 영화'라고 언급한다. 감독의 주관이 배어있는 대사인가.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달라.
"그 대사 뒤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피나 욕이 나오는 영화 말고'. 하지만 싸우고 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영화의 기준을 아직 뚜렷하게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김감독>이라는 작품에서는 그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만든 작품을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을 때 최고의 가치를 느낀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편안하게 볼 수 있을 스토리를 추구하는 거고. 잔인한 장면이 이어지는 누아르 작품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한다. 내가 만들 자신이 없을 뿐이다. (웃음)"

- <김감독>을 보면 타인의 술자리를 관찰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의 대화를 엿듣다가도 이내 나 자신의 꿈과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관객이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를 안겨준다고나 할까. 이 작품을 접한 관객이 어떤 감상을 하길 바랐나?
"공감. 공감해주기를 원했다. 꿈이든, 힘든 현실이든, 아니면 가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든 전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영화라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웃든 울든 마음을 동(動)하게 만드는 영화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관객이 어떤 내용의 감상을 하는지까지는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관람 후의 마음이 이전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걸 느꼈다면, 나 역시 감사하고 기쁘다."

- 영화 <김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단편 작품들을 통해서도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스물아홉, 영화감독으로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되는데, 쌓여있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앞으로도 그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고,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아직은 단편 영화 제작만 해봤지만, 훗날에는 장편 영화로 인정도 받고 싶다. '김미경 스타일', '김미경 영화' 이런 수식어가 붙었을 때 관객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영화인으로 성장하고 싶고,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다."

칸에서의 경험, 어떤 영향을 남겼나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김미경 감독의 모습.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김미경 감독의 모습. ⓒ 김미경


- 칸에서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영화제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김감독>이 상영되던 그 날의 기억을 들려준다면?
"영화제 기간은 5월 17일부터 28일까지였고 쇼트 필름코너는 그 기간 중 23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와 제작 스태프 일행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칸을 찾았다. 별도로 마련된 미팅 부스 앞에서 여러 감독이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데 칸에 도착한 첫날 하루는 나 역시 <김감독> 홍보에 전념했다.

우리 영화가 상영을 배정받은 관은 'Palais H'로 최대 수용인원은 43명이었다. 동시간대 상영되는 다른 작품들이 있었기에 객석을 잘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결국 약 33명의 관객이 찾아주어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관객의 호응을 살피느라 짧은 러닝타임에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내 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상영 후 8~10명의 관객(여기에는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이 포함되어 있다.)에게 미팅 요청까지 받았으니,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심장을 멎게 만들 만큼 강렬하다. '영화 잘 봤다'는 인사와 함께 가벼운 포옹, 그리고 명함을 건네주던 그들의 표정은 아직도 하나하나 선명하다."

- 비경쟁이라는 점과 신진 감독의 단편 영화라는 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쉬운 조건이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에서는 <김감독>에 대한 기사화를 하기도 했다. '작은 영화'에 대한 대우가 이뤄지고 있는 현재 영화 생태계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프리작업을 할 때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진행한 단편 영화제작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이후 유수영화제초청지원사업에도 지원했지만, 이전에 떨어진 경험이 있어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지원 승낙을 받아냈고 이번 칸 영화제 참석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사실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단편영화제도 많고, 지원 사업도 많다. 매해 단편영화제를 통해 돋보이는 작품들도 꾸준히 상영 중이고.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은 영화인들의 작업 스타일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그분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사업을 활용하고 있었다. 좋은 시나리오가 기반이 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볼 때 난 여전히 미흡함 투성이고.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지원을 받았지만 앞으로 더욱 실력을 갖춰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 경쟁이 아닌 자리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누린 칸 영화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칸이라는 수식어는 앞으로의 김미경 감독 행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차기작 계획은 어떠한가.
"영화 <김감독>에서 극 중 '미경'의 입을 빌려 이미 전달했다고 본다. '사람이 보이고 마음이 보이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감독 김미경이 가지는 좌우명 혹은 다짐이라고 알아주면 좋겠다. 차기작으로 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60대 엄마와 30대 딸이 새집을 구하러 다니는 하루의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로드무비 형태로 만들고 싶은데, 아직 시나리오는 아니고 시놉시스 단계까지 확정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단편영화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해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인정을 받은 후 제작에 들어가는 거라 심적으로도 든든할 것 같고. 좋은 배우,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들과 또 한 편의 멋진 영상물을 탄생시키고 싶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은 김미경 감독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는 모습.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은 김미경 감독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는 모습. ⓒ 김미경


김미경 감독은 누구?
1989년생. 올해로 스물아홉이다. 이십대를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에서 시작했고, 그 이십대의 마지막 해를 칸에서 맞이했다. 수상 실적으로는 2013년 제6회 서울노인영화제 노인주제 부문 대상, 2013년 제50회 대종상단편영화제 감독상, 2013년 제50회 대종상단편영화제 인기상, 2009년 제4회 SAC 무비페스티벌 대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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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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