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예능이 인기다. 일상을 다룬 소재에, 흔히 말하는 '막장' 요소도 없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SBS <동상이몽2>,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다보면, 과연 이 프로그램이 여남노소가 보는 가족예능으로서 적합한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예능의 묘미는 자막이다. 같은 영상이라도 어떤 자막을 다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두 프로그램의 자막을 보면, 예능적 재미에만 신경 쓸 뿐, 공중파 방송이 겸비해야 할 성평등 인식은 전혀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동상이몽>, 앞치마 두른 남성에게 "애 보려고 나오신 거예요?"

 SBS<동상이몽2> 7월 24일 방송분. 육아, 가사를 담당하는 김정근 씨를 '김엄마'라고 표현한다.

SBS<동상이몽2> 7월 24일 방송분. 육아, 가사를 담당하는 김정근 씨를 '김엄마'라고 표현한다. ⓒ SBS


<동상이몽>에는 이지애, 김정근 아나운서 부부가 출연한다. 남편인 김정근씨가 육아, 가사를 담당하는 모습이 이야기의 주소재다. 그런데 김정근씨가 집안일 하는 모습이 등장할 때마다 방송에는 '김엄마'라는 자막이 뜬다.

'김엄마'는 김정근씨의 성에 '엄마'를 붙인 별명이다. 가사를 도맡는 남성을 희화화해서 '엄마'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표현에는 육아, 가사는 엄마, 즉 여성의 몫이라는 성 편견이 전제돼있다.  

 8월 14일 방송분. 김정근 씨를 '육아대디', 이지애 씨를 '워킹맘'

8월 14일 방송분. 김정근 씨를 '육아대디', 이지애 씨를 '워킹맘' ⓒ SBS


'육아대디'와 '워킹맘'이란 표현도 문제가 있다. 방송은 가사를 하는 김정근씨를 '육아대디', 사회 활동을 하는 이지애씨를 '워킹맘'이라 칭한다. 이 또한 성역할을 한정한 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우리사회에 '워킹대디'나 '육아맘'이란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육아대디'와 '워킹맘' 또한 불필요한 수식이 담긴 표현이다.

 8월 14일 촬영분. 직장을 퇴사하고 육아, 가사를 전담하는 김정근 씨에게, "애 보려고 나오신 거예요?"라고 묻고 있다.

8월 14일 촬영분. 직장을 퇴사하고 육아, 가사를 전담하는 김정근 씨에게, "애 보려고 나오신 거예요?"라고 묻고 있다. ⓒ SBS


육아, 가사를 맡은 남성을 비하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자막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정근씨 집을 방문한 한 아나운서가 앞치마를 두른 김정근씨에게 "애 보려고 나오신 거예요?"라고 한 말이 자막에 큰 글자로 뜬 것이다.

이는 MBC 아나운서를 퇴사하고 육아, 가사를 하는 김정근씨를 희화화한 표현이다. 물론 친한 친구 사이에 건넬 수 있는 수위의 농담이다. 그러나 굳이 방송에 큰 글자로 자막처리까지 하면서 내보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슈돌>, 육아를 하는 젊은 남성은 '이모'?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8월 6일 방송분. 아이들 식사를 돕고 있는 윤지성 씨 장면에 '윤이모'이란 자막이 뜬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8월 6일 방송분. 아이들 식사를 돕고 있는 윤지성 씨 장면에 '윤이모'이란 자막이 뜬다 ⓒ KBS


<슈돌>의 성평등 인식 수준도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 로버트 켈리 부부 출연분에서, 남편 켈리 씨의 말은 반말로, 부인 김정아씨의 말은 존댓말로 번역해 이미 성차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관련기사: <슈돌>자막 논란... 켈리 교수 가족에게 왜들 그러세요?)

그런데도 제작진은 크게 문제를 느끼지 않았나 보다. 지난 달 6일 <슈돌>에는 가수 윤지성 씨가 출연했다. '대박이네' 아이들을 돌보는 윤지성씨 장면에는 내내 '윤이모'라는 자막이 깔렸다. <동상이몽>에서 김정근씨를 '김엄마'라 칭한 것과 마찬가지로, <슈돌>은 육아를 하는 젊은 남성을 '이모'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는 집안일을 여성의 몫으로 규정하고, 집안일하는 남성을 특수한 경우로 한정함으로써, 잘못된 성역할을 고착화시킨다. 공중파 방송이 성평등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성차별에 기여해서는 안 된다.

과거 학교에서는 남성에게는 <기술> 과목을, 여성에게는 <가정> 과목을 나누어 가르쳤다. 그러던 것이 제6차 교육과정인 1992년부터 두 과목을 <기술·가정>으로 통합해 남녀 모두에게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25년이 지난 2017년의 공중파 가족예능은 어떠한가. 내 생각엔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다. '김엄마', '윤이모'같은 표현만 놓고 본다면, 어쩌면 <기술·가정>을 통합한 92년보다도 더 후퇴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 이현주는 한 발짝씩 걷는 걸음처럼, "인생도 결국 한 발짝"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좇아오려면, 가족예능의 성평등 인식은 적어도 열 발짝씩은 더 바삐 뛰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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